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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체발광 Oct 28. 2024

내외/집사람, 안사람/친가, 본가:친정/외가, 친가/부

내외

  

이 말은 부부라는 말을 나타내는 어르신표 단어다. 젊은 사람들은 거의 쓰지 않는 말이다. 여자는 집안에서 살림을 하니까 ‘내(內)’이고, 남자는 집밖에서 일을 하니까 ‘외(外)’란다. 예전엔 이 말이 먹혔다. 아, 물론 요즘도 신문 기사에서는 '대통령 내외'라는 말을 여전히 쓰고 있긴 하다.


[다음]사전을 찾아보니 기본 뜻은 '남자와 여자. 또는 그 차이'라고 나와 있다. 더 고리타분한 내용도 있다. 유교식 예절에서 나온 말이란다. 말 다했다.


여자는 안 남자는 밖, 이 발상이 안사람:바깥양반(바깥사람), 안사돈:바깥사돈, 집사람:? 같은 지칭을 만들어냈다. ‘집사람’을 빼고는 다 나이드신 분들이 사용하는 표현이다. ‘바깥사람’이라는 말은 사전에는 나와 있지만 일상에서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은 ‘바깥양반’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여자는 안, 남자는 밖! 이 발상은 여자는 안에만 머무는 사람이니까 바깥 세상은 넘보지 말라는 뜻을 반영했다. 어디 여자가 감히 남자가 하는 일에 감놔라 배놔라 하냐 이런 발상이 낳은 말이다. 남자의 언어로 살아가기 때문에 이걸 신경을 쓰지 않는 것뿐.            



집사람안사람


아내가 집사람이면 남편은 회사사람쯤 되겠다. 옛날엔 아내가 안사람남편은 바깥양반이라고 했다 쳐도 오늘날은 왜 이 말을 붙잡고 있는 걸까? 과거의 영광을 놓아줄 수 없다? 시장에도 가고, 영화도 보러가고, 여행도 다니는 아내한테 집사람, 안사람이라고 딱지붙이는 건 가혹하다기 보다 게으르고 머리가 나쁘다는 얘기로 들린다. 아내는 남편을 ‘회사사람(?)’이라고 지칭하지 않는데, 남편 혼자 '집사람'이라고 하는 건 이 지칭이 짝퉁이라는 얘기다. 이 말은 단순히 아내가 집에 있고, 남편이 회사에 있어서 이런 뜻으로 쓰는 말이 아니다. 아내는 집안 살림과 육아만 신경 쓰고, 남편이 하는 바깥 일은 넘보지 말란 얘기다. 아내는 공적 영역에 등장하지 말고 사적 영역에 머물러야 한다던 시절이 만들어낸 말이다.


난 자기 아내를 집사람이라고 하는 남자들을 보면 무슨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인가 의심하게 된다. 아, 물론 내 남편도 나를 그렇게 지칭한다. 비록 영어이긴 하지만 어디 가서 자기 아내를 ‘와이프’라고 지칭하는 사람을 보면 그래도 고민은 좀 하며 사나보다 이렇게 보게 된다. 


내외건, 집사람/안사람 바깥양반이건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서로를 바라보지 못하고 난 전방을 담당하는 사람, 넌 후방을 담당하는 사람 서로를 이런 존재로 인식하고 사는 건 슬픈 일이다.          



친가/본가 친정

     

남편이 자신의 부모님 집에 갈 때는 친가 혹은 본가에 간다고 한다. 아내가 자신의 부모님 집에 갈 때는 친정에 간다고 한다. 그냥 똑같이 친가, 본가인데 굳이 '친정'이라고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유래, 어원을 찾아봤으나 찾을 수 없었다. 남편은 ‘친가(親家)’에 가지만, 아내는 ‘친정(親庭)’에 간다. 남편이 친정에 가고, 아내가 친가에 가면 안 되나? 둘 다 땡!이다. 굳이 이런 말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부모님 집에 가는 걸 참 요상하게 표현한다. 아이 입장에서 보면 답이 나온다. 아이는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가는 건데, 아빠는 어머니, 아버지 집에 가는 게 아니라 친가 혹은 본가에 간단다. 부모님에게서 독립해 산다는 개념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떨어져 산다는 개념이니까 본가에 가겠다는 거다. 아이들한테 배우자. 내 집, 부모님 집이면 끝난다.               



