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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 교수님께,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영어영문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00 00중학교 00분교장’에 근무하고 있는 과학교사 000입니다. 이렇게 느닷없이 메일을 보내게 되어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졸업논문에 대하여 드릴 말씀이 있어서 메일을 보냅니다.
저는 현직교사여서 학기 중에는 논문을 쓸 시간을 내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지난겨울방학에 꼬박 논문에 매달려 ‘영어 모음의 발음법’이라는 제목으로 미리 졸업논문을 작성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올해 홈페이지에 공고된 가능한 졸업논문 유형을 보니 작년까지 공고되어 있던 ‘영어 발음법’ 항목이 빠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작성한 논문은 무용지물이 된 셈입니다.
교수님, 방학 내내 애써서 작성한 제 논문이 이대로 헛수고로 끝나야 되는 건가요? 저로서는 너무 황당하고 억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졸업논문을 작성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막막하기 짝이 없습니다. 가르치면서 어렵게 학업을 이어가는 저의 고충을 헤아려 주셔서 ‘영어 발음법’ 항목을 다시 추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03년 3월 12일 000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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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은 나의 직장 생활에서 큰 변화가 일어났던 해이다. 16년간 근무했던 ‘00 00 고등학교’에서 공립으로 넘어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1984년, 국립사범대를 졸업하고 공립학교 발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후에도 발령이 날 기미가 없었다. 그 이듬해, 마침 사립학교인 ‘00 00 고등학교’에 화학교사 자리가 비었다는 연락을 받고 지원서를 제출하여 나의 첫 교직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16년 후, 2001년 학교 재단의 사정으로 ‘00 00 고등학교’로 교명을 바꾸고 공립학교로 넘어가게 되었다. 근무하던 교사들은 다시 ‘임용시험’을 거쳐서 공립학교에 재임용되었다.
‘00 00 고등학교’는 인문계 고등학교여서 모든 교육과정이 대학 입시위주로 집중되었다. 특히 00라는 곳에서는 고등학교가 필요이상으로 많아서 그 경쟁이 정말 치열하였다. 학생들이나 교사들의 생활은 정말 녹녹지 않았다. 아침 1교시 전 1시간 보충수업, 정규수업 6교시 후 두 시간 보충수업 그리고 저녁 10시까지 야간자습, 등등...
한 10년쯤 근무하고 나니 정말 ‘멘틀 붕괴’가 되었다. 물론 보람도 있었지만 ‘한평생 여기서 이렇게 살아야 되는가?’라는 생각을 해보니 앞이 캄캄해졌다. 조금 더 기다렸다가 공립학교로 갈 걸 하는 생각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어쩌랴! 돌이킬 수는 없으니 내 마음을 다잡을 수밖에.
좀 더 취미 생활에 몰두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 당시 00역 앞 00 빌딩 6층에 수영장이 있었는데 수영장에 거의 매일 다녔다. 수영을 하는 동안만큼은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고 수영 후에는 몸과 마음이 상쾌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던 중 ‘뭔가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일이 없을까’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어느 날, 서재의 책꽂이에서 색 바랜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온다. 고등학교 시절 손때가 꼬질꼬질하게 묻도록 공부했던 그 유명한 ‘성문 종합 영어’ 책이다. 교내 영어 경시대회에서 몇 번 입상했던 일도 기억난다. 이거다...!
나의 영어공부 여정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글로벌 시대에 영어실력을 쌓아 놓는 것도 가치 있고 보람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성문 종합 영어’, ‘오성식 생활영어 7200’ 전집(8권)(테이프 포함), 그리고 EBS 교육 방송을 적극 활용하였다. 특히, ‘TV 영어’, ‘서바이벌 잉글리시’, ‘중급 영어회화’는 거의 매일 녹음하고 출퇴근 시간에도 반복해서 듣곤 하였다. 한 7년 정도 그렇게 지났을까?, 이제는, ‘정식으로 영어 공부를 해 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2001년 3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영어 영문학과 3학년에 편입하기에 이른다.
똑같은 해인 2001년도에 공립으로 넘어가는 바람에 동해안에 있는 ‘00 00 고등학교’로 이동하게 되었다. 00에서 00를 지나 동해안 쪽으로 차를 운전해서 가면 두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다. 바닷가에 있는 방 두 칸짜리 13평 아파트(3층)를 전세로 얻었다. 바닷가 뷰가 멋진 집이었다. 집사람은 00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혼자 자취하며 지냈고 주말에만 집에 올 수 있었다.
고등학교에 배치되어 1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다. 우리 반 아이들은 6명이었고 모두 성격이 밝고 명랑하여 생활지도엔 별문제가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하는 애들이라 화학과목에 대해서는 별 부담을 가지지 않는 것 같았다. ‘00 00 고등학교’에서 입시지도를 할 때와 비교하면 여기서는 정말 수월하였다. 오후 4시 반, 퇴근 후에는 주로 EBS를 활용한 영어공부도 하고 방송통신대학교 영어 영문학공부도 하며 지냈다.
1년 만인 2002년도에 운 좋게도 집에 조금 가까운 00로 이동하게 되었다. ‘00 00 중학교 00분교장’으로 발령이 났다. ‘0000 수목원’이 있는 산골짜기에 있는 벽지학교이다. 전교생이 10명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학교였다. 집에서 차로 50분 정도 걸리는 거리지만 겨울철에 눈이 쌓이면 다니기가 힘들다는 소리를 듣고 교내 관사 하나를 맡았다. 학생 수도 적고 학생들이 상당히 순수하고 착해서 학생지도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퇴근 후에는 가끔씩 관사에 남아서 방통대 영문과 공부도 하곤 하였다.
어느덧 방통대 4학년 2학기를 마치고 나니 졸업논문을 준비해야 되는 시기다. 한 학기만 마치면 졸업할 수 있는 학점인 140학점을 채울 수 있다. 학기 중에 졸업논문까지 쓴다는 것은 너무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 이 번 겨울방학을 이용해서 졸업논문을 써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학교 홈페이지에 공고된 논문주제를 보니 ‘영문학 작품’에 관한 것이나 ‘영어 발음법’에 관해서 논문을 작성하도록 되어 있다. ‘영문학 작품’에 대해서 논문을 쓰려니 자신도 없고 시간도 많이 걸릴 것 같아서 ‘영어 발음법’을 선택하여 논문을 작성하기로 마음먹었다.
겨울방학 내내 논문에 매달려 겨우 완성하게 되었다. 그런데, 2003학년도 학교 홈페이지에 발표된 논문 주제 유형을 보니 ‘영어 발음법’이 빠지고 없는 것이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그동안 고생하며 작성한 졸업논문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다. 담당교수님께 직접 메일로 내 사정을 말씀드리고 도움을 요청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치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격이지만 달리 방법이 없지 않은가? 일단 부딪쳐 보기로 하고 메일을 보냈던 것이다.
한 달 정도 지났을까, 학교 홈페이지 졸업논문 주제 유형에 ‘영어 발음법’ 항목이 추가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달걀로 바위를 깬 거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담당교수님의 배려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진심은 이렇게도 통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2004년 2월 28일, ‘성적 우수상’을 받으며 졸업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해, ‘00 중학교 00 분교’로 이동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