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달 Nov 22. 2024

3화.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2)

[미스터리 추리소설] 나는 미쁘고 의로우사

미래유통 사장 딸을 타깃으로 삼았다는 말에 배승원이 다시 물었다.



“근데 어떻게 데려올 생각이야?”

“간단해. 저기 노란 티 입고 있는 꼬맹이들 보이지?”

“회전목마 타려고 줄 서 있는 애들? 저 중에 있어?”

“응. 조금만 기다리면 이쪽으로 올 거야. 이소원이.”

“와! 벌써 이름까지 알았어? 이번 일 잘되면 유정이 너, 엘리트 인정!”



농담인 듯 진담 같이 말하는 배승원에 전유정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20분 후.


가인이 보이자 마음을 놓은 이태진과 도미연이 자리를 떠난 후 회전목마를 탄 아이들이 하나 둘 선생님들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이제 동물원에 갈 건데요, 거기서는 함부로 동물을 만지면 절대! 안 돼요. 동물원선생님 말씀 잘 들으면서 따라가는 거예요! 알겠죠?!”

“네, 네. 선생님!!”



이동 전 주의사항을 설명하는 선생님 말씀에 새싹반 아이들이 일제히 큰 소리로 대답했다.


동물들과 만날 기대감에 아이들은 하나같이 들뜬 얼굴이었다.


단, 가인을 제외하고는…….


곧 앞장선 선생님을 따라 발을 맞춘 아이들이 움직이자 소원과 짝을 이뤄 걸어가던 가인이 소원의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나, 아까 다람쥐 봤어.”

“정말? 어디서?”

“저기 저 큰 나무에 있어. 되게 많고 되게 예뻐”

“우와~ 나도 보고 싶다.”

“나랑 같이 잠깐 보고 갈래?”

“음…… 근데 선생님이 절대 딴 데 가지 말라고 했어”

“여기 우리 아빠 거야. 나 여기 다 알아.”



다람쥐 인형을 받고 기뻐할 소원을 상상하니 가인은 빨리 데려가고 싶은 마음에 아무 말이나 쏟아냈다.


뒤돌아 힐끗 나무를 쳐다보았을 때 여전히 사탕 바구니와 다람쥐 인형을 흔들어 보이는 친절한 언니가 손짓을 하고 있던 탓이었다.


동물원에는 다람쥐도 없거니와 큰 앞니를 드러낸, 유난히 꼬리가 큰 다람쥐 인형을 소원은 가져본 적이 없으니까.


인형을 받고 좋아 날뛰는 친구 소원을 상상할수록 가인의 마음이 급해지는 이유였다.


깜짝 선물을 주기 위한 착한 거짓말…… 그래서인지 가인의 심장도 콩닥콩닥 뛰고 있었다. 다람쥐가 있다는 말에 좋아하면서도 점점 멀어지는 선생님을 보며 머뭇거리는 소원에 결국 가인이 팔을 잡아끌었다.



“잠깐 다람쥐만 보고 빨리 가자. 동물원 어디 있는지 내가 알아.”

“음…… 그럼, 뛰어가서 다람쥐만 빨리 보고 다시 뛰어가자.”

“그래! 하나 둘 셋! 하면 뛰는 거야. 알겠지?!”

“응.”



다람쥐를 볼 생각에 벌써부터 들뜬 소원이 가인과 함께 뒤돌아섰다. 



“하나, 둘, 셋!”



가인의 신호에 맞춰 샛노란 티를 입은 두 꼬맹이가 나무를 향해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헉헉…… 다 왔다! 저 나무에 있어?”



깔딱깔딱 숨이 차오르는 와중에도 다람쥐를 볼 생각에 소원은 보조개가 들어간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었다.



“응. 나무 뒤로 가면 바로 보여.”



가인이 등을 떠밀자 신난 소원이 살금살금 나무 가까이 다가갔다.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전유정이 가인 앞을 가로막고는 아이 앞에 사탕 바구니를 내밀었다.



