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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체발광 Oct 23. 2024

처남, 처제, 처형/형수, 제수/형부, 제부/매형, 매

처남처제처형

     

아내가 남편의 형, 누나, 남동생, 여동생을 부르는 말은 한자조합으로 되어 있지 않은 것에 비해, 남편이 아내의 오빠, 언니, 남동생, 여동생을 부르는 말은 한자 조합이다. 이게 뭘 시사할까? 뭔가 불길하다. 앞에서 이미 맛을 봤으니 답은 대충 나온다.

   

남편은 아내의 오빠나 남동생을 처남(妻男)이라고 부르고, 아내의 언니를 처형(妻兄)이라고 부르고, 아내의 여동생(妻弟)은 처제라고 부른다. 아내의 오빠나 남동생은 위와 아래를 구분할 거 없이 그냥 ‘처의 남자’일 뿐이고, 아내의 언니는 ‘아내의 형(妻兄)’이고, 아내의 여동생은 ‘아내의 아우(妻弟)’이다. 아내의 오빠, 남동생이 ‘처남’ 즉 ‘처의 남자’이면 아내의 언니, 여동생은 ‘처여’가 되어야 했다. 굳이 ‘형제’라는 개념을 넣어야 했다면, 아내의 오빠가 처형, 아내의 남동생이 처제, 아내의 언니가 처자, 아내의 여동생이 처매가 되었어야 했다. 왜 이 규칙에서 벗어났을까? 내 누나, 내 여동생이 아니고 '아내의 언니', '아내의 여동생'이니 차마 '처자(妻姉)‘, '처매(妻妹)'라고 할 수 없었다. 여자끼리는 ‘누이’라는 말을 쓰지 않으니까. 이래놓고 국어사전에는 '언니와 여동생 사이'를 말한다고 풀이해놓았다. 사전이 사전이 아니다. 사전이 한 잔 걸친 게 틈림없다.     


그런데, 아내의 brother는 아내의 오빠, 아내의 남동생이 아니고 왜 ‘아내의 남자(처남/妻男)’이어야 했을까? 아내의 남자! 드라마 제목이 울고 가겠다. 아내의 바람상대도 아니다. 아내의 할아버지, 아버지, 삼촌이 우리는 남자 아니냐고, 왜 우리는 따시키냐고 발끈했을까?


'언니+여동생'을 '자매'라고 체면을 걸어놓고 해당하는 한자조합? 지칭?을 만들어놓지 않아서 호칭, 지칭들이 꼬여버렸다.


첫머리에 불길하다고 바람을 잡았다. 이제 그 불길함의 원인이 뭔지 파악해 보자. 이미 앞에서 '형제자매'에 대해 살펴보았다. 한 번 더 끄집어내자. 형, 언니, 누나, 오빠 중에 한자를 가지고 있는 말은 ‘형’ 하나 뿐이다. 형제자매(兄弟姉妹)는 형, 언니, 누나, 오빠 : 여동생, 남동생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다. 형, 언니, 누나, 오빠는 호칭이면서 지칭이다. 형제자매는 지칭이다. 이래서 여기서 파생되는 모든 호칭, 지칭이 꼬여버리는 거다.


글을 쓰면서 좋은 방법을 찾았다. 내 나라말인데 영어로 치환해 보니까 바로바로 와닿는다.


'형제자매'가 온전히 성립하려면 

elder brother + younger brother + brother's elder sister + brother's younger sister

이 조합뿐 아니라 

elder sister + younger sister + sister's elder brother + sister's younger brother

이런 조합도 가능해야 맞다.


물론, 한자사전에는 '姉'를 단순히 elder sister, '妹'를 younger sister라고만 풀이해놓았다. 이건 반만 맞다. 영어에서는 여동생의 눈높에서도 elder sister, younger sister가 성립하기 때문에 굳이 저 두 한자를 영어로 풀이해줘야 한다면 brother's elder sister, brother's younger sister 이렇게 해줘야 뜻이 통한다. brother를 집어넣어서 저렇게 바꿔놓고 보니 첫 번째 조합은 들어있는데, 두 번째 조합은 들어있지 않다. 형제자매는 반쪽짜리 지칭이었던 거다. 그러니, 여자한테 '형제자매가 어떻게 되십니까?'라고 물어보는 건 엄청 잔인한 말이다. 물론, 뇌가 절여져 있어서 무슨 말인지 바로 접수가 되긴 한다. 그런데, 비참하잖아!


