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너무 천편일률적이다
나는 외국 한 번 나가보지 못한 토종 한국인이다.(해외여행도 안 가봤다!)
하지만 오늘 문득 대학 수업을 들으면서 갑자기 든 - 사실 한국에서 살면서 자아가 생긴 뒤로는 줄곧 했던 - 생각이 있다.
“한국은 너무 천편일률적이다.”
수업 시간이었다. 지능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수업이었고, 그 지능으로 줄 세우기 하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온 것이 다중지능. 사람의 지능을 8가지 부문으로 나누어 수치화시키는 다른 지능 수치화 방법.
줄 세우기. 우리나라에서 참 좋아하는 등수 매기기 방법이 아니던가.
비단 우리 나라는 지능으로만 줄 세우기를 하는 나라는 아니다. 성적, 나이부터 시작해서 성별, 성 정체성, 성 지향성 등 여러 가지로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이고 “정상”성에 집착하는 나라가 아닌가.
과연 나는 “그” 정상성에서 얼마나 정상인 사람인가.
나는 사실 나이에서부터 우리나라가 원하는 정상성을 충족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보다 “늦게” 대학에 왔으니까.
하지만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나의 이야기는.
상담을 받으면서 나의 상처는 곧 무늬가 될 것이라는 상담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건 아닐 것이라 슬퍼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의 나는 정상성에 찌들어있던 여느 한국 사람과 다를 바 없는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차차 시간이 지나자 그 상처는 곧 나만의 무늬가 되었고, 나만의 무늬는 곧 나만의 개성이 되었다.
그러고 나서 학교에 들어왔다. 들어오고 나니 참 우리나라 대학생들 옷 정말 비슷하게 입는다, 화장도 참 비슷하게 한다, 염색도 참 비슷하게 한다 생각했다.
나는 사실 그 천편일률적인 모습에 소름이 돋았다. 생각마저 똑같이 하고 있는 걸까 라는 생각에 이르자 소름이 돋는 것을 넘어서 뒷목이 오싹해지더라.
또 나는 여자는 화장을 해야하고, 살이 쪽 빠진 늘씬함을 갖춰야 하는 정상성에서조차 벗어나있는 사람이다.
나는 과연 한국에서 정상인 사람인가.
이 생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어쩌면 평생 불행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정상성만을 바라보며 그 가치를 따라야하고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좌절하는 것이 당연한 그런 세태.
나는 그 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렇게 강의를 듣는 시간조차 나는 강의실에 내 마음이 없었다.
사실 대학에 들어온 것도 타의에 의해서다. 누군가가 다녀라 하고 말한 것은 아니다. 그저 사회의 분위기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대학을 다니지 않으면 힘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대학을 다녀 졸업장을 따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 원하는 4년 짜리 몇 천만원 자격증.
그래서 문득 이 천편일률적인 정상성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과연 이민을 가는 것은 내가 행복해지는 길일까 하는 생각과 함께.
어쩌면 거대한 사회의 분위기에 의해 조종되는 한 개인이 얼마나 불행해질 수 있는지 사회 실험을 하는 나라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내가 이 곳에서 나의 행복을 사수하면서 살아갈 방법은 과연 있을까. 아니면 정말로 나는 이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민을 가야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