우울감
그동안 열심히 목표만을 향해 너무도 미친 듯이 달려와서였을까 코로나가 전 세계를 덮칠 무렵 나 역시 코로나로 고립된 인류 속에서, 한 가지 감정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나의 내면 밖으로 터져 나왔다. 바로 우울감이었다.
혹여나 종신 교수가 되기 전 커리어 문제가 될까 공식적인 상담사나 의사를 찾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시간이 나는 대로 지구상 곳곳을 돌아다니며 방황을 했다. 여기도 가보고 저기도 가보고, 이것도 먹어보고 저것도 먹어봤다. 좋은 짓도 하고 나쁜 짓도 하고. 죽지 않고 숨 쉬고 살아갈 수 있다면 뭐든지 했다.
끝을 알 수 없는 적막한 터널을 달려 나를 마주했다. 그리곤 상담을 받기로 마음먹었다. 상담사의 첫 질문은 나에게 무엇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는지 물었다. 나는 한참을 생각해도 대답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질문의 답을 생각하는 척 멋쩍은 웃음을 짓다가 점점 시간이 흐르고 적막이 흐르니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나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지도 대답할 수 없는 내가 슬펐다. 그 이후로 틈만 나면 나는 무엇을 좋아하지는 적어 내려갔다. 그리곤 혼잣말했다. 다시금 우울감이 찾아오면 이렇게 해봐야지.
마지막으로 나를 받아 들었다. 남보다 더 감성적이고, 소심하며, 계속 생각하고 더듬어 내는 예민함이 빚어낸 나 자신을 조금씩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우울감이 찾아왔다가 떠난 지 4년째가 된 오늘 2024년 10월 다시금 조금씩 조금씩 그 녀석이 다시 찾아오고 있음을 느낀다. 태풍과 허리케인, 가뭄과 홍수에 대비하듯, 나는 매일매일 나를 즐겁게 하는 일들을 늘어놓고 준비 중이다. 내 안의 있는 수많은 감정들 중에서 하나인 우울감이 더 커지기 전에 다른 감정들 (기쁨, 감동, 열정, 짜릿함, 감사함, 고마움, 행복함)로 내 마음의 빈 공간들을 채워가려고 한다.
살아보자.
그러다가 넘어지면 바로 일어나지 말고 앉아서 잠시 쉬자.
그렇게 조금은 남보다 늦게 걸어도 괜찮다. 느리게 걷자.
괜찮다. 어차피 이번생은 우리 모두가 처음 살아보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