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조깅 때마다 올려다봤던 밤하늘을 기억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별같은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유난히 반짝거렸고 시간의 초침만큼 쉼 없이 자리를 바꾸는걸 보아 저건 분명 비행기일테다. 비행기의 형체는 어둠에 묻혀 그저 빛나는 점 하나이자 아주 일상적인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선 뗄 줄 모르고 바라봤다. 이곳 아닌 저곳으로 날아 갈 머나먼 여정을 헤아려보고 비행기에 탄 승객 중 한 명이 된 듯 창문 밖의 푸른밤을 떠올려보는 재미가 쏠쏠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꿈꿨던 비행이 시작됐다. 암스테르담을 경유해서 가는 자그마치 11시간의 비행!
(인천공항/ 00:55 KLM비행기 안)
이륙을 위한 비행기의 요란한 발구르기와 동시에 가슴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웅성웅성한 소란스러움이 몸과 함께 기울어지더니 땅이 저만치 멀어져 있다. 손바닥만 한 창문에 코를 박곤 창밖을 응시한다. 이렇게 육중한 물체가 허공을 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것이다. 인형놀이를 하듯 어떤 실같은 게 달린 것은 아닐까 캄캄한 어둠을 쉼없이 더듬어본다. 하늘을 오르는 내내 비행기가 끝없이 흔들리는 탓에 잠깐 눈을 붙였다. 흔들의자를 세게 흔드는 것 같은 느낌, 살짝 멀미가 날듯 말듯 아슬하다. 한밤과 새벽, 그 어디쯤을 헤매는 밤비행기 안은 대낮처럼 밝다. 몸은 밤을 기억해 눈을 감으려 하는데 기내의 환한 불빛과 하늘은 난다는 설렘은 계속해서 눈꺼풀을 잡아당긴다.
반쯤 눈을 뜬 채로 몇 시간이 흘렀을까. 비행기의 미묘한 들썽거림이 느껴진다. 그러고보니 비행기는 배와 사뭇 닮았다. 배는 바다에 떠서 파도와 함께 나아가고, 비행기는 하늘에 떠서 바람에 밀려 나아간다. 땅을 딛고 서 있을땐 몰랐는데 바람도 파도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바람도 곡선을 그리며 흘러가는 것인지 비행기의 출렁거림이 유연하다. 땅에서는 사계절의 바람만 느끼고 살았다. 봄바람은 꽃잎을 닮아 하늘하늘하고, 여름바람은 풀을 닮아 파릇하고, 가을바람은 낙엽처럼 바스락하고, 겨울바람은 빈가지를 닮아 푸석하다고 말이다. 그런데 나라마다 바람도 조금씩 다른 것인지 중국의 산등성이를 지날 때와 스웨덴 쪽 발트해를 지날 때 비행기의 들썽거림이 다르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로 온다’ 는 황지욱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의 구절이 몸소 느껴진다. 기다림은 서성거림이자 뒤척임, 그 덕에 바람의 춤을 한껏 느낄 수 있는거겠지. 바람에 밀려 검푸른 어둠을 저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