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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 Nov 22. 2024

2화.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1)

[미스터리 추리소설] 나는 미쁘고 의로우사

“실은 삼촌하고 여기 언니가 예전에 저 아저씨 아줌마한테 큰 도움을 받았거든. 그래서 혹시 저분들 딸이 저기 있으면 작은 선물을 주고 싶어서.”



차진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전유정이 가인 앞에 무언가를 잔뜩 내밀었다. 빨간 리본이 달린 투명포장지 속, 다람쥐 인형과 작은 바구니였다.



“이 바구니 안에 있는 건 다 네 거야.”

“…….”



가인이 대답하지 않은 가운데 전유정과 차진수가 마치 애가 타는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봤다.


잠시 후, 가인이 조그맣고 야무진 입을 열었다.



“나랑 같은 새싹반 친구예요.”

“그래?”



아이의 대답에 다소 초조했던 차진수가 반색하며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마침 잘 만났네. 혹시 그 친구가 누군지, 언니한테 말해줄 수 있어?”



아이가 대화의 물꼬를 트자 틈을 놓치지 않은 전유정이 다가왔다. 살가운 어른에 가인은 막대사탕을 문 입술을 오물거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드러운 딸기우유 맛의 달콤한 사탕은 이미 입 안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럼에도 가인은 막대를 빼지 않고 있었다. 콩닥거리는 심장을 달래주는 유일한 '익숙함' 때문이었다.


‘어떡하지……?’


가인이 망설였다. 6살 아이 인생에 벌써 두 번이나 최대 고민을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자칭 삼촌과 언니라고 자신들을 소개한 낯선 어른들이 가리킨 아저씨 아줌마는 바로 가인의 부모였다.


다른 아이들을 챙기느라 여전히 딸이 사라진 줄도 모르는…….


물론 가인이 처음부터 이런 고민을 한 건 아니었다.


낯선 어른들이 도움을 요청하거나 같이 가자고 할 때는 무조건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먼저 허락을 구한 후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매일매일 반복학습 해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전유정이 가인 앞에 내민 작은 바구니가 한순간 아이의 마음을 흔들어버렸다.


가인이 최애하는 막대사탕뿐 아니라 차애 간식인 초콜릿과 곰돌이젤리가 바구니 가득 채워져 있었으니.



특히나 막대사탕은 6살 가인에게 오감의 행복이자 결코 나누고 싶지 않은 사랑이었다.


넓디넓은 공주방, 넘치는 장난감과 머리핀, 깔별 원피스와 신발 등등…… 뭐 하나 부족할 거 없는 가인이었지만 사탕과 초콜릿, 젤리 같은 간식거리는 모자랄 게 없는 아이에게 있어 매우 귀한 보물이었다. 평소라면 구경조차 힘든, 어쩌다 한 번 손에 쥐어지는 보상이기 때문이었다.


단맛을 알아버린 후 치아가 썩고 밥을 잘 먹지 않는 가인에 모친 도미연은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특별한 날에만 아이 손에 간식을 쥐어준 거였다. 지금 가인이 입에 문 막대사탕 역시 소풍이기에 가능했다.


낯선 언니의 손에 들린 꾸러미가 달콤한 행복이 그리운 아이에게 거절하기 힘든 유혹인 까닭이었다.


이미 입 안 가득 침이 고인 가인은 곧장 ‘내가 저 아저씨 아줌마 딸이에요!’라고 외칠 뻔했었다. 그런데 여자의 다른 손에 들린 다람쥐 인형을 본 순간, 아이는 같은 새싹반 친구 이소원을 떠올렸다.


유치원을 옮긴 직후 낯선 환경에 적응이 어려워 친구가 없었던 가인에게 먼저 다가와 함께 놀아주고 예쁘다고 말해준 동갑내기 친구. 가인이 이 순간 그 아이를 떠올린 건 소원이 가장 좋아하는 동물이 다람쥐였기 때문이었다.



간식 바구니는 자신이 갖되 저 커다란 다람쥐 인형을 소원이가 받으면 무척 좋아할 거라는 게 6살 인생 최대의 고민 속, 가인의 결론이었다.


입안에서 사탕이 모두 녹아내린 막대를 뺀 가인이 저만치서 선물 꾸러미에 신나 날뛰는 새싹반 아이들을 찬찬히 바라봤다.



“저기…… 이소원이요.”



가인이 쭉 뻗은 작은 손가락으로 한 아이를 가리키자 손가락 방향으로 시선이 이동한 전유정과 차진수 얼굴에 확신의 미소가 들어찼다.



“이소원이 저 아이들 중에 누군데?”

“저 아줌마가 안아주고 있는 친구요.”



때마침 도미연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안고 있는 아이, 소원이 보이자 가인이 또박또박 아이를 지목했다. 


가인보다 약 5cm 정도 키가 큰 소원은 왼쪽 볼에 쏙 들어가는 보조개와 함께 눈웃음이 귀여운 명랑한 아이였다.


가인과 같은 샛노란 티에 다람쥐 얼굴이 달린 방울로 양갈래 머리를 묶고 본인을 꼭 닮은 토끼 모양의 가방을 메고 있는.


그런 가운데 미래유통 이태진 사장 딸로 자신이 아닌 이소원을 지목한 가인은 장난 같은 거짓말에 키득키득거리면서도 소원에게 다람쥐 인형을 줄 생각에 내심 뿌듯해하는 중이었다.



“아! 누군지 알겠네. 근데 너 저 아이 아니, 소원이랑 친하니?”

“……네.”

“잘됐네! 그럼 소원이 이쪽으로 좀 불러줄 수 있어?”

“왜요?”