외가친가

      

위에서 살펴본대로 내외(內外)는 부부를 말한다. 이 규칙대로라면 '내가(內家)'와 '외가(外家)'가 대비되어야 맞는데, 외가는 있는데 내가는 없고 친가(親家)만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아빠 쪽이 친가, 엄마 쪽은 외가다. 이 규칙은 아빠와 엄마 사이에 합의가 된 사항은 아니다.


밖이 있으면 안이 있어야 되니까 아빠 쪽이든 엄마 쪽이든 한쪽은 ‘내가’가 되고, 한쪽은 ‘외가’가 될 수 밖에 없는데, 외가는 친가에 대응하는 말이 아니다. 친가는 짝퉁이다. '친할 친'에 대응하는 말은 '친하지 않은'이다. 친하고 안 친하고는 감성이 작용한 말이다. 핏줄은 감성 영역이 아니라 생물학적 영역이다. 긴 설명 필요없고, 영어로 바꿔보면 답 나온다. 예를 들어서, '친부모'를 close parents라고 표현할 건가? biological parents 혹은 real parents라고 표현할 건가?     


친가(내가?), 외가는 왜 따질까? 친가니 외가니 내가니 갈라놔봤자 어차피 본질은 낳아준 부모 집이다. 어차피 아이의 눈높이에서 보면 아빠 쪽이든 엄마 쪽이든 할머니 할아버지 댁이긴 마찬가지인데, 왜 굳이 억지 단어를 끼워맞춰서 본질에서 멀어지는 걸까?                 



부인


사전을 찾아보니까      


부인(婦人) - 결혼한 여자

부인(夫人) - 남의 아내를 높이는 말     


이렇게 나와 있다. 내가 유독 이런 단어만 찾는 것도 아닌데 풀이가 보통 이렇게 대충 때려넣는 식이다.

     

婦人 - 며느리 +사람

夫人 - 지아비 +사람     


婦人은 며느리인 사람인데, 夫人은 지아비의 사람이란다. 같은 논리를 적용해서      


婦人 - 며느리의 사람

夫人 - 지아비의 사람     


婦人 - 며느리인 사람

夫人 - 지아비인 사람     


이렇게 풀이하지 않았다. 婦人은 며느리인 사람, 夫人은 지아비의 사람. 맘에 드는 거 각각 하나씩 뽑아냈다.

     

지아비의 사람이 내 여자인지 남의 여자인지는 뭘로 판단할까? 내 마누라도 '지아비'가 있다. 남의 아내든 내 아내든 결혼한 여자는 다 지아비가 있다. 夫人에 남의 아내라는 말은 들어있지 않다. 하도 세뇌가 되어서 '부인'이 남의 아내를 높이는 말이라고 접수가 된 것뿐이지 한자 입장에서 보면 억울한 일이다. 남의 부인을 높이는 말은 한자에 없었다. 우리가 뭐에 씌어서 높이는 말이라고 착각했던 것 뿐. '지아비(夫)가 있는 사람'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지아비가 '있다' 혹은 '없다'를 나타내줄 뿐인데 '높여준다'는 개념은 어디서 출현했는지 모르겠다. 높이긴 높였다. '人'이라고 했으니 출세했다. 하하, 얻어걸린 것 뿐이다. 내 마누라 보고 婦妻라고 하면 웃기잖아! 남의 아낙을 보고 夫妻라고 해도 웃길 거고. 차라리 ‘처인(妻人)’이라고 해놓든가. 머리가 나빴던 걸까? 굳이 외면해 버린 걸까?

