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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리산팡팡 Sep 30. 2024

스마트폰 안 가지고 나왔는데,  괜찮으세요?

#인사#이웃#동네

오늘도 유치원생 아들의 가방을 거북이 등껍질처럼 등에 들쳐매고 엘레베이터를 탄다. 1층 까지 내려가는 엘레베이터 거울은 아이들 방을 꾸며주면서 없애버린 화장대의 거울 역할을 대신 해 준다. 여러모로 소중한 엘레베이터다.


'아주 이거 얼굴이 엉망이구만. 이만 겨우 닦았더니 얼굴에 기름이 줄줄이구먼.'


코로나도 끝났고 날도 더워져서 이제는 마스크도 못끼겠다. 놀이터 문신템이라는 헬렌이노무스키 모자를 써보기도 하고 현관문 앞에 주르륵 늘어놓은 볼캡을 나름 기분에 맞추어 쓰고 출발한다. 1층 공동현관문을 나서면서부터 사회생활은 시작된다. 정확히 말하면 아이를 통한 사회생활이다. 등교 시간은 정해져 있으니 아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유치원생, 1학년 아이들의 부모도 세트이다.


부모들에게는 고개를 숙이며 "안녕하세요?"

그 옆에 꼬마에게는 "안녕, 잘 잤어?"

"......"


그 다음에 할 말이 없다. 상대편이 말을 이어주면 고맙고 아이들이 친해서 아는척을 하면 더 고맙다. 아이가 관심없는 학우일 경우 가볍게 인사하고 각자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간다. 매일 가는 등교길이기 때문에 얼굴은 알지만 서로 인사를 트지 않은 가정들도 있다. 먼저 인사를 하려니 딱히 접점이 없고 어떤 사람들인지 몰라 망설이게 된다. 그렇게 한 두번 망설이다 보면 적기를 놓치게 된다. 학기 초 오픈 마인드로 서로에게 마음을 열 준비가 되어 있는 시기를 지나면 그 문은 급하게 닫힌다. 학부모의 세계는 이런 관계이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보았던 정겨운 골목길 풍경은 더 이상 없다. 어린 시절 친구집 초인종을 누르면서 "안녕하세요, OO이 있어요? 놀 수 있어요?" 라고 묻기도 하고 엄마가 문 앞에서 골목길을 향해 큰 소리로 "OO야, 저녁밥 먹으러 들어와!" 라고 부르는 소리도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친구랑 놀고 싶어서 집 전화를 걸 때 "안녕하세요, 저 OO이 친구 OO인데요, 통화 할 수 있을까요?" 라고 예의 바르게 말하라던 엄마의 전화 매너 교육 매뉴얼도 사라졌다. 인사 안하는 친구가 있으면 엄마가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던 기억도 난다. 특히 할머니는 예의를 진짜 중요하게 여겼는데 친구집에 가게 되면 맨 손으로 가지 말고 그 댁에 할아버지 담배 한 보루라도 꼭 사가라고 했던 게 기억난다. 그 시절에는 미성년자한테 담배도 팔았나 보다.


이런 가정교육을 받고 자란 옛날 사람이 살아가는 지금의 등하교 풍경은 어색하고 희안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인사라는 것은 그냥 밥 먹듯이 하면 될 일인데 눈을 마주치는 일이 이리도 어려운 일인가 싶다. 누구인지 신원이 확실한 학부모에게 인사를 했다가 여러번 까이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마음이 상해서 안하게 되기도 한다. 어려서 엄마가 인사를 안 해서 예의가 없다며 전화를 끊어버렸던 것처럼 혼자 손절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찾게 되는 것이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을 하느라 고개를 숙인 척, 키 작은 아이와 이야기를 하느라 고개를 못 든 척. 못난 어른이다.


스마트폰이 없었으면 어쩔 뻔 했을까. 인사가 모 어려운 것이라고. 알면 아는 척을 하고 모르면 눈 인사만 해도 되고, 알게 되면 그 때부터는 제대로 인사하면 되는 것이다. 선 넘는 관계를 누구보다 싫어하지만 이웃, 학부모와의 인사에도 선이라는 게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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