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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로 위 미진 Sep 25. 2024

02. 독서실 안 가는 공시생은 오늘도 바쁩니다.

나를 알기 위한 첫 번째 단계

02. 독서실 안 가는 공시생은 오늘도 바쁩니다. 


 공시생 영업 종료 후 처음 맞이하는 아침. 이 시간에 아직도 집에 있는 내가 너무 낯설다. 영업을 종료하며 내가 했던 다짐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무슨 일을 하든 하기로 했으면 의심하지 말자’, 두 번째는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해보자’였다. 이 다짐을 이뤄내기 위해 무엇을 먼저 해야 할까? 우선 나를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태블릿을 켜고 노트 어플로 들어가서 빈 화면을 띄웠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적어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너무 어려웠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모르고 살아왔던 것들을 하루아침에 아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적다 보니 좋아하는 것들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좋아하는 일, 행동, 사람, 음악, 색깔, 음식, 취미 등 적다 보니 한 페이지를 꼬박 넘겼다.


 우선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사람들 앞에서 내 이야기를 하고 나를 표현하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하지만 매일을 벽으로 둘러싸인 독서실 방 안에서 혼자 보냈으니 나에게는 정말 고역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걸 모르고 있었던 나는 마치 나에게 폭력을 휘둘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불안정과 도전을 좋아한다. 불안정을 즐기고 새로운 세상을 개척해 나가는 것을 너무나도 좋아한다. 새로운 것이 보이면 도전하려고 달려들었다. 사람들은 내게 일을 벌인다고 하였지만 나는 그게 좋았다. 한 우물만 파라는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건 나랑 맞지 않았다.

 나는 작은 것이라도 새로운 시선으로 보는 것을 좋아한다. 내게 주어진 상황을 여러 시선으로 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닫는다. 그 과정에서 아이디어가 넘쳐난다. 그래서 내 인생은 매일이 너무 즐겁고 새롭다. 같은 것을 보더라도 다르게 느낄 수 있다. 사실 이건 내가 가지고 태어난 엄청난 능력이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무의식적으로 아이디어가 넘쳐났다. 관심받는 것을 좋아해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이목을 끌까 라는 고민을 수도 없이 한다. 어쩌면 내 성향과 내 능력이 복합적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세 가지 외에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게 되면 하나도 빠짐없이 여기에 기록해두려고 한다. 나를 알아가는 것은 여기서부터 시작되니까. 


 적고 다시 읽어보니 마치 남이 쓴 글을 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아닌 것 같았다. 좋아하는 것들을 다 적고 싫어하는 것들도 적어봤다. ‘내가 싫어하는 것들이 이렇게 많았다고?’ 하며 써 내려갔다. 항상 나는 ‘예스걸’이었다. 그래서 싫어하는 게 없다고 생각해 왔다. 내가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그리고 억지로 타인들의 틀에 나를 맞춰나갔다는 사실도 알게 되면서 문득 나라는 존재에게 미안해졌다. 내가 나를 가장 많이 보듬어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게 미안했다.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다 보니 어느덧 오전이 다 지나가버렸다. 살면서 나에 대해 이렇게 집중한 시간도 처음이었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평생 함께 살아온 나였는데 내가 나를 가장 모르고 있었다.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갔다. 이 시간을 나도 모르게 즐기고 있었나 보다. 벌써 점심을 먹을 시간이라니..!


 이토록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 힘들기 때문에 평생 자신을 모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나에게 나를 알아가는 시간은 공부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머리가 터져나갈 것 같았고 속이 울렁일 정도로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었다. 하지만 인고의 시간 끝에서 그 결과물은 너무나도 찬란했다. 큰 깨달음을 얻었다. 이런 깨달음을 얻은 것이 내 인생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었다. 그리고 이건 내게 온 큰 행운이었다. 


'아!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몰라줘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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