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 날들
씁쓸함이 모래알처럼 씹힌다.
난 수능도 끝났고 대학에도 들어왔고 충분히 행복하다고 생각하는데 왜 가을에는 고독을 씹게 되는 걸까.
낙엽들이 많아서 그런가.
센치해진다.
완벽함이라는 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위로가 되는 날이다.
가을 낙엽들을 보며 글을 쓴지가 엊그제인데 지금은 눈이 내려서 온 세상을 한 번 하얗게 뒤덮었다가 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린다.
완벽함이라는 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언제나 나에게 위로를 전달해주는 것 같다.
어린 날의 나는 엄청난 완벽주의로 인해서 참으로 고통을 받았었다. 그 때의 나는 의대를 가야한다는 생각으로 모든 과목에서 만점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신념으로 매 시험들을 준비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벼랑 끝에 자신을 몰아세운 그런 생각으로 시험들을 매사 준비했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 먼저가 되었다.
문제를 틀린 것이지 내가 틀린 것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줄곧 문제가 틀리면 내가 틀린 것처럼 굴었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모든 것이 다 틀린 사람처럼 굴었었다.
그 때는 내가 살던 집을 탈출하는 것이 지상 최대의 목표였고, 가정폭력과 가정불화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그리고 생존하는 것이 나의 최고의 목표였다보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사람은 생존이 목표가 되면 어리석은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그 당시 살아남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그 때 그 때의 자극에 대한 반응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도 본가에 살고 있지만(쉼터를 살다가 혼자 살아보기도 했다가 다시 온 것이지만) 지금은 목표가 다르다.
물론 독립하는 건 내 또 다른 목표이기도 한 것은 이전과 다름이 없지만 옛날과는 좀 다르다. 옛날과 다르게 나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고,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자아도 충분히 강해져가고 있으며 자신의 의지가 양육자의 의지보다 훨씬 중요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나의 꿈을 위해 산다. 내가 30대가 넘어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를 그린다. 29살에 죽고 싶다고 생각했던 내가 미래를 그린다는 건 장족의 발전이 아닐 수 없다.
나의 계획을 지금 섣불리 말할 수는 없지만 그 계획이 시간을 두고 차차 이루어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