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 계급을 넘어선 맛의 대결
넷플릭스 흑백요리사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흑백요리사:요리 계급 전쟁은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요리사 간의 계급을 허물고 순수한 맛의 승부를 가리는 데 기획의도가 있다고 한다. 흑수저 셰프 80명(재야의 고수들)과 백수저 셰프 20명(스타 셰프들)이 계급과 상관없이 오로지 요리 실력으로 경쟁한다.
80명의 흑수저 셰프들 중 백수저 셰프와 1대 1 대결을 펼칠 20인이 결정되고, 오로지 실력으로만 평가하기 위해 심사는 블라인드 테스트로 진행된다. 현재 4회 차까지 진행된 가운데, 1대 1 대결에서 흑수저 셰프가 1명, 백수저 셰프는 7명이 승리했다.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셰프들이 요리 재료를 다루는 모습에 감탄했다. 스타 셰프는 물론이고, 20인에 선정된 흑수저 셰프들은 공통적으로 요리 재료에 대한 깊은 이해도를 가지고 있었다. 자신 있는 요리를 만들어 내는 것은 요리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랜덤으로 얻은 재료들(묵은지, 매생이, 시래기, 들기름, 장 트리오 등)을 활용해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면서 제한된 시간 안에 요리를 완성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였다. 1대 1 대결에서 뻔한 요리를 내놓는다면 경쟁에서 탈락할 것이 분명하다. 독창적이면서도 재료의 본질을 살린 맛있는 음식을 제한된 시간 안에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인상 깊었던 요리는 에드워드 리 셰프와 정지선 셰프의 요리였다. 에드워드 리 셰프는 주재료인 묵은지를 사용하여 묵은지 국물을 졸여 소스를 만든 뒤 감, 잣, 배, 루콜라를 곁들여 묵은지 항정살 샐러드를 완성했다. 묵은지와 샐러드는 상상하지 못한 조합이었다.
정지선 셰프는 시래기를 이용하여 시래기 바쓰 흑초 강정을 선보였다. 시래기를 부드럽게 삶아낸 후, 갈빗살을 썰어 만든 반죽에 묻혀 튀긴 뒤 바쓰(설탕을 가열해 실처럼 뽑아내는 기법)를 올려주고 흑초 소스를 얹었다. 시래기는 감자탕이나 국으로 먹는 재료로만 알았는데, 강정 요리로 변신한 모습은 놀라웠다. 먹어 보고 싶은 비주얼이었다.
셰프들은 승패와 관계없이 재료에 대한 이해와 다년간 쌓아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창의성을 발휘했다. 심사위원 백종원, 안성재 셰프조차도 생각지 못한 조합에 감탄했다.
창의성은 단순히 반짝이는 아이디어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오랜 시간 쌓아온 기본기와 경험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이번 대결을 통해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스타 셰프들에게는 자신의 명성을 지키기 위한 도전이고, 재야의 흑수저 셰프들에게는 새로운 명성을 얻기 위한 도전이다. 도전하는 자와 지키는 자 모두에게 결코 쉽지 않은 대결이다. 하지만 단지 이기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려는 당당한 태도와 요리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 그리고, 패배 속에서도 부족했던 부분을 인정하고, 성장해 가는 모습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탄탄한 기본기 위에 창의성을 더한 요리, 같은 재료로 전혀 다른 요리가 나오는 모습이 마치 글쓰기와도 닮아 있는 것 같다. 같은 단어로도 전혀 다른 문장을 만들어 내고, 같은 주제로도 완전히 다른 글을 쓸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요리든 글쓰기든 결국 중요한 건, 그 과정을 즐기면서 조금씩 나아가는 자신을 발견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