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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솔 Bin Sole Sep 23. 2024

작품의 의미

글로서 나타나는 작품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작품의 의미

글로서 나타나는 작품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많은 사상가들이 이 문제에 천착하여 주옥같은 의견을 피력해 주었는데 이 들중 내가 접한 몇 사람의 글을 이곳에 옮겨본다.  


    데리다, 잉가르덴  

문학작품은 독자가 해석을 감당할 때에야 비로소 어떤 자기동일성을 띤 미학적 대상으로 탈바꿈된다. 문학작품은 어떤 완결된 자기동일성이나 미리 정해져 있는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읽기와 해석을 기다리는 미결정성의 얼룩들을 핵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핵은 미학적 잠재력이 충전되어 있는 장소이고, 그 잠재력은 독서 행위를 통해 비로소 구체적으로 현실화된다. 하지만 그 현실화 과정은 정해진 노선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독자에 따라,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방향으로 이루어질 뿐이다.  

    롤랑 바르트  

작품은 저자의 사유 안에 먼저 있었던 기의의 총체성에 근거한다. 작품은 그 기의의 총체성을 재현하는 기표의 총체성이다. 이 총체성의 공간은 동질적이며 단일한 중심을 지닌다. 반면 텍스트는 저자의 의도와 무관한 일탈적 의미작용이 일어나는 공간이며 다양한 관점, 다양한 언어와 문화가 함께 엮이는 공간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바르트의 관점에서 작품의 종언은 저자의 죽음과 맞물려 있고, 그 저자가 물러간 자리에 등장하는 것은 독자이다. 텍스트의 탄생은 독자의 탄생과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이다.

바르트는 이런 저자의 죽음이 일어나는 지점에서 다시 글쓰기의 시작을 본다. "저자는 자신의 고유한 죽음에 임한다. 글쓰기가 시작된다.말하는 것은 언어이다. 결코 저자가 말하는 것이 아니다. 쓴다는 것, 그것은 선행의 비인격성을 통과해서 '자아'가 아니라 오로지 언어만 이 행동을 '수행'하는 지점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바르트적 의미의 글쓰기는 심리적 주체의 재현적 행위가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되는 순수한 언어적 사건이다.  

    프로이트, 라캉  

프로이트가 말하는 대로 멜랑콜리에서는 자아가 잃어버린 대상과 자기를 동일화한다면 작품은 잃어버린 자아의 장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창작 활동에 의해 자아와 동일한 기능을 지닌 것을 공백이 된 장에 놓는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술가에게 작품은 자아와 동일한 지위를 갖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창작된 작품은 자기의 작품으로 예술가 자신을 반영하는 것이다.이와 같이 작품은 자아와 동일한 기능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이 잃어버린 대상의 장을 차지하는 자아가 있는 것과 동일한 장소에 찾아오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예술가는 창작을 통해 무의 장에 베일을 씌우는 능력이 있으며, 예술가에게는 아버지의 이름의 배제가 자기 예술을 창조하는 데서 방해물이 되지는 않는다. 그들은 창작을 통해 아버지의 이름에 해당하는 것을 창조해내는 것이다. 그러한 사실이 그들에게서 예술활동을 자기 존재를 위한 필요조건으로 만든다.예술작품을 창조하는 것, 항아리를 만드는 것, 시니피앙, 이 모든 것은 무를 내포하는 무로부터의 창조이다.예술가는 das Ding의 자리에 작품을 놓지만 시인은 사랑하는 여인을 놓는다.  

    블랑쇼  

문학작품은 근본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작가의 자아나 작가에게 고유한 어떠한 속성도 표현하지 않으며,작품은 인간과 세계가 맺는 독특한 관계를, 즉 세계와의 관계가 불가능해지는 한계시점 에서의 관계를, 관계맺음의 불가능성으로 인한 관계를 무화(無化)된 세계 또는 세계의 무(無)와의 관계를, 관계의 불가능성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더 명백한 것(부재의 현전)이 되는 관계를 즉 유한성 내에서 세계의 한계와 마주하는 급진화된 탈존을 그린다는 것이다. 작품에서 단어들의 "자기 파괴 행위"가 이루어질 때, 이미지는 정확히 말해 사물의 이미지가 아니라, 사물의 동적 주어짐 · 나타남의 이미지, 즉 사물의 현전(존재)의 이미지, 또는 사물의 세계 내에서 고정된 형상(표상)을 압도해 무화시키는 형상 없는 것(바깥)의 이미지이다. 이미지는 형상 없는 것, "부재의 형태 없는 현전" 즉 바깥의 상징이다.

언어는 언제나 단어들이 사라져간 곳이며 나타남과 사라짐 가운데 유동하고 있는 공간이다. 본질적 언어(문학적 언어)는 무규정적인 것(바깥)을 규정하는 철학의 시도가 무위로 돌아갈 때, 무규정적인 것에 이르러 그것을 무규정적인 것으로 보존해야만 한다. 본질적 언어는 존재와 인간이 만나는 지점,사물들의 나타남과 사라짐이 음악처럼 울리며 그와 동시에 모든 의식적 의미 부여가 한계에 이르고 인간이 침묵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는 공간을 가리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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