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쓰는문희 Nov 11. 2024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겠습니까.”

  “아뇨.”


  내 대답은 단호했다. 나는 오래전부터 다시 태어난다면 남편과 같은 사람을 만나지 않을 거라 마음먹고 있었다. 티브이 속 아나운서가 게스트에게 한 말이었고 내가 받은 질문인양 혼자 대답해 본 것이다.

  결혼해서 지금까지 그는 한결같은 모습의 남자다.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없는 사람. 상대방이 좋아한다면 모든 것을 다 맞춰주겠다는 호의는 고맙기보다는 종종 나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이번달에 캠핑 한 번 가자.”

  “그러자. 어디로 갈까.”

  “근데 캠핑은 번거로우니까 펜션에 놀러 갈까?”

  “좋아. 펜션 가자”

  “아니다. 그냥 호캉스를 즐기는 게 낫겠다”

  “그게 낫겠네.”

  “당신은 대체 원하는 게 뭐야?”

  남편은 갑자기 서늘해진 나의 말투에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다시 태어나면 예민하고 까다로운 남자를 만나서 눈치 보고 비위 맞추며 살고 싶다는 말에 친구가 어이없어 웃는다.


 모비딕으로 유명한 작가 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 에는 필사 외에 어떤 업무도 거부한 바틀비라는 한 남자가 나온다. 급기야 필사까지 중단하고 퇴사 요구도 거절한 채 사무실을 점령하고 떠나지 않았다. 그는 상사의 요구를 받을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그의 거부는 처절에 가까웠다.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든 말든, 자신이 어떻게 되든 말든 그는 철저히 ‘안 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럼에도 한편으론 그가 고결해 보였다.

  한동안 그의 말에 매료되었다. 하고 싶지 않은 걸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하지 않고 싶었다. 오랫동안 직장 생활을 하며 뭐든 예스!로 대답했던 나를 부정하지 못한다. 사실 나는 남편에게서 예전 나의 모습을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하는 일을 좋아했고 상사를 신뢰했다. 하고 싶다 안 하고 싶다 보다는 해야 한다라는 의무가 꽉 차 있었다. 질량보존의 법칙이라고 했던가. 수락과 거부, 긍정과 부정은 저울처럼 균형을 맞춰야 했다. 일을 그만두고부터 거부가 야금야금 늘었다. 거부력은 엉뚱한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명절을 맞아 시댁에 갔다. 명절 전 날 아침부터 형님들과 음식 준비를 해야 했기에 이틀 전에 미리 도착해서 어머님댁에 머물렀다. 당시 동생의 일을 도와 새벽까지 일을 할 때라 낮과 밤이 바뀌어 있어서 나는 수면부족으로 머리가 멍해 있었다.

아침이 다 되어 겨우 눈을 붙였는데 어머니가 깨웠다.

  갈치를 사다 두었다고. 얼른 일어나서 갈치 굽고 아침상을 차리라는 말씀이다.

  “어머니, 일어나고 싶지 않아요.”

  “뭐라고?”

  “갈치도 굽고 싶지 않아요.”

  세상천지에 간만에 집에 온 며느리가 자느라 아침상을 못 챙긴다니. 망연한 어머니는 나와 실랑이를 하느니 당신 아들을 위해 후다닥 아침을 차렸다. 그리고 종일 나를 지켜보았다.

  차례를 지내고 산소에 갈 시간이 되었다. 명절에만 오는 우리를 위해 늘 어머니와 아주버니가 동행해 주셨다. 겨우 설거지를 마친 나에게 어머니가 얼른 산소 갈 채비를 하라고 하셨다.

  “저는 안 갈게요. 아범이랑 다녀오세요.”

  “아니, 왜 안 간다는 거냐?”

  “가고 싶지 않아요”

  몸살 기운이 있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가고 싶지 않은 내 마음만 전달하고 싶었다. 어머니는 다시 기암 했고 남편은 가족의 평화가 깨질까 서둘러 어머니를 모시고 나갔다.

  나는 어머니를 거부한 게 아니었다. 어머니는 동네에서 소문이 날 정도로 우악스러운 분이었지만 일 년에 두어 번 뵈는 어머니가 불편하지 않았다. 남이야 상처를 입든 말든 거침없이 하고픈 말을 쏟아 내고 오롯이 자신의 모습을 한 어머니가 오히려 편했다. 나는 나의 방식으로 어머니와 잘 지내고 싶었다. 의무만으로 내가 못하는 것을 효도처럼 할 수 없었다.

  마지막 날이었다. 어머니는 아침 상을 차려놓고 밭에 나가셨다. 나이 들어 눈이 밝지 않은 노인의 부엌은 구석구석 오랜 때가 끼어 있었다. 낡은 가스레인지를 닦고 냉장고 안을 정리했다. 가까이 사는 며느리들이 수시로 음식을 갖다 주었어도 노인은 혼자 먹는 밥이 맛있을 리가 없었다. 커다란 반찬통마다 조금 덜다 만 반찬들이 가득이었다. 이 꽉 찬 냉장고에 풍요가 없었다. 냉장고를 정리하며 혼자 식사하는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쩌면 훗날 나의 모습일지도 모를 이 고독한 노인에게 연민을 느꼈다. 며느리로서 요구되는 모든 일을 마음 없이 다 해버렸다면 어땠을까.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몇 가지 거부를 통해 나에게는 자연스럽게 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솟아났다.

  서울로 올라와 남편과 상의해서 어머니 집 가스레인지와 냉장고를 바꿔 드렸고 어머니는 그 후로 나를 깨우지 않으셨다.

  

  남편에게 물었다.

  “왜 당신은 내가 말하면 거절하지 않아?”

  “그러고 싶지 않아. ”

  “왜?”

  “그러고 싶지 않으니까.”

  후후, 남편 역시 거부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사랑하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변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