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에서 저승으로 가기 전 들른다는 림보에서 망자들은 저마다 가져가고 싶은 기억 하나를 고르느라 고심에 빠져듭니다. 림보의 규칙상 하나의 기억만을 가지고 떠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 유형의 인터뷰 장면 속에 내 모습이 오버랩됩니다.
“선택한 기억 외 나머지는 전부 지워진다는 말입니까,
그렇다면 그곳은... 천국이 맞군요”
삶이 너무 지루하고 험난했어서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다던 망자의 말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어떤 젊은 청년인 망자는 끝내 선택을 포기하고 림보에 남습니다. 하나를 고르면 나머지 기억들이 사라진다고 하니 자신이 지닌 기억들에 대한 책임을 죽어서라도 지고 싶었던 거지요.
인생의 끝점에서 삶을 돌아보는 모습들은 저마다 다르기에 깊은 통찰과 성찰을 안겨줍니다.
이 영화가 제게 특별한 이유는 나 역시 삶의 끝자락에 서봤기 때문입니다. 사는 데 전념하느라 내게도 끝이 있으리란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직장 생활, 살림 육아, 공부와 글 쓰는 일을 병행하느라 새벽 시간을 쪼개가며 살았습니다. 늘 해야 할 일들과 하고 싶은 일들에 둘러싸여 정작 나를 돌보지 못하고 살아온 듯 합니다. 정기 건강검진 결과만 철썩같이 믿고 건강에 자만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팬데믹을 모두가 잘 건너갔는데 나만 혼자 그 안에 남겨졌다는 자괴감에 많이 힘들고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시청역 근방에서 천막을 치고 추모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을 바꿨습니다. 세상엔 이해할 수 없는 사건 사고가 수없이 일어난다는 것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죽음 앞이어서 슬픔만 오롯하게 추모객들 얼굴 속에 굳은살처럼 배어 있었습니다. 안쪽에 활짝 웃는 영정 사진들은 왜 그렇게도 이질적으로 느껴지던지요. 내 얼굴이었을 수도 있었겠구나, 하고 오래 서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분명한 사실은 오늘도 누군가는 태어나고 누군가는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죽음은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나라고 빗겨갈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번호표를 쥔채' 살아가는 유한한 존재가 인간이란 것을 잊고 살았습니다. 검사 대기실 앞에서 주삿줄을 꽂은 채 천진난만하게 장난치던 민머리 여자아이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생각을 고쳤습니다. 나는 앞서 죽은 이들의 이름과 습관을 몸에 지니고 살아온 존재였습니다. 이제껏 삶과 죽음은 분리된 다른 세계라고 여겨왔지만 공존하는 중첩된 세계란 것을.
다행히 두 아이들이 엄마 손길이 아니어도 되는 어린 나이가 아니어서 감사하단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감사하단 생각을 한번 가지니 모든 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치료에 전념했습니다. 마음에 원망이나 불안 같은 것이 사라지니 몸이 달라졌고 치료 효과가 빠르게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나는 살았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냐고 물으면 말하고 싶습니다. 기약할 수 없는 말들을 만들지 않으며 살고 있다고요.
나중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미래를 애써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가급적 오늘 안에 평생을 담아냅니다. 특히 사랑한다는 말은 뒤로 미루지 않는 것이 후회를 만들지 않는 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보다 급할 일은 어떤 것도 없습니다.
삶이 간절한 것은 누군가와 함께 한 시간 때문일 것입니다. 마지막에 가져갈 소중한 기억 하나면 내 삶은 원더풀 라이프일 것이고, 선택을 미루거나 후회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