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숨이 막히던 교복 단추

by 세바들

아침 등굣길, 교문 앞은 매일 서슬 퍼런 검문소로 변했다. 일렬로 늘어선 선도부원들과 선생님의 시선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우리들의 옷매무새를 낱낱이 훑었다. 머리칼의 길이, 모자의 각도, 그리고 목을 빈틈없이 조여야 마땅한 교복의 훅(Hook). 그 작은 쇠붙이 하나가 '단정함'과 '불량함'의 경계를 가르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우리에게 성장은 축복인 동시에 은근한 형벌이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가파르게 자라나는 몸의 속도를 가난한 집안 형편은 좀처럼 따라잡지 못했다. 두 치수나 작아진 교복 안에서 소년들의 골격은 비명을 질렀다. 어깨를 펴면 바느질이 터질 듯 팽팽해졌고, 목의 훅을 채우면 억눌린 헛기침이 먼저 터져 나왔다. 숨을 쉬기 위해 단추 하나를 몰래 푸는 행위는 사춘기의 반항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본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규율은 성장의 생리를 이해하지 못했다. 팽팽하게 당겨진 옷감 위로 드러난 굵은 목덜미 탓에 헤체된 훅 '건방짐'으로 오독되었다. 몸이 마음보다 먼저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들은 등굣길의 낙오자가 되어, 운동장을 토끼걸음으로 누비며 그 성장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학급 반장이었던 나는 그 경계에 서 있었다. 질서를 세워야 하는 책무와 친구들의 억울한 숨소리를 이해하는 마음 사이에서 나는 늘 서툴렀다. 결국 반 전체가 단체 기합을 받으며 흙먼지 앉은 운동장에 엎드려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같은 높이의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새 교복의 빳빳한 옷깃도, 형에게 물려받은 닳아빠진 소매도 흙바닥 위에서는 모두 평등한 청춘의 파편들이었다.


노란 개나리가 담장 너머로 고개를 내밀던 어느 봄날이었다. 절친했던 대식이가 삐딱하게 쓴 모자와 풀어진 훅을 훈장처럼 달고 교문을 들어섰다. 사실 대식이의 교복이 처음부터 그렇게 비좁았던 것은 아니었다. 불과 몇 개월 사이, 그의 신체는 경이로울 만큼 급격한 발육을 이뤄냈다. 늘 교실 중간쯤에 머물던 그의 머리 하나가 어느덧 뒷줄 친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더니, 교복 상의는 마치 남의 옷을 빌려 입은 듯 껑충하게 올라붙어 있었다.


대식이는 그 터질 듯한 긴장감을 오히려 즐기는 눈치였다. 사춘기 소년 특유의 치기 어린 마음이었을까. 그는 바지가 터질지도 모른다는 불안함보다, 튼튼해진 하체와 당당해진 체격을 은근히 과시하고 싶어 했다. 꽉 끼는 교복은 그에게 불편한 구속복이 아니라, 자신이 이만큼 자랐음을 증명하는 빛나는 훈장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 '멋짐'을 향한 당당함은 엄격한 규율 앞에서 여지없이 깨졌다. 어김없이 불호령이 떨어졌고, 가방을 머리 위로 든 채 토끼걸음을 하던 대식이의 뒤태에서 요란한 파열음이 들렸다.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던 하체의 재봉선이 성장의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항복하듯 터져버린 것이다. 그 민망한 틈새로 속옷이 인사를 건네는 줄도 모른 채, 대식이는 특유의 긍정적인 에너지로 씩씩하게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사진출처:copilot/중3의 뜨거운 성장통>


나는 서둘러 교실로 달려가 나의 체육복 바지를 챙겨 운동장으로 내려갔다. 민망한 상황에 처한 친구를 보호해야 한다는 반장으로서의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운동장 한복판에서 마주친 대식이는 멋쩍은 듯 웃으면서도, 약간의 제스처를 섞어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 천진난만한 표정이 밉지 않아 나는 그의 등짝을 가볍게 후려치며 외쳤다.


“빨리 가서 옷부터 갈아입어, 인마!”


내 손바닥 끝에 닿은 대식이의 등판은 예전보다 훨씬 단단하고 넓어져 있었다. 그 묵직한 감촉을 통해 나는 친구가 흘린 땀방울과 그가 통과하고 있는 뜨거운 성장통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체육복 바지를 받아 든 대식이가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자, 이를 지켜보던 급우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교실로 돌아오는 대식이를 향해 친구들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대식이 파이팅!”을 외쳤다. 터진 바지 틈으로 새어 나왔던 부끄러움이 학급 전체의 유쾌한 연대감으로 치환되는 순간이었다.


이제야 고백하건대, 그 시절 나를 진정으로 숨 막히게 했던 것은 목을 조이던 교복 훅이 아니었다. 그것은 가난이라는 이름의 비좁은 현실이었을까, 아니면 개성을 지우고 숫자로만 우리를 기억하려 했던 거대한 벽이었을까.


우리는 그 좁다란 단추 구멍 사이로도 끝내 웃음을 터뜨렸고, 터진 바지 틈으로도 부끄러움 없이 성장했다. 낡은 교복 단추를 만지며 돌아보는 그 시절은, 숨이 막힐 듯 답답했기에 오히려 더 뜨겁게 호흡했던 청춘의 계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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