    

형수제수     


남동생의 눈높이에서 형의 아내를 ‘형수(兄嫂)’, 형의 눈높이에서 남동생의 아내를 ‘제수(弟嫂)’라고 한다. 형의 아내니까 ‘형처(兄妻)’, 남동생의 아내니까 ‘제처(弟妻)’ 이렇게 의미에 충실해서 만들면 되는데, 이런 말을 놔두고 왜 ‘수(嫂)’라는 글자를 넣었을까? ‘부부(夫婦)’를 ‘부처(夫妻)’라고 칭하지 않으니까 이런 사고가 났다. 嫂자는 한자 사전을 찾아보면 코미디가 따로 없다. '형수 수'라면서 ‘남동생의 아내’한테 떡하니 갖다 붙여놨다. 제수(弟嫂)라는 말은 내 머리로는 납득불가다. 한자사전을 찾다보면 한국식 한자들은 풀이가 부실하다. 아니나다를까 뜻풀이가 간단하게 나오길래 이상하다 했더니 한국식 한자란다. 만들려면 똑바로 만들든가 없는 말 쥐어짜내 억지로 만들어 내려니 한자사전 체면이 말이 아니다.     


남동생은 형의 아내한테 ‘형수님’이라고 부른다. 형은 남동생의 아내한테 ‘제수씨’라고 부른다. 남동생은 ‘형수씨’라고 부르지 않고, 형은 ‘제수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건 또 어떤 논리? 난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형수, 제수라는 말에서 ‘형의 아내’, ‘남동생의 아내’라는 정체를 구해낼 수가 없다. 이럴 땐 한자풀이가 장땡이다.     


兄嫂 → 맏/형 형 + 형수 수     


형(兄)과 형수(嫂)가 만났는데 이게 어떻게 형수라는 말이 되나? '형의 형수', '형과 형수'지. 한국식 한자가 들어가면 사고를 치게 되어 있다. 이런 단어들을 하나둘 본 게 아니다. 한국식 한자는 다 나가죽어야 한다.          


형부제부      


언니의 남편을 ‘형부(兄夫)’, 언니가 여동생의 남편을 ‘제부(弟夫)’라고 한다. 한부모에게서 나온 여자 동기끼리는  ‘언니’와 ‘여동생’이 되지만, 한자 ‘형제자매’에는 언니와 여동생이 실종됐으니 언니의 남편, 여동생의 남편한테도 ‘형’과 ‘제’란다. 도전, 돌려막기? '언니의 남편'이니까 언니를 나타내는 한자를 가져와야 되는데 떠오르는 한자가 없다. '여동생의 남편'이니까 여동생을 나타내는 한자를 가져와야 되는데 역시 떠오르는 한자가 없다. 아쉬우니까 급한대로 언니가 '형(兄)'으로 변신했다.



매형매제     


누나의 남편을 ‘매형(妹兄)’, 오빠가 여동생의 남편을 ‘매제(妹弟)’라고 한다. ‘매(妹)’가 ‘손아랫누이 매’이니까 누나는 ‘손윗누이 자(姊)’를 써서 ‘자형(姊兄)’이라고 하는 게 맞지만, 매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매형, 매제 이렇게 위와 아래를 구분하지 않고 ‘매부(妹夫)’라고 부르기도 한다는데, 매(妹)는 '자매'할 때 그 '매'다. 한자 사전에 그냥 '누이 매'라고 풀이해놓았는데, 정확히는 '손아래'를 가리키는 말이다. 예전 한자사전에는 '손아랫누이 매'라고 적어놓더니 어느새 슬쩍 '누이 매'로 변신시켰다. 물론, 여전히 '손아랫누이 매'로 밝히고 있는 한자사전도 있다. '매(妹)' 이 한자의 진가는 '자매(姉妹)'에서 나타난다. 손윗누이 자 + 누이 매? 두 한자를 짚어봤으니 이제 누나의 남편, 여동생의 남편을 부르고 가리키는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자.

          

자부(姉夫) - 손위 누이의 남편을 이르거나 부르는 말 : 네이버 O / 다음 X

매부(妹夫) - 손위 누이나 손아래 누이의 남편을 이르거나 부르는 말 : 네이버 O / 다음 O


자형(姉兄) - 손위 누이의 남편을 이르거나 부르는 말 : 네이버 O / 다음 O

매형(妹兄) - 손위 누이의 남편을 이르거나 부르는 말 : 네이버 O / 다음 O     


자제(姉弟) - 누이와 동생을 아울러 이르는 말 : 네이버 O / 다음 X

매제(妹弟) - 손아래 누이의 남편을 이르거나 부르는 말 : 네이버 O / 다음 O     


인형(姻兄) - 손위 누이의 남편을 이르거나 부르는 말 / 네이버 O / 다음 O

인제(姻弟) 

- 편지글에서, 처남이 매부에게, 또는 매부가 처남에게 자기를 낮추어 이르는 일인칭 대명사 : 네이버

- 편지글 따위에서, 처남에게 자기를 겸손하게 이르는 말 : 다음     


올해(2024년) 추석에 즈음하여 등장한 인터넷 기사를 보니 누나의 남편을 부르는 말은 지역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자형이라고 부르는 지역이 있고, 매형이라고 부르는 지역이 있단다. 


