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누구는 약 먹일지 몰라서 그냥 보내? 이마에 냉각 밴드를 붙이고 등원했다고?"
급하게 핸드폰을 들고 슬리퍼를 질질 끌고 탕비실로 뛰어 들어와 참았던 큰 소리를 낸다.
몇 달 동안 진행했던 프로젝트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중요한 행사가 당장 이번주 금요일이다. 아무도 아파도 안되고 누구도 다쳐서는 안된다. 다시 말해, 어떤 변수도 생겨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같이 일하는 직원들에게도 당부에 당부를 했다. 수능 날 아파서 시험 못 보는 건 무책임한 것이고 그것도 실력이라며. 그 동안 독한 말을 쏟아내며 몇 달을 채찍질 하며 달려왔다.
아이의 어린이집 등원을 담당하는 신랑이 무사히 등원을 마쳤다며 전화가 와서는 같은 반 남자아이가 코를 질질 흘리면서 엄마 등에 업혀서 왔단다. 눈이 시뻘건 애가 열이 나면 붙이는 냉각 밴드를 이마에 붙이고 등원을 했다며 아이가 걱정이 된다는 말을 흘린다. 불길한 예감이 들면서 갑자기 화가 올라온다.
마음을 다잡고 목소리를 가다듬으면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우리 애가 당장 아픈것도 아니고 그 동안 유산균이니 홍삼이니 엄청 때려 부었잖아. 괜찮을거야. 면역력 좋게 키우려고 했잖아. 걱정하지 말자."
"그래. 괜찮겠지. 아 나 그리고 오늘 회식이야. 늦어." 갑자기 남편이 회식이라는 말을 툭 내뱉는다.
간신히 내려 놓은 화가 다시 치밀어 오른다.
"내가 이번 주만 좀 참아달라고 했잖아. 혹시 모르니까."
"오늘은 꼭 가야해. 아침에도 아이 때문에 제일 늦게 출근해서 눈치 보면서 다니는 거 알잖아."
"알았어. 알았어. 끊어." 얼굴로 통화를 하는 냥 인상을 한껏 쓰고 전화를 끊는다.
그 때 부서의 직원이 툭 하고 탕비실로 들어온다.
"앗. 팀장님, 죄송해요, 전화중이셨네요. 나가보겠습니다."
"아, 아니예요. 다 했어요."
"애기 아파요? 다급하게 전화를 받으시길래요."
"아니요. 아프면 큰일나요. 알잖아요. OO씨도 감기 조심하세요."
"팀장님, 얼..얼...얼음물 드시는 거예요? 추워요."
"지금 속에서 천불이 나서요. 얼음 정수기는 누가 개발했나 몰라. 상 줘야해 진짜." 쓸데없는 말을 하면서 탕비실을 나온다.
얼굴에 개기름이 올라올 때쯤 시계를 보니 어김없이 저녁 6시다. 야근을 하는 직원들을 뒤로하고 자리를 일어서려니 또 눈치가 보인다. 6시16분 지하철을 타지 않으면 어린이집 하원 시간에 늦는다. 지하철 플랫폼까지는 10분.
6시 6분에는 컴퓨터를 끄고 일어나야 한다. 모니터 앞에 덕지 덕지 붙어져 있는 포스트잇을 왼쪽부터 빠르게 스캔한다. 눈에 한 장이 탁 거슬린다.
'젠장'
계약 업무 최종 확인을 못했다. 빠르게 자리에 일어나서 담당자를 쳐다보니 자리에 없다. 순간 갈등이 밀려 온다. 확인을 하고 가야 마음이 편한데 직원은 어디 간 걸까. 어느덧 시간은 6시 4분이다. 손은 서 있는 채로 컴퓨터를 끄고 발은 책상 밑에서 운동화로 신발을 갈아 신느라 바쁘다. 시계가 6시 6분을 가리킨다.
"저 갑니다. 모두 수고 하셨어요. 빨리들 들어가세요." 라면서 걷는 듯 뛰는 듯 나오는데...
"팀장님, 저 결재 올린거 확인하셨어요?" 한 직원이 따라 나오면서 말을 건다.
