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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급자족 Nov 14. 2024

조카의 두 번째 수능

아침에 일어나니, 남편이 온데간데없다.

생각해 보니, 수능날이라 일찍  출근한 듯하다. 남편은 장학사를 거쳐 교감으로 근무하고 있어, 수능시험장 총괄 업무를 맡았다고 했다.


알람을 5차까지 맞춰놓고, 눈뜨자마자 새벽 3시에 출근했다고 한다. 하루종일 긴장 속에서 일하다, 수능 시험장 뒷정리를 마치고 밤 8시 30분쯤 귀가할 것이다. 아마 통닭에 청하 2병을 마시고 뻗을 것이다.


친정 여조카가 오늘 두 번째 수능을 봤다.

작년 고3 현역으로 약대에 갈 성적이었으나, 어느 곳에도 원서를 내밀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의대에 진학하고 싶었기에 재수를 해본다는 것이다. 조카를 보면서, 고3 현역은 내신과 수능 준비로 재수생의 공부량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다.


검찰청과 시청의 일반 공무원인 형부와 언니는 딸의 재수비용에 대해 고민했었다.

강남 재수기숙학원에 넣으려니, 기숙학원비가 한 달에 480만 원이라고 한다. 1월부터 11월까지 총 11개월 X 480만 원, 약 5,000만 원 넘게 재수비용이 든다. 개인 용돈은 별개이다.


조카는 부모님이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혼자 시골 변두리에 있는 독학 여학생 기숙학원 등을 검색했다. 가장 싼 곳, 가능하면 부모님께 폐를 끼치지 않는 곳을 알아봤었다. 저렴한 곳이 월 200만 원 대였고, 강남과 달리 담임제, 족집게 강의 등이 없는 순수 독학 시설었다. 감옥이나 다름없었다.


친정언니를 진지하게 설득했다. 대전이 집인데 멀리 경기도 시골 산속 독학기숙학원을 찾는 게 마음이 아프다고. 어떻게든 의대를 가겠다고 공부에 최선을 다하는데 2-3년은 지원해 주면 좋겠다고.


조카 체크카드 통장으로 설 보너스 중 200만 원을 입금했다. 문제집 구입 등 필요할 때 쓰라고. 내가 대학 다닐 때 매달 친정언니가 보내준 용돈과 분기별 새 옷상자에 비하면 먼지 같은 돈이었다.


강남 기숙학원에서 조카는 울산, 포항에서 올라온 모범생들과 11개월 동안 집중해서 공부했다. 주변의 모든 조건이 수학능력 시험에만 맞춰져 있었기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고 한다.


오늘 언니가 짐정리를 하며 강남 기숙학원 시설 사진을 보내줬다. 분명 시설이 좋다고 했다. 내 사진을 보니, 우리 집 중학생 아들 보내면 안 되겠다. 방을 보자마자 '아동학대'라고 할게 분명하다. 언니가 덧붙인다. 상위권 내신성적이 아니면 기숙학원 입소도 안되니 나중에 걱정하란다. 내년 중3 겨울방학 때부터 강남 기숙 윈터스쿨 보내려고 아들을 꼬시는 중인데, 아무래도 더 알아봐야겠다.


6군데의 학에 의대 원서를 내놓았고, 오늘 수능 성적으로 판가름 난다고 하니, 조카의 노력이 보상받았으면 한다.


조카가 기숙사 벽에 남긴 메모를 보니, 의대 아니면 안수생의 한 뼘 마음 성장이 보인다.


"부모님은 우리를 믿어. 우리가 수능을 잘 볼 거라는 걸 믿는 게 아니라 수능을 잘 못 보더라도, 어느 분야에 가든 꼭 성공할 사람이라는 걸 믿어. 그러니 부담 갖지 말고 1년 동안 열심히 한 만큼 최선을 다해 보여주고 오자! 어떤 직업을 갖든,
우리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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