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해진 부분의 힘을 되찾기 위한, 비라바드라아사나
"가서 요가를 더 해."
내가 서운해할 때마다 엑스가 자주 하던 말이다. 우울한 감정이 들거나 힘든 날에 수련을 하면 풀린다는 말과 함께 요가의 장점을 엑스에게 수시로 재잘댔는데, 그런 대화에는 시큰둥한 반응이더니 필요할 때는 아주 잘 써먹더라. 얄밉지만 11년동안 항상 티격태격 해온 우리였기에 그 정도는 그저 귀엽게 들려서 어이없다는 웃음으로 넘어가곤 했다. 그리고 그때는 정말 그러면 될 줄 알았다. 몇 년 새 예민해진 내가 싸움을 더 크게 만들까 봐 그냥 조용히 입을 다물고 수련을 했다. 그렇게 하면 일시적으로는 마음이 진정됐으니 서로 좋은 셈이었다. 그런데 하루는 엑스가 거짓말을 하다 들킨 후에도 그렇게 말했다. 마지막 이별 직전에도 비꼬듯이 그 말을 했다. 이런 미친 씨?@;&:₩/!#^
이별 직후엔 복수심이 활활 타오른다. 복수는 내가 강해야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그래서 보통은 다이어트에 성공 하겠다는 다짐, 더 잘난 이성과의 소개팅, 스타일 변신을 위한 쇼핑 등으로 본인의 가치를 높이려 한다. 하지만 어떤 방법의 복수를 결심하든 내면에 슬픔이 가득하고 단단함이 없다면 대부분 실패의 결말로 끝이 난다. 나 또한 그랬다. 입맛이 없으니 굶고, 헐렁해진 옷을 입어보며 잠시 기뻐했다가 나가서 술을 마시면 핸드폰을 잡고 울었다. 그렇게 마스카라 잔뜩 번진 얼굴로 재회한 적이 여러번이다. 그 과정을 반복하는 동안 내 마음엔 병이 생겼고 급기야 몸에도 이상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해서 자주 병원을 다녔다. 여기저기 탈이 나는데 처방은 항상 비슷했다. 스트레스 받지 말고 푹 쉬라는 답변만 들었다. 나는 직장도 다니지 않고 매일 놀기만 하는데 도대체 뭘 더 어떻게 쉬라는 건지 답답했다. 자꾸 염증이 생기고 두 달 만에 생리를 하거나 편도선염이 수시로 재발하는 몸뚱이를 어떻게든 해보자 싶어 동네 요가원을 등록한 것이 내 인생을 바꾸고 있다. 그래. 짜증 나지만 그 말이 맞다. 나는 요가를 더 해야 한다.
힌두신화에서 시바가 복수를 위해 만든 초인적 생명체로 등장하는 비라바드라를 우리말로 풀이하면 용감한 영웅, 전사, 무사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비라바드라아사나는 강인하고 단단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자세다. 어떠한 의지가 분명할 때, 비라바드라아사나가 유난히 잘 되는 경험이 있다. 요가 수련의 진짜 목적은 결국 마음을 비우는 것이기에 그 의지를 드러내거나 떠올리는 것은 자제해야 하지만, 바탕이 되는 정신력 정도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별로 나약해진 나를 강하게 만들고자 비라바드라아사나 호흡을 늘렸다. 발바닥을 조금 더 밀어내는 힘으로 무릎에 기대지 않고 에너지를 정수리와 손 끝까지 끌어올린다. 전사2 자세에서는 어깨가 솟지 않도록 우아하게 목을 위로 빼내고 등을 단단하게 함으로써 가슴이 충만해진다. 수련에 몰입하면 복수와 같은 사사로운 감정은 사라지고 오히려 평온함이 찾아오기도 한다. 마음 속으로 정한 호흡의 숫자를 모두 채우고 타다아사나로 돌아와 선 순간, 나는 마치 훈련을 잘 받은 전사가 된 기분이 들었다. 혼자서도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용기가 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