"네. 확인은 했고요, 메모 달았어요. 수정하셔서 다시 보내두시면 내일 확인하겠습니다."
"저 팀장님, 저 내일 오전 반차라서요." 또 다른 직원이 따라 나온다.
"알고 있어요. 오후에는 오시죠?" 엘레베이터 앞까지 따라온 직원이 말을 이어간다.
'하... 사는게 힘들다. 힘들어.' 궁시렁 궁시렁 거리면서 엘레베이터에 몸을 구긴다.
6시 8분이다. 내리면 무조건 눈썹 휘날리게 뛰어야 한다.
지하철에서 아이의 키즈노트를 확인하며 내일 준비물을 로켓배송으로 시키면서 오다보니 어느덧 도착이다. 어린이집에서 아이 손을 잡고 나오는데, 오늘도 놀이터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깜깜해져서 못 탄다고 해도 말이 안 통한다. 대충 그네를 열번쯤 밀어주면서 정신이 번쩍 든다.
"OO아, 콧물난다. 콧물나면 어린이집 못 가. 얼른 들어가자."
서둘러 집에 들어오니 현관문 부터 집이 난장판이다. 아침에 난장판을 만들고 나간 남편과 아이의 흔적을 치우고 밥솥에 쌀을 안친다. 아이에게 매일 갓 지은 따스운 밥을 해서 먹이고 싶은 워킹맘의 처절한 고집이다. 서둘러 밥을 먹이고 아이를 씻기고 까꿍놀이를 오백번쯤 하니 드디어 아이가 졸려 하는 것 같다. 숨을 고르며 영상을 잠깐 보여주면서 쌓여있는 설거지 그릇을 식세기에 하나씩 넣는다. 식세기에 그릇을 넣는 순간, 살짝 희열이 올라온다. 전쟁 같았던 하루가 슬슬 마무리가 되어 가는 것이다.
어김없이 다음 날이 찾아왔다. 출근 지하철을 타고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노동주로 모닝 아메리카노를 내렸다. 행사 D-day 1일이다. 회의를 마치고 자리에 앉으니 핸드폰에 부재중 전화가 두 통이나 와 있다.
'불길하다. 불길하다. 어린이집이다.'
본능적으로 탕비실로 후다닥 들어간다. 당장 콜백을 하고 싶지 않은 모진 마음이 스쳐가지만 전화기 너머로 이미 신호가 가고 있다.
"네, 선생님, 열이 난다고요. 아이는 지금 어떤가요? 제가 지금 회사라 바로 갈 수가 없어서요. 죄송해요."
우선 해열제를 먹이고 아이를 지켜봐 달라고 부탁을 한다. 아이 아빠랑 통화를 해보고 다시 연락을 드리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한숨이 땅끝까지 나온다. 바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본다.
벨소리가 연신 울리지만 받지를 않는다.
"하... 이 인간은 필요할 때 전화를 꼭 안 받지." 마음 속의 소리여야했는데, 입으로 뱉고야 만다.
"아이. ㅆ" 이번에는 입으로 욕을 뱉는다. 거칠어진 입을 틀어막고 누가 들었나 주변을 빠르게 둘러본다.
'회 의 중 이 니 나 중 에 연 락 드 리 겠 습 니 다.' 라고 전화가 거절되면면서 문자가 날라온다.
'애 열 난 데. 오 늘 반 반 차 가 능?' 라고 톡을 보낸다.
'불 가. 오 늘 회 의 4시 에 시 작 함.' 이라고 답이 온다.
갑자기 현타가 쎄게 온다. 아침에 애 등원시키면 자기 할 일 다 했다고 생각하는 것만 같은 남편이 얄밉다.
365일 하는 병원을 급하게 찾아본다. 어플로 예약이 가능한 지 확인해 보니 무조건 와서 기다려야 한단다. 빠르게 머릿속을 정리한다.
어린이집에 가서 아이를 찾고 운전해서 병원에 가면 30분 컷! 그 사이 애가 배고플테니 가는 길에 지하철역 앞 빵집에서 빵을 하나 사고 목이 마를테니 우유도 사야겠구나. 아차, 열이 나서 속이 안 좋아 토할 수도 있으니 보리차를 사야겠구나. 편의점은 아파트 입구에 있지. 오케이. 오케이. 오케이.