“약속 지켰네! 너 나중에 훌륭한 사람 되겠다. 자, 선물!”



여자가 내민 바구니에 온 시선이 쏠린 가인이 잠시 소원을 잊은 채 두 손으로 바구니를 받았다.



“고맙습니다!”

“소원이는 언니가 다람쥐 인형주고 동물원으로 데려다줄 게. 너는 선생님 따라 가.”

“어? 같이 가기로 했는데…….”



그제야 가인이 옆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나무를 바라봤다. 이미 나무 뒤로 소원이 사라진 후였다.



“언니가 소원이한테 할 얘기가 있어서 그래. 걱정 말고 가. 빨리!”



뒤돌아 세운 가인을 앞으로 밀어대는 여자에 가인이 어쩔 수 없이 빨간 구두를 움직였다. 뭔지 모를 불안이 잠시 잠깐 6살 아이를 헷갈리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 상냥한 미소로 손을 흔드는 여자와 자신의 손에 들린 사탕 바구니를 번갈아 본 가인은 다람쥐 인형을 안고 달려올 소원을 떠올리며 뛰어갔다.


곧 자신이 진짜 미래유통 이태진 사장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삼촌과 언니가 동물원으로 소원을 데려다주며 장난이었다는 아이 고백에 까르르 웃고 말 테니까.


뛰어가는 가인의 발걸음이 가벼울 수밖에 없는 훈훈한 상상이었다.


가인이 멀어지자 웃음기를 뺀 전유정이 서둘러 느티나무 뒤로 다가갔다.


나무둘레만도 무려 7m에 달하는 엄청난 크기에다 외벽과 마주하고 있어 나무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사람들은 알 턱이 없었다.



“갔어?”



다가온 전유정에 차진수가 물었다.


조금 전 살금살금 나무 뒤로 다가온 소원이 미처 나무를 올려다보기도 전, 마취액이 묻은 손수건으로 아이 입을 막은 차진수였다. 의식을 잃은 소원은 낙엽이 쌓인 바닥 위에 쓰러져있었다.



“갔어. 역시 애들한테는 선물이 최고라니까!”



정신을 잃고 쓰러진 소원에 유정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다만 아직 성공한 건 아니라는 게 그녀의 기준이었다.



“시간 없어. 빨리 업혀.”



동태를 살핀 전유정이 재빨리 소원을 등에 업자 입고 있던 가죽재킷을 벗은 차진수가 그녀 등에 덮어씌우며 아이를 가렸다.



“너무 빨리 걷지 말고 고개를 너무 숙여서도 안 돼. 최대한 자연스럽게. 알지?!”

“걱정 마, 공원입구에 CCTV 있으니까 거기까지만 가족처럼 행동하면 돼.”



차진수와 합을 맞춘 전유정이 먼저 나무 뒤에서 걸어 나오자 곧 차진수가 뒤따랐다.


잠시 후, 차분히 걸음을 맞춘 두 사람은 놀이공원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마치 갖가지 놀이기구에 체력을 소진한 아이가 잠들어 집으로 돌아가는 가족처럼.


일순간 소원의 팔이 쳐지며 노란색 소매가 내려왔지만 서둘러 아이 팔을 끌어올린 차진수로 위기를 모면했다. 그리고 그렇게 그들은 유유히 놀이공원을 빠져나갔다.



**



15분 후.


뒤늦게 소원이 없어진 걸 알아챈 인솔교사가 동물원 체험을 중단한 후 서둘러 아이를 찾아 나섰다.


교사는 가장 먼저 공원 내 안내방송을 통해 소원이 입고 있던 샛노란 단체복과 양갈래 머리, 토끼모양 가방 등 아이를 알아볼 수 있는 특징을 공유하며 놀이공원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방송 직후에는 유치원 교사들과 놀이공원 관계자들끼리 조를 나누어 아이를 찾기 시작했다.


