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물건(제품)을 사용해 보니 좋더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이상하게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그 순간 그 물건의 가치가 매우 크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남의 이야기를 듣고 산 물건은 그게 무엇이든 물건을 들이는 순간 뿌듯함과 동시에 그 누군가와 내적 친밀감 마저 생기는 듯 동질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게 집안을 채워나가는 재미에 푹 빠져들였던 때가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곧 한계가 왔다. 다른 이와 경제규모도 생활패턴도 다르다 보니 왠지 내 삶의 균형이 깨져버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언젠가 본 사진 한 장이 떠오른다. 창문턱에 칫솔 하나가 놓여있었다. 아름다웠다. 사실은 내가 어렸을 적 우리 집의 풍경이기도 했다. 칫솔통도 비누곽도 따로 있지 않은 날들이 있었다.
지금 내가 사는 공간은 어떤가. 물건은 종류별로 그에 걸맞은 통에 담겨 있다. 물건이 담긴 작은 통이나 상자는 더 큰 카테고리 안에 묶여 커다란 수납함에 담기고, 수납함들은 선반 위에 일렬로 새초롬이 자리를 잡는다. 행태와 색깔과 크기가 균일한 수납함들은 나름의 안목으로 가려내고 골라내어 엄선된 것이다. 이 얼마나 질서가 정연한가.
병사들처럼 줄 맞춰 놓은 똑같이 생긴 상자 어디에 뭐가 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 이름표를 붙여 준다. 작은 디테일에 스스로 기분이 좋아진다. 비누가 필요하다. 베란다 한쪽 공간에 세워둔 선반으로 간다. 위에서 세 번째, 오른쪽으로 두 번째 칸에 욕실, 세면도구라 쓰인 수납함이 눈에 띈다. 비누는 거기에 있을 것이다. 커다란 수납함 속에서 비누가 든 투명상자를 집어든다. 비누가 그득하다. 총 열일곱 개다. 피부에 좋다고 해서 산 살구씨비누, 피부를 정화시킨다고 해서 산 머드비누, 피부의 수분을 유지하고 진정시키는데 좋대서 산 천연비누, 덜 자극적이어서 피부에 좋다는 말에 대뜸 집어 들었던 수제비누, 역시 피부에도 좋고 얼굴과 몸은 물론 머리까지 하나로 해결하기에 그만이라는 말에 선택했던 올인원 비누 등등..
문득 궁금해진다. 이걸 다 쓰려면 얼마나 걸릴까.. 물론 비누만 사용한다면 얼마 안 가 (?) 다 사용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샴푸, 바디워시, 폼클렌저 등등 구비되지 않은 게 없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어디 그뿐인가, 샴푸만 해도 탈모에 좋다는 샴푸, 역시 탈모에 좋다는 맥주효모샴푸, 탈모방지도 되고 염색도 된다는 샴푸, 가끔 쓰는 비듬샴푸 등등 나열하기도 피곤할 지경으로 쌓여있다면..
효능이나 효과가 좋다기에 기대하고 산 제품들이지만 한 제품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것저것 사들인걸 보니 적어도 나에게는 딱히 이거다 싶은 게 있었던 건 아닌 것 같다. 이 말인즉슨 어떤 제품을 써도 거기서 거기라는 얘기일 수도 있지 않을까.
마음속으로 다짐을 하듯 뇌어 본다. 적어도 바디워시나 손세정제만큼은 당분간 사지 않기로. 비누도 사용기한이 있겠지만 비누 곽대기(갑)를 알뜰히도 벗겨놔서 확인이 안 된다. 오히려 좋다. 안 그러면 모르긴 몰라도 반이상은 강제 처분해야 될지도 모르니까.
문득 욕실의 얼마 안 남은 물비누(손세정제) 통 속의 촐싹 맞은 흔들림이 떠오르며 가슴이 설렌다. 물비누통을 비워내고 비누를 꺼내 쓸 생각으로 가슴이 설레기는 처음이다. 바디워시와 손세정제 등을 더 이상 사지 않은 채 비누로 대체해 하나씩 하나씩 사용해 나가다 보면 언젠가 비누 한 장만이 덩그러니 남는 순간이 오고야 말겠지..
나는 우유가 가득 든 양동이를 머리에 인 아가씨처럼 헤벌쭉 입이 벌어진다. 아, 너무 좋아서 고갯짓이 절로 난다. 문득 눈에 들어오는 게 있다. 아뿔싸 아마도 코로나 때 사서 쟁여놓았을 성싶은, 꾹꾹 놀러 쓰는 물비누도 일곱 통이나 된다.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