머릿속으로 빠르게 퇴근하고 나서의 동선을 시뮬레이션으로 그리고 다시 전화를 건다.
"네, 선생님, 지금은 열이 좀 내린거죠? 점심 안 먹으면 그냥 물이나 많이 주시겠어요? 탈수 올까 싶어서요. 진짜 죄송해요. 최대한 빨리 갈게요."
답답한 마음에 오늘도 얼음 정수기를 탈탈 털어서 자리로 돌아온다.
"점심 맛있게 드세요."라며 직원들이 하나둘씩 식사를 하러 나간다. 벌써 점심시간이다. 핸드폰을 보니 톡이 여러개 와 있다. 점심 약속이 있었는데 까먹었다.
'추 워 서 동 태 찌 개 집 으 로 왔 어. 네 꺼 미 리 시 켜 둘 까?'
'미 안 한 데, 오 늘 은 OO 이 랑 둘 이 먹 어 도 될 까? 애 아 파 서 오 늘 일 찍 가 야 할 듯. 점 심 시 간 에 일 해야 할 거 같아.'
'들어갈 때 김밥 한 줄 사다 줄까?'
'괜 찮 아, 자 리 에 아 침 에 먹 던 빵 있 어. 그 거 먹 고 얼 른 할 게. 고 마 워.' 연신 마우스 힐을 돌리며 핸드폰을 내려놓는다.
오늘도 6시 6분에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일이 D-day 라며 다시 한번 직원들에게 당부하며 퇴근을 한다. 이 생활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싶으면서도 미래를 그릴 시간이 없다. 그냥 빨리 가서 아이를 찾고 365일일 하는 병원을 가야하고 아이의 열을 내려야 한다.
밤새 열 보초를 선다.
'38도. 새벽 1시.'
'37.5도. 새벽 4시.'
'37도. 새벽 6시.'
'되었다. 어린이집 갈 수 있겠다.' 눈물이 찔끔 난다. 거울을 보니 얼굴이 말이 아니다.
'너도, 나도. 고생이 많다.' 아픈 아이의 이마를 한번 짚어 보고 퉁퉁 부은 발을 구두에 구겨 넣는다. 오늘만 지나면 큰 고비는 넘기는 거고 내일은 주말이니까 한 숨 돌릴 수 있으니까...
샤워 중인 남편에게 말을 걸기도 싫어서 식탁에 크게 포스트잇을 붙여놓고 나온다.
'항생제 냉장보관'
그렇게 하루 하루를 버티다 결국 육아휴직을 냈다. 그 동안 쌓아온 경력과 시간이 아까우니 지방에 계시는 부모님을 주중에만 모셔오라는 이야기. 돌봄 선생님을 고용해서 아이 학교 갈때까지만 버텨보라는 이야기. 아이가 중고등학생 되면 학원비가 많이 드니까 꼭 버텨야 한다는 선배들의 이야기를 전부 뒤로 한 채 결국은 휴직을 택했다. 돌아 갈 수 있을 지 없을 지 모르지만 일단 일을 멈추고 아이를 키우고 정신없는 상황을 정리해 보기로 했다.
다들 어떻게 아이를 낳고 키우는 걸까? 요즘 혼인율과 출산율이 조금 늘어났다고 한다. 코로나로 닫혀 있던 결혼시장이 움직이고 있단다. 인구 절벽에 맞닿아 있는 저출산 국가에서 이제 희망의 세상으로 가는 것일까. 주변을 보아도 예전처럼 목줄을 매고 일을 하기 보다는 유연하게 부모가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한시적으로 외벌이를 하거나 육아휴직을 배우자간에 나누어 쓰기도 하고 재택근무를 하면서 이동 동선을 줄이는 경우도 많다. 맞벌이 를 하다 외벌이로 급여가 줄어드니 생각보다 생활이 무척 빡빡하다. 급여가 절실하다. 하지만 육아휴직 전과 같은 상황이라면 사실 상 다시 일을 하기가 어렵다. 사회적으로 비혼, 이혼, 저출산의 산을 넘고자 하는 여정은 이미 시작되었다는 데 나도 거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