이제 위에서 살펴본 사전 무시하고 '자'와 '매'의 한자대로 풀어보자.     


자부(姉夫) -  손위 누이 + 지아비 : 누나와 지아비, 누이의 지아비, 

매부(妹夫) - 손아래 누이 + 지아비 : 여동생과 지아비, 여동생의 지아비     


자형(姉兄) - 손위 누이 + 맏이/형 : 누나랑 맏이/형, 누나의 맏이/형

매형(妹兄) - 손아래 누이 + 맏이/형 : 여동생이랑 맏이/형, 여동생의 맏이/형     


자제(姉弟) - 손위 누이 + 아우 : 누나랑 아우

매제(妹弟) - 손아래 누이 + 아우 : 여동생이랑 아우, 여동생의 아우     


누나의 남편, 여동생의 남편을 얘기하는데 '형'이랑 '아우'는 왜 등장하는지 갸우뚱해진다. 언니의 남편, 여동생의 남편이 '형부', '제부'였던 걸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자부', '매부'가 어울리는 말이다. 자형, 매형, 자제, 매제는 탈락이다. 누나가 됐든 여동생이 됐든 한 여자의 남편이다. 왜 남동생/오빠의 욕심으로 형, 동생 타령인가! 형, 동생 찾을 거면 '법으로 맺어진' 이 전제라도 집어넣든가. '남편' 자리에 '형'과 '동생'이 들어가는 말은 다 해당한다. '남편'을 '형'과 '동생'으로 둔갑시키지 말아야 한다. 문제는 '법으로 맺어진' 이 꼬리표가 붙어도 '지칭'에만 해당하기 때문에 '호칭'을 할 때는 또 곤란해진다는 점이다. 


어떤 말은 호칭으로만 쓰인다. 어떤 말은 지칭으로만 쓰인다. 어떤 말은 호칭과 지칭 둘 다에 쓰인다. 나이에 성별까지도 모자라 지칭과 호칭까지 짬뽕으로 써먹는데 문제가 안 터지면 그게 더 이상하지. 이 삼박자가 조화를 이루는 건 기적일테니까.


'누나+형(자형)', '여동생+형(매형)', '누나+아우(자제)', '여동생+아우(매제)' 이런 한자조합은 애초에 탄생하지 말았어야 했다. 대참사다. 이건 그냥 sister+brother이지 '아내+남편' 조합, 그러니까 '부부'가 아니다. '남편'을 당사자인 누나/여동생 기준에서 보는 게 아니라 남동생/오빠 기준에서 보니까 위냐(형) 아래냐(아우)를 갖다붙인 거다. 


그리고, 매(妹)라는 한자가 입장 발표를 해줘야 한다. '손아랫누이 매'로 남을건지 그냥 '누이 매'로 남을건지. 그래야 '자매(姉妹)라는 말도 체면이 서고, 사전도 난처해지지 않는다.


마지막 고개가 남았다.


처형, 처제

매형, 매제


형부, 제부

새언니/올케언니, 올케


이 네 조합을 보면 brother가 sister의 남편을 부르는 호칭에는 '형'과 '제'가 들어가 있다. sister가 brother의 남편을 부르는 말에는 '夫' 즉 '남편'이 들어가 있거나 아예 딴판이다. 그냥 기준이 없이 왔다리갔다리다. sister가 brother의 남편을 '형처', '제처'라고 하지 못하는 이유는 남동생이 형의 아내를 '형처'라고 불러야 되는데,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형의 아내는 '妻'가 아니라 '婦'라서 그렇게 부를 수가 없다. 자신들은 그렇게 못 부르지만 sister한테 주기도 아까운? 언니의 남편이 '형부'이고, 여동생의 남편이 '제부'이면, 오빠의 아내는 '형처', 남동생의 아내는 '제처'가 돼야 되는데 sister들은 이렇게 부르기 싫은? 새언니/올케언니, 올케로 부르고, 불리고 싶은? 뭐 쪼끔 이해도 된다. 남동생이 형의 아내를 '형처'라고 부르고, 형이 남동생의 아내를 '제처'라고 부르면 같은 처지 아니겠어? 이게 '형제'라는 말이 가진 힘인가? 젠장! 


sister의 눈높이에서는 왜 어떤 말은 '형'과 '제'를 붙이고, 어떤 말은 못/안 붙이는지 이건 덜떨어진 여자 취급받는 나같은 사람한테만 고민거리라서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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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 아이가 등교 준비를 하는데, 아이 친구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학교에 같이 가자는 전화였다. 아이가 자기는 준비가 덜 되었는데 친구가 두 번째 전화를 하니까 "뭐라구? 내집으로 오고 있다구?" 급하게 이렇게 말해버리는 게 들렸다. 7살에서 5학년으로 건너뛰었는데 여전히 '내집'이란다. 몇 살 때 '우리집'으로 바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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