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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휘 Nov 17. 2024

1악장 (3)

 ‘원아, 이 편지를 보게 되었다는 것은 내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이야기겠지.

 그리 놀랄 것은 없다. 언젠간 이렇게 끝맺을 것을 알아왔던 인생이니.

 너에게만큼은 우리 신 씨 집안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려주고자 이 편지를 남기마. 어쩌면 신 씨 집안의 유일한 사람이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이렇게 시작한 편지는 단 몇 줄로는 끝맺기 힘든 어머니의 지난한 역사를 담고 있었다.




 순 왕조에서는 모친의 성을 따르는 자손들이 많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조선이 망하고 순 왕조가 들어선 이후에 여성의 삶이 자유로워지고, 여성들이 삶을 진취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의 표명으로서 본인의 성씨를 물려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남성들의 반대에 심하게 부딪혔다. 아무리 새로운 세상이라지만 여성의 성씨를 물려받는 풍습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다들 비판했다. 국가의 근간이 흔들릴 것이다, 사회가 무너질 것이다 등등 여러 뜬소문들이 무성했다.


 새로운 것은 처음에는 그 생소함에 지탄을 받았지만 그것이 점차 정책으로 가시화되면서 그 생소함으로 인한 지탄은 점차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원의 어머니의 어머니, 즉 원의 외할머니 때부터 원은 ‘신’이라는 성씨를 물려받게 되었다.


 신 원의 외할머니, 신 이원은 순 왕조 시기 개혁 공신들 중 한 명이었다. 신 이원은 개혁 세력 중 급진 개혁 세력으로 남성 중심 사회였던 초기 순 왕조 개국 공신들의 후대 세력들 틈바구니에서 엄청난 고초를 겪으면서도 살아남았던 개혁 공신이었다.

 

 순 왕조가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기 시작한데에는 신 이원의 공헌이 매우 컸다. 신 이원은 얼마 안 되는 중앙 관직에 있는 여성이었고, 본인의 자리매김을 위해서라면 다른 여성들의 설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개혁 세력 내에서도 신 이원의 주도면밀함을 항상 시기하고 질투하는 세력은 있었다. 그들은 반대를 위한 반대도 서슴치 않았고, 신 이원이 시행하는 정책은 처음에 많은 관료들의 반대를 견뎌야했다.


 그리고 어느 날 신 이원은 무참히 살해당한다.


 신 원의 어머니, 신 하원이 30대 쯤 되었을 때 어머니의 끔찍한 살해 이후 신 원을 데리고 안평도로 이주한다.


 신 하원은 그렇게 연고도 없는 안평도로 숨어들어와 힘든 삶을 견뎌야했다. 혹시나 발각될지 모를 위협에 하루하루 떨면서 밤을 지새야했고, 그 이후 신 하원은 자신의 생명은 집 밖에 내놓은 신세라고 생각하며 언제 죽임을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만 했다.


 그렇게 20년이 지나 신 원이 성년이 되고 난 이후, 신 하원은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무참히 살해당했던 신 이원의 경우와 달리, 신 하원은 누가 보면 잠을 자는 줄 알 정도로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상황에서 신 원에게 발견되었다. 얼음장 같이 차가운 몸이 그의 죽음을 알게 된 증거였다.


 그런 죽음을 맞이하게 될 때까지 신 원에게는 신 씨 집안의 내력을 절대 알리지 않았다. 혹여나 알게 된다면 자신과 같은 고통을 갖고 살아갈 것이 뻔했고, 안평도로 도망치듯 이주를 해 20년 간 아무 일이 없었으니 이제는 안심해도 되겠다는 판단 하에서였다.


 하지만 신 씨 집안의 비밀을 유일하게 알고 있었던 민 씨와의 대화 끝에 신 하원은 수도에서 심상치 않은 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접해 듣게 되고, 올 것이 왔음을 직감하게 된다.


“원아. 이 일기를 꼭 간직해야한다.“


 일기를 전달해주는 신 하원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영문도 모르고 자신이 쓴 편지와 자신이 써왔던 일기를 받아드는 자신의 딸의 모습을 보며 차오르는 눈물을 애써 삼켜낸 신 하원은 그저 앞으로 다가올 자신의 운명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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