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집이 리모델링을 했다. 화이트를 기본으로 연한 그레이와 우드가 살짝살짝 편안함과 세련미를 더한다. 우리 집과 같은 평수, 같은 구조인데 확 달라져서 언뜻 보면 같은 평수, 같은 구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베란다 새시를 바꾸고, 벽지 장편은 물론 몰딩도 새로 하고, 문도 조명도 다 바꿨다. 한마디로 올 리모델링. 앞집은 아파트 입주를 하면서부터 이웃으로 사는 20년 지기 동갑내기로 이제는 막역한 친구로 지내고 있기 때문에 나는 한 달가량 소요된 공사기간 내내 간간이 들여다보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에 감탄했더랬다.
마침내 완벽하게 탈바꿈한 집으로 뺐던 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붙박이장 외에 새로운 가구가 들어왔다. 게 중에 쓸만하다 여겨져 버리지 않은 기존의 가구들이 사이사이 자리를 잡았다. 그릇이나 채반 같은 주방 살림들이 제자리를 찾았고, 아이들 책과 자질구레한 짐들이 가구를 채웠다. 집은 여전히 아름다운데 이상하게 빛이 조금씩 바래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새 집에 가면 전에 사용하던 가구나 낡은 세간살이를 바꾸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거 다 정리하려면 힘들겠네. 내가 도울 일 있으면 얘기해. 도와줄게"라고 했더니
"고마워! 근데 짐도 더 들어와야 하고.. 하나하나 차근차근 보면서 천천히 하려고.." 친구의 대답이다.
아침에 대형 이삿짐 차량이 싣고 온 짐이 이렇게 많은데 뭐가 더 있을까 싶어서 물었더니 짐이 너무 많아서 리모델링 전 시골에 가져다 놓은 것도 꽤 된단다. 게다가 리모델링하는 동안 빌려서 산 집에서 쓰던 물건들도 아직 가져오지 않았단다. 그 짐들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으나 지금도 새 집 가득 물건이 그득한데 남은 짐들로 인해 백색의 여백이 한 뼘 한 뼘 사라질 생각을 하니 왠지 아쉽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앞집 친구가 리모델링을 결심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너무 많은 짐이었다. 리모델링을 앞두고 나름 열심히 버리는 것 같았지만 여전히 많은 물건 정리를 위해 리모델링하면서 추가된 붙박이장이나 수납장, 아일랜드 식탁 등등을 생각하면 최종적으로 소유물이 줄어들었다고 장담하기는 어려울듯하다.
친구의 집에서 우리 집으로 건너오니 집이 누추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동안은 몰랐는데 새 집을 보고 난 후의 우리 집은 벽지도 장판도 누리끼리한 게 세월의 폭탄을 맞은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촌스러운 붉은색 몰딩이며 미세하게 틀어진 문짝들과 베란다 방충망 같은 것들이 거슬린다. 조명조차 오래되니 빛마저 누렇다. 아무리 청소를 열심히 해도 조금씩 좀먹어가는 욕실 곰팡이의 흔적도 보기 싫다. 집안을 돌아다니며 문을 열어볼 때마다 괜히 한숨이 난다.
그래도 앞집보다 확실하게 좋은 점 한 가지는 있다. 우리 집은 여전히 베란다도 있고, 집안이 온통 가구로 가득 차 있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사실 나는 가끔 숨이 막혀 의식적으로 숨을 쉴 때가 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숨이 안 쉬어지는 것 같이 답답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문을 열고 베란다로 나가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다. 숨을 쉬고 싶다. 숨을 쉬려면 공간이 가구나 생활용품이 아닌 공기로 채워져야 하는 건 말할 것도 없다. 공기를 맘껏 들여놓고 싶다. 더 많은 공기로 집을 채우기 위해 나는 없어도 되는 물건을 한 개씩 한 개씩 줄여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