비교적 눈에 잘 띄는 노란 티를 입고 있었기에 관계자들은 빠른 시간 내 아이를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CCTV 확인 결과, 다행히 소원이 놀이공원 출입문 밖으로 나간 흔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조금만 관심을 가져준다면 금방 발견할 거라는 생각이었다.


적어도 1시간이 지나기 전까지는…….


3시간이 흘렀다.


놀이공원에서 사라진 소원은 행방이 묘연한 가운데 실종아동으로 신고되었고 모두가 소원을 찾아 헤맸던 긴 하루가 지나갔다.



***



3일 후.


중학교 도덕교사인 소원의 부친 이경윤과 동네에서 자그마한 꽃집을 하고 있는 모친 김지희가 초조한 얼굴로 경찰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실종당일에 이어 어제까지도 놀이공원과 그 주변을 샅샅이 수색했으나 결국 소원이의 흔적을 찾지 못한 채 밤을 지센 이후였다.


그 사이 8살, 소원의 오빠 이두원이 방 문틈사이로 눈치를 보다 두 발을 꼼지락 거리며 불안한 얼굴을 내밀었다.


전화기를 앞에 두고 두 손을 모은 채 눈을 감고 있는 엄마와 연신 얼굴을 비벼대며 거실을 서성이고 있는 낯선 아빠의 모습을 목격한 탓이었다.


꼬르륵꼬르륵


순산 아이 배에서 본능적이고 정직한 배꼽시계가 울렸다.



“헉!” 딸각.



깜짝 놀란 두원이 황급히 문을 닫고는 주먹으로 배를 때리며 주저앉았다. 눈치 없이 울린 배꼽시계로 행여 부모님을 귀찮게 했나 싶은 마음이었다.


어제 오전, 두원은 모친 김지희가 사다 놓은 김밥으로 허기를 채운 뒤 저녁까지는 돌아오겠다던 부모님을 기다리다 저녁을 굶은 채 울다 혼자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어 두원이 깨어났을 때 아이의 부모는 집에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그토록 기다리던 소원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못…… 찾은 건가?”



아빠 엄마가 집에 돌아왔다는 안도감도 잠시, 두원이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평소 두원은 동생 소원과 사이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동물, 그중에서도 특히 다람쥐를 좋아했던 소원은 실제 다람쥐처럼 귀엽고 밝은 동생이었다. 양보도 잘하는 데다 오빠인 두원의 말도 곧잘 따랐다.


포포랜드로 소풍을 간다며 저녁을 먹는 와중에도 거실을 방방 뛰어다니던 소원이 두원이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제 해질 무렵, 소원이 실종된 걸 알고 있는 동네 형들이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던 두원에게 다가와 네 동생이 유괴를 당했다며 유괴범을 잡아야 한다는 말을 건넸다.


처음 두원은 그런 형들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무리 중 가장 고학년이던 5학년 아이가 두원에게 말했다.


나쁜 사람들이 돈 때문에 동생을 잡아간 거라고…….


순간 두원은 그 자리에서 오줌을 지릴 뻔했다. 불현듯 다시는 동생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순식간에 아이를 둘러쌌기 때문이었다.


집에 돌아온 두원은 부모에게 동생이 어디 갔는지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그저 소원이가 꼭 돌아올 거라는 엄마 말을 끝까지 믿기로 했을 뿐.


유일한 친척인 고모 집에 가있으라는 아빠 이경운의 설득에도 고집을 피운 것 또한 그런 믿음 때문이었다. 다만 동생이 돌아올 때까지 얌전히 있겠다는 맹세로 두원은 엄마와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어젯밤, 텅 빈 집이 너무 무서워 모든 불을 켜놓은 채 방 한구석에 쭈그려 앉아 울었던 두원이 부모를 원망하지 않은 이유였다.


아침이 되면 마치 꿈을 꾼 것처럼 소원이가 자신을 흔들어 깨울 거라 아이는 상상했다. 그렇게 두원은 그 무섭고 긴 밤을 홀로 견딜 수 있었다.


앞으로 어떤 미래가 다가올지 알지 못한 채.

작가의 이전글 2화.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