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서 다시 하는 말공부(1주 차)
저는 2024년 10월 23일 수요일 저녁에 '말공부'에 대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강의 제목은 '한국어라는 모태신앙의 명암 - 익숙한 말들의 뒷모습'입니다. 관련된 내용을 밑에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저는 이날 저녁에 말공부에 대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4주간 강의를 들을 예정입니다. 다만 그다음 주에는 토론일이어서 강의를 전부 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와는 별도로 더 적을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 어른들도 평생에 걸쳐 말공부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모르는 것, 우리가 하는 말이 맞는 말인지, 해야 하는 말인지... 익숙한 한국어는 도대체 누구의 것인가? 그 교육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말이란 사회적 유기체이자 생명체입니다. 윤리학과 정치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이라고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했습니다 (man is by nature a political animal). 우리는 언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설득하고 생각을 나누며 공통점을 추출하고 커뮤니티, 즉 정치 공동체를 만들어 생활하기 때문입니다.
공자는 '정명'이라 했습니다. 말이란 신뢰를 구축하는 정치 행위입니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실제로 정치는 많은 부분 이름을 바로잡는 일과 관련이 있습니다. 정의(definition)를 바로잡는 일은 정의(justice)를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계모는 '이을 계'와 '어미 모', 즉 엄마와 관계가 끊긴 자녀를 이어주는 새로운 엄마입니다. 링컨의 새로운 어머니 사라가 그러한 예에 속합니다. 사라의 사랑이 링컨 대통령을 만들어 낸 것이라 생각합니다.
말을 바로잡고 이를 통해 소통하고 설득, 토론, 연대하는 것은 정치적 주체인 시민의 의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시민으로서 의무를 다하려 한다면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뭐, 생각대로 실천이 잘 되지 않아서 부끄럽지만 말입니다.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합니다. 내 언어만큼 나의 세계를 인식하고 표현합니다. 이전에 제가 그랬습니다. 지금도 조금 모자라는 측면이 있지만, 이전에는 더욱 심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단어,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단어에 따라 전혀 다른 세계를 살게 됩니다. 그 당시 저도 제가 인식한 정도까지만 생각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왜곡된 사고를 가지게 되었던 이유도 음모론, 유사학문만 접했기 때문입니다.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면 이름은 그 집의 주소일 것이다."-강병철-
"무심히 부르는 이름을 통해 인류 지성사를 단번에 호출할 수 있다." -박지욱-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순혈주의와 단일주의는 건강하지도 않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곤트 가문을 예로 들면 아주 간단하게 답이 나옵니다. 곤트 가문은 극단적으로 순혈주의를 추구하였기에 근친상간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 여파로 점점 그 가문은 유전적으로 하나같이 이상해진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가세도 점점 기울어갔습니다. 그 최후는 바로 볼드모트입니다.
소중한 것은 궁극적이나 중요한 것은 궁극에 도달하기 위한 방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서로에 대한 무지와 몰이해는 혐오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갈등이 벌어집니다.
"언어교육은 문맹 탈출의 차원을 넘어 리터러시 교육이 되어야 한다. 리터러시란 응답할 줄 아는 역량이다."
-엄기호-
'내 말을 이해해야 할 책임은 너에게 있다.' 이는 또 다른 혐오 표현이 될 수 있고 올바른 소통의 자세가 아닙니다. 즉, 내 말을 상대에게 이해시켜야 할 책임은 나에게 있습니다. 상대의 언어 수준, 지적 수준도 최대한 배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