      

그런데, 사극에 보면 자기 아내를 두고 ‘夫人(지아비의 사람)’이라고 부르는데(국어사전 3번 풀이 참고!) 우리는 그걸 높이는 말이라고 받아들인다. 자기 아낙을 부르면서 본인 자신을 가리키는 말을 집어넣어서 부른다. 같이 사는 사람이 귀신이 아닌 바에야 '사람'이라는 건 눈앞에서 확인이 되는데, 눈앞에 있는 사람을 두고 '지아비가 있는 사람'이라고 불러야되나? 婦人이라고 하면 더 웃길 거고. 하여간 난 이 넘의 '부인'이라는 말이 맘에 안 든다. 아내를 존중해준다기보다 반대로 '나랑 거리를 유지하시오.' 나는 이런 경고성 호칭으로 들려서 거슬린다.      


여기서 나의 쓸데없는(?) 걱정을 고백해보자.     


1. 귀에 들어오는 말은 '부인'인데 한자가 婦人인지 夫人인지 어떻게 확인하지? 대충 찍어서?

2. 남의 아내를 높이는 말이 있으면 남의 남편도 높여주는 게 예의다. 남의 남편을 높여주는 말은 ‘부군(夫君)’이라고 한다. 君은 '임금 군'이기도 하지만, '남편 군'이기도 하다. '부군'은 '지아비인 임금'? 지아비인 남편?      


한국말에 '남편'이라는 말이 언제 등장했는지 모르겠다. 지아비랑 동시대 등장이라면 '남편'이라는 말이 있는데 굳이 '지아비'라는 글자를 고집했을 리 없다. '남편'이라는 말은 나중에 추가된 뜻이 틀림없다. 고로, 옛날엔 '지아비 = 집안의 임금'이라고 생각했던 게 틀림없다. 한자 하나를 놓고 임금과 지아비가 공유했다. 각각에 맞는 글자를 따로 갖는 게 아니라 항상 뜻을 두 개 갖는 쪽을 택했다.     


여자는 결혼하면 ‘아내인 사람(처인/妻人)’이 되지 않고, ‘며느리인 사람(부인/婦人)’이 된다. 한자대로라면 남편을 부인(夫人/지아비인 사람), 아내를 처인(妻人/아내인 사람)이라고 해야 맞다. 짚신도 짝이 있으니까. 결혼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 본래의 뜻에 충실하지 못하고 억지로 말을 만들어내다 보니 정작 ‘부인(夫人)’이라는 말은 남의 아내를 높여 부르는, 남편인 당사자와는 상관없는 팔자가 되었다. 결혼한 여자는 다 '지아비(夫)'가 있다. 부인(夫人)이 남의 아내를 높이는 말이라면 남의 아내는 지아비가 있는 사람인데, 내 아내는 졸지에 지아비 없는 여자가 돼버린다. 그 높임말의 정체는 고약한 말장난이이었다.


남의 여자는 '지아비의 사람' 즉, '지아비가 있는 사람'인데, 남의 남자는 '지아비인 임금', '지아비인 남편'이란다. 남의 남자를 높이는 말에서 전자를 버리고 후자를 택한다 해도 '지아비가 있는' 아내와 남편 자신이 '지아비인' 건 성격이 다르다. 남자는 자기 자신을 말하고 있지만, 여자는 누군가에게 매여 있는 신분임을 나타낸다. 남자는 주체니까 스스로를 말할 수 있지만 여자는 객체니까 그럴 수 없다. 이게 부인과 부군의 차이다. 이게 결혼한 여자가 '처인(妻人)'이 되지 못하고, '부인(夫人)'이 될 수 밖에 없던 이유다. 그래놓고 '부인(夫人)'이 남의 아내를 높여주는 말이란다. 젠장!이다.


'부인(夫人)'에 입각해 '부인(婦人)'을 '며느리(즉, 지어미)의 사람'으로 풀이하면 남의 남자를 높이는 말로 써먹을 수 있을텐데 왜 굳이 '부군(夫君)'이라는 말이 만들어졌을까? 스스로 주인이어야 되는데 '부인(婦人)은 '누구의 누구'라는 종속된 존재로 풀이된다. '부군(夫君)'은 지아비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남자가 필요한 말은 기를 쓰고 만들어냈다. 부부(夫婦)인데 부인(夫人)과 부인(婦人)이 따로 노는 따로국밥이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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