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무너진 날

by 잉글맘

조금씩 생활이 안정되어 가던 어느 날,

남편에게서 다급한 연락이 왔다.

수업 도중 과호흡이 왔고, 공황 증상 같다는 말이었다.

혼자서 딸을 돌보고,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던 시간들.

결국 몸이 먼저 무너져 내린 것이었다.


그 위급한 순간에 남편은 가장 먼저 나를 떠올렸고 전화를 했던 것이었다.

“괜찮아?”

그 이후에는 충분히 위로와 공감을 해주지 못했다.

마음속에서는 전혀 다른 감정이 먼저 올라왔다.

‘이제 어떡하지…’
‘조금만 더 버티면 되는데…’
‘왜 이렇게 나약해…’


지금 생각하면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말았어야 할 마음들이었다.

전화기 너머로 나의 거리감이 느껴졌을까.

남편은
“혼자 있고 싶어.”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견딜 수 없이 답답해져 시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그날은 친구와 저녁 약속이 있던 날이었다.

대구의 김광석 거리, 방천시장 골목으로 들어가던 길.

시장통으로 들어가다 아버님께서 통화가 가능하다는 연락을 주셨다.

남편의 상태에 대해 차분히 설명해 주셨지만
나는 그때 무슨 말을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였던 것 같다.

사실 나는 한마디를 듣고 싶었다.

“조금 쉬면 괜찮아질 거야.”


하지만 아버님의 말은 달랐다.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야.”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내려앉았다.

남편의 건강 이상은 우리 가족을 다시 벼랑 끝으로 밀어 넣었다.



평안하게 살아오던 우리는
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만큼 단단하지 못했다.

나는 버티지 못한 남편에게 실망했고 화가 났다.

매일 이어지는 전화 통화 속에서 원망이 쏟아졌다.

그 말들은 고스란히 남편에게 상처가 되었다.

그리고 말다툼이 시작되었다.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영국으로 온 것부터 잘못이야.”

“비자를 어떻게 거부당할 수 있냐고.”

감정은 점점 거칠어졌다.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그냥… 한국에서 다시 살면 안 될까?”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참지 못하고 화를 냈다.

‘이 비겁한 사람.’

영국에서 단 3개월만 더 버티면 되는 상황이었다.

이미 절반은 지나왔다.

그런데 지금 포기하겠다고?

나는 그 말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남편은 나의 태도에 실망했고, 나는 더 크게 화를 냈다.


서로의 말을 듣지 못한 채 감정만 부딪혔다.

그렇게 상처를 주고받는 날들이 이어졌다.

결혼 12년 만에 가장 큰 위기였다.


겨울은 길고 추웠다.

그리고 우리가 다시 만나기로 한
파리 여행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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