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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이 기우가 되길..

by 쿠키

어제 늦은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다가 문득 친구 얼굴이 떠올랐다. 오랫동안 통화를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보니 아홉 시가 넘어 있었다. 얼른 설거지를 마치고 손에 묻은 물기를 대충 수건에 문질러 닦고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너무 늦었나 싶은 마음에 잠깐 망설였지만 친구는 언제라도 내 전화를 반갑게 받아줄 거라는 걸 알기에 그대로 전화를 걸었다.


"응, ㅇㅇ아! " 친구가 명랑하게 나의 이름을 부른다.

"응, J야 잘 지내지?" 나도 덩달아 발랄하게 안부를 묻는다.

우리는 흘러가는 대로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들 이야기, 친구들 이야기, 시국이야기, 미중패권 이야기 등등..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핸드폰이 뜨겁다. 시계를 보니 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친구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하려는 찰나 친구가 내일 용인에 가야 한단다. 서해안 바닷가 동네에 사는 친구가 용인엘 간다고 하니 내 머릿속에 떠오른 건 기껏 자연농원이었다. 친구나 나나 놀이기구 탈 나이는 지났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웃음이 났다.

"놀이기구 타러?" 하고 물으니 등과 무릎과 허벅지 등이 아프단다. 나는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을 떨치듯 고개를 흔들며 아무렇지 않은 척 "우리도 나이가 드나 보다. 안 아픈 데가 없으니 원.."하고 대꾸한다.


친구는 아무래도 몸이 이상하다고 한다. 단순히 담이 들어 결린 거 같은 느낌도 아니고 나이가 들어 약해지는 관절로 인한 통증과는 다른 느낌이라 한다. 조그만 동네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건 x-ray 정도여서 그거라도 찍어보긴 했으나 엑스레이로 뭘 알아내기에는 한계가 있단다.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싶었지만 바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이 마땅치 않아 용인에 있는 병원에 예약을 한 상태라고 했다. 그 와중에 요양원에 계신 엄마를 걱정한다. 친구는 어머니가 얼른 돌아가셔야 하는데.. 라며 말끝을 흐렸다. 지난해 오빠를 하늘로 보냈지만 친구는 오빠의 이야기를 아흔아홉 되신 어머니에게 차마 하지 못했고 장차 자신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머니를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게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친구는 유방암을 앓았었고 완치 판정을 받은 지도 어언 12년이 되었다. 친구는 마음 한편엔 늘 불안한 마음을 떨치지 못했지만 그래도 시간이 흐를수록 평온한 일상에 녹아들었다. 그런데 요 며칠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어떤 증상들을 마주하고 보니 화들짝 놀란 가슴 뒤로 여러 가지 일들이 마치 해결하지 못한 과제처럼 자꾸만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는 듯하다. 그럼에도 친구는 겉으로는 매우 침착했다. 아니 오히려 더 밝고, 더 씩씩한 모습이 되고자 애를 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답답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친구에게 해 줄 적절한 단어 하나 떠오르질 않았다. 머뭇머뭇 내일 잘 갔다 오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지만 불안함을 속으로 삭이는 친구를 위해 할 수 있는 말 한마디를 찾아내지 못했다는 게 못내 속상하다. 친구는 지난밤을 어떻게 보냈을까. 씩씩한 척 명랑한 척 하지만 온전히 혼자서 감당해야 할 그 길고도 길었을 밤, 잠은 한숨 잤을지 모르겠다. 부디 걱정은 그저 한낱 기우였음을 확인하고 오는 시간이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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