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내 인생은 대하드라마야
어른들은 늘 말씀하신다. 때가 있는 거라고. 학창 시절에는 공부의 때가 있는 거라며 학업에 열중하는 게 최선의 길이라고 말씀하시고 청년이 되면 제 나이에 취업을 해야 하는 게 순리라고 말씀하신다. 취업의 문을 통과하면 결혼할 때라며, 결혼을 하고 나면 아이를 낳을 때라고 하신다.
때라는 건 영어로는 타이밍.
때와 타이밍을 사전적 정의로 살펴보면
주변의 상황을 보아 좋은 시기를 결정함. 또는 그 시기. 좋은 기회나 알맞은 시기라고 나온다.
생각해 보면 나는 늘 타이밍에 시달렸던 사람이다. 교육열이 강했던 우리 엄마는 주변의 상황을 보아 공부할 시기에는 공부를 해야 한다며 나를 밀어붙였다. 초등학교 1학년때는 아침 일찍 깨워서 공부를 시켰고 학창 시절 공부를 못하면 이모들에게 하소연하면서 나는 공부를 잘했는데 재는 왜 저럴까라는 소리를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임용을 봐야 하는 시기에 공부를 더 하겠노라 대학원을 선택했을 때에는 사촌오빠가 친척들 다 모인 자리에서 돈 벌어야 할 시기에 공부가 무슨 말이냐며 이제 그만 놀아야 되지 않겠냐고 낄낄 웃었고 20대 중반부터는 온 식구들로부터 결혼은 언제, 누구랑 할 거냐는 부담스러운 관심에 시달렸다. 다 때가 있는 거라고 하는데 왜 다들 나 자신에게 주어진 타이밍이 언제인지 궁금해하지 않고 배려해 주지 않을까.
내 타이밍은 내가 결정하는 건데 나는 늘 생각해 보면 주변의 상황을 보아 좋은 시기를 결정당한. 그리고 주변에 상황에 영향을 받아 결정한 사람이었다. 나의 연애는 특히 더 그랬다. 타이밍의 농락에 늘 가슴 아팠고 눈물지었다.
첫 번째 연애 때는 그 남자가 말했다.
"우리가 조금만 더 늦게 만났으면 어땠을까?"
그 남자의 타이밍과 나의 타이밍은 너무 일찍 만났기에 어긋났다.
너무 순수하고 행복한 첫사랑이었지만 20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함께한 우리는 인생에서 서로만 만나다
결혼하는 게 과연 맞을까 늘 고민했었다.
"너랑 결혼하면 너무 행복할 거 같아. 그런데 가끔은 우리가 결혼할 시기에 만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 그렇게 우리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수많은 이유를 타이밍이란 핑계 뒤에 숨으면서 헤어졌다.
그리고 두 번째 연애 때 그 남자는 말했다.
"타이밍이 안 맞는 거 같아. 결혼은 너무 하고 싶은데, 내가 준비가 안되었어. 난 이제 막 취직을 했고 이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데.. 지금은 타이밍이 아닌 거 같아.. 나를 좀 더 기다려줄 수는 없어?"
타이밍이란 말에 진저리 치던 나는 역설적이게도 30대 초반에 결혼을 해야 남들과 속도를 맞출 수 있다는 순전히 나만의 타이밍에 맞춰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두 번째 남자와 헤어졌다.
모든 인생의 순간에 우리는 최적의 타이밍을 꿈꾼다. 남들 하는 기준에 맞춰서 나도 그 타이밍에 이 숙제를 끝내고 싶고 심지어는 내가 제일 앞서나가고 싶다. 몇 년 전까지 나는 생각했다. 나는 뒤처졌다고.
결혼도 인생도 최적의 타이밍에 나는 한 발짝씩 느리다고 생각했고 늘 전전긍긍했다. 다른 사람들은 왜 최적의 타이밍에 인생이 술술 풀리는데 나만 이렇게 어려운 것인가 자책하기도 하였다.
인생에 넘어야 할 허들이 이렇게 많은데 이렇게 늦게 출발해서 어떡하나 초조하기도 했다.
그리고 30대의 중반이 된 지금의 나도 여전히 초조하다. 결혼과 임신과 출산과.
여자로서 주어진 타이밍과 인간으로서 주어진 타이밍, 이 긴 인생의 시간 속에 나만의 타이밍은 늦춰져 가는 게 아닌가 가끔은 불안하다.
그렇지만 과거의 내가 다르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인정하는 것.
내 인생의 타이밍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남들의 인생은 미니시리즈지만 내 인생은 대하드라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빠르게 전개되는 미니시리즈는 재미있고 모든 사람들이 선호하는 드라마라면
대하드라마는 느리게 전개가 진행되어 때로는 답답하지만 세심하고 완성도 있는 드라마라는 것
그래서 오늘도 나는 마음속에 새긴다. 30대 중반, 내 인생은 대하드라마지만
누구보다 완성도 있게 내 인생을 펼쳐나갈 것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