“아저씨 아줌마가 아시면 선물 안 받는다고 하실 것 같아서 소원이한테만 몰래 주고 가려고. 참! 여기 네 것도 있는 거, 알지?!”



간식 바구니를 흔들어 보이며 한 팔로 가인의 어깨를 감싼 전유정에 놀라 굳어버린 가인의 두 눈이 커졌다.


때마침 선물을 다 받은 아이들이 선생님 구령에 맞춰 모여들자 이태진과 도미연이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뒤늦게 사라진 딸을 찾는 모양새가 자칫 가인의 거짓말이 들통날 위기의 순간이었다.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한 가인이 전유정의 손을 뿌리치며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자 뭔가 이상함을 느낀 차진수가 가느다란 눈매를 날카롭게 뜨고는 가인을 주시했다.



“너 혹시…….”

“소원이 불러올게요.”



차진수가 말을 끝맺기도 전, 차분히 대답한 가인이 뒤돌아 달려 나갔다.



“쟤 믿어도 되는 거야? 딱 봐도 대여섯 살 밖에 안 된 어린애인데.”



가인이 멀어지자 차갑게 눈빛이 변한 유정이 차진수에게 물었다.



“미래유통 회장 이강수 아들 이태진. 자녀는 1남 1녀. 딸은 유치원생. 본인 딸이 아니면 이태진이 무슨 이유로 저렇게 많은 선물을 갖고 여기까지 왔겠어. 다른 유치원에서도 많이 왔는데. 안 그래?”

“그렇긴 한데…… 이렇게 운이 좋을 수가 있나 해서. 너무 잘 풀리잖아. 설마 저 꼬마애가 우리 얘기 엿들은 건 아니겠지?”

“모르지. 근데 설령 들었다 해도 너무 어려서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을 거야.”

“그런가?”



멀어지는 가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전유정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작은 키에 덩치가 큰 차진수 또래의 한 남자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어때? 건 수 좀 잡았어?”



정확히 이마의 절반이 드러난 일자 앞머리에 검은 뿔테 안경 속 다크서클이 짙은 눈매의 배승원이 물어왔다. 놀이공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차량을 주차하고 온 직후였다.


그들은 일부러 공원 주차장을 이용하지 않았다. 한가하게 추억이나 쌓자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니었으니까.


물어오는 배승원에 한껏 어깨가 올라간 차진수가 자신감에 찬 웃음을 흘렸다.



“우리가 방금, 뭘 물었는지 알아?”

“벌써 물었다고?”

“무려 미래유통 사장 딸.”

“와! 진짜?”



놀라움 반 기대 반의 얼굴로 되물은 배승원이 실실 웃음을 쪼개며 무척 기대하는 양 두 손을 비볐다.


차진수, 전유정, 배승원.


세 사람은 29살 동갑내기로 지금은 공중분해 된 한 다단계 회사에서 만나 친분을 쌓았다.


회사를 나온 이후 취업을 하는 대신 한방을 노리며 환상적인 30대를 꿈꾸고 있는 한탕주의 젊은이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며칠간 머리를 맞댄 결과, 한 가지 묘책을 떠올렸다.


바로 부유층 자녀를 유괴 협박해 큰돈을 뜯어내자는 계획이었다.


제대로 된 어른이라면 자식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는 게 부모니까. 거기다 부유하면 할수록 더더욱 금액은 따지지 않을 게 분명했다.


처음 이 묘책을 고안해 낸 건 전유정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학교를 자퇴함과 동시에 가출을 감행한 그녀는 가족과 연을 끊은 지 10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부모님과 한 살 터울 남동생이 있었지만 전유정은 가족을 그다지 그리워하지 않았다. 매일 전쟁터 같이 싸우는 그곳은 그녀에게 집이 아닌 지옥이었으니까.


그러나 준비 없이 뛰쳐나온 바깥세상 또한 또 다른 지옥이었음을…… 거친 20대를 보낸 전유정은 뒤늦게 깨달았다.


나름 고생 좀 해봤다는 그녀의 결론은 지옥 같은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한탕이었다.


다만 특정 기업가나 고위공직자 자녀를 목표로 삼을 경우 필수적인 관찰미행은 의심받기도 쉽거니와 일을 벌이기도 전, 공모를 들킬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생각이었다.


한탕은 꿈꾸지만 납치 유괴에 능수능란한 범죄이력이 없는 서툰 초범들이었으니까.


일찌감치 미행을 포기한 가운데 전유정이 아이디어를 내자 포포랜드를 떠올린 건 차진수였다.



유치원 및 초등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포포랜드는 그야말로 아이들 천국이었고 설령 누가 사라진다 해도 그 사실을 알아채기까지 시간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만 잘 고른다면 모든 건 일사천리라 생각했다. 끝까지 발각되지 않고 경찰 추적만 잘 따돌릴 수 있다면 굳이 아이를 해칠 생각은 없었으니까.


단, 아이 교환의 대가는 30억.


각 앞에 10억이면 누구보다 화려한 인생을 펼칠 수 있을 거라 확신한 그들이었다.


그렇게 뜻이 모인 세 사람은 대상을 물색하기 위해 포포랜드에 발을 들였다. 막연하지만 일단 한번 와보자고 한 게 마침 오늘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이곳에서 미래유통 사장 이태진을 목격했다.


물론 그를 직접 만난 적은 없었다. 다만 워낙 미래유망적인 기업으로 주목을 받고 있던 터라 신문과 뉴스에서 자주 얼굴을 보인 낯익은 기업가였다.


이태진을 보자 차진수와 전유정은 대상을 물색해야 할 노고 없이 손쉽게 그의 딸을 찾아냈다. 같은 유치원생 이가인을 우연히 만난 것 또한 엄청난 행운이었다.


그들 앞에 꿈이 가까워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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