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을 깨뜨렸다. 설거지를 하다가 살짝 다른 그릇에 부딪혔을 뿐인데 컵에 이가 나갔다. 신기하게도 가슴속이 후련했다. 아깝고 서운하고 불길할 법도한데 적어도 이번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도대체 이 감정은 뭐고, 무엇으로 기인한 걸까..
그러고 보니 나는 이 컵을 버릴까 말까를 두고 여러 번 고민했었다. 버리기엔 너무 멀쩡하고 가지고 있기엔 무겁고 투박하여 취향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다른 컵들과도 조화롭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이것 말고도 아주 많은 컵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버리지 못하고 늘 망설이기만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컵이 너무 멀쩡해서 버리는데 일종의 죄책감 같은 걸 느꼈던 것 같다. 물건은 소중히 다뤄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인 듯도 하고 어쩌면 환경이나 자원이라는 측면에서 무의식 중에 물건을 버리는 거에 저항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나'라는 사람은 물건을 처분하는 데 있어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
물건 하나 처분하는 데에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별거 아닌 거에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고, 왠지 나중에 쓸 거 같고, 물건과 관련된 여러 기억들이 떠오르면서 종내는 내놓으려 했던 물건에 미안해지기까지 한다. 이러니 물건을 밖으로 내어놓는 게 고역일 수밖에 없다. 물건을 버리기 위해 투여되는 에너지를 다른 곳에 쓸 수 있었다면 나는 무언가가 되고도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설거지를 마치고 가만히 주방 살림을 둘러본다. 정리하고 싶지만 정리되지 못한 채 쌓여있는 물건들..
깨진 컵을 보면서 느꼈던 후련함 때문인지 물건들이 달리 보인다. 깨진 다음에 배출하면 마음 편하게 내놓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멀쩡하다고 마음 편히 내놓지 못할 이유는 또 뭐란 말인가.. 깨지고 망가지고 사용할 수 없을 때까지 사용하다가 버리는 게 당연하다는, 언제 어쩌다 생긴지도 모를 기준에 사로잡히다 보니 물건에 감사하기보다 빨리 깨지고 망가지고 닳아 없어지기를 은연중에 바랬을지도 모른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친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물건 사용법인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맘에 드는 것들을 남기고 게 중에 가장 맘에 드는 컵을 사용하고 그 컵이 수명을 다하면 남은 것 중에 역시 가장 마음에 드는 걸 사용하면 늘 가장 맘에 드는 걸 사용할 수 있는데.. 컵에 물을 따르고 차를 우릴 때마다 순간순간 반짝이는 만족감으로 채워진 컵 속의 물은 어쩌면 버릴까 말까 갈등하며 사용하는 컵에 담긴 물에 비해 맛에서조차 차이를 만들어낼지도 모르겠다.
굳이 선택을 미루어 마음의 평화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행복이 만족에서 구현되는 감정이라면 내가 가진 많은 컵들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걸 남기기 위해 가장 별 볼 일 없는 것들을 먼저 소비하고 말겠다는 생각을 실천(?)하는 동안 정작 맘에 쏙 드는 컵은 그저 귀하게 모셔지듯 방치된 채 먼지의 두께만큼 잊히다 결국 사용할 기회를 잃을지도 모른다. 컵의 수명이 인간의 그것보다 짧다고 장담할 수 없다. 게다가 쓰임이 다한 컵을 대치할 그렇고 그런 컵은 싱크대 상부장 한 칸 가득 있지 않은가. 행복은 깊이가 아니라 빈도라 했던가. 언뜻 입가에 소소한 미소를 띨 만큼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그 작은 행복을 지연시키고 싶지 않다.
지금이 기회다. 새로운 시선으로 물건을 볼 수 있는 바로 지금이 물건 정리의 적기다. 몸을 움직여야 한다. 생각이 언제 다시 관성의 법칙을 따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