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을 시작한 이유(1)
요즘 잠이 “잔다”기보다 “끊긴다”는 말이 더 정확했다. 불을 끄면 조용해지는 게 아니라, 머리가 뒤늦게 일을 시작했다. 수업 중에 했던 말, 학생의 표정, 카톡에 남겨둔 문장들—그런 것들이 밤에 한꺼번에 결산처럼 밀려왔다.
과외랑 학원을 병행하면서 내가 제일 자주 하는 말은 “괜찮아요”였다. 괜찮다고 말하면 정말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말이 몸에 안 먹혔다. 가슴이 이유 없이 뛰고, 숨이 얕아지고, ‘왜 이러지?’ 하고 묻는 순간 더 불안해지는 날들이 이어졌다. 병명을 붙이고 싶진 않았다. 다만 공황 같은 느낌, 내 마음이 내 몸의 핸들을 빼앗아가는 느낌이 분명히 있었다.
그날 밤도 비슷했다. 집에 들어왔는데도 답답함이 가라앉지 않아서, 결국 문을 열고 나왔다. 운동을 하겠다는 결심은 없었다. 그냥 “여기 있으면 안 되겠다”는 감각이 먼저였다.
러닝화는 없었다. 신발장 맨 아래쪽에 오래된 운동화가 하나 있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똥신이었다. 바닥은 닳아 있고 나이키 마크는 다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그게 오히려 내 상태랑 비슷해 보여서 그냥 신었다. 제대로 준비된 사람이 아니라, 당장 숨부터 필요한 사람.
집 앞 아파트 단지 둘레길은 한 바퀴가 200~300미터쯤 된다. 짧으니까 만만하게 봤다. 군 시절 특공대에서 뛰던 기억이 슬쩍 떠오르기도 했고. “이 정도야 뭐…” 스스로를 살짝 속여본 셈이다.
첫 발을 내딛자마자 바로 알게 됐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가 아니었다. 숨이 튀어나오고 다리가 생각보다 무거웠다. ‘빨리 뛰면 풀리겠지’ 싶어서 속도를 올렸는데, 풀리는 게 아니라 더 잠겼다. 300미터가 이렇게 길었나 싶을 만큼.
결국 신호등 앞에서 멈췄다. 사람들이 건너는 횡단보도 옆에 세워진 안전기둥을 붙잡고 상체를 숙였다. 헉헉대는 소리가 내 귀를 때렸고, 속이 울렁거려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그 순간의 내 모습이 너무 적나라해서, 솔직히 조금 비참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바로 그때 가슴이 조금 풀렸다.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니고 내일이 사라진 것도 아닌데, 숨이 한 번 길게 내려갔다. 얕게 끊기던 숨이 “쭉” 들어오는 순간이 있었다. 그 한 번이 나를 살렸다.
그날 이후로 목표가 바뀌었다. 잘 뛰는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가 아니라, 무너질 것 같으면 일단 밖으로 나오는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 300 미터면 충분했다. 그날 내게 300미터는 기록이 아니라, 진짜로 숨을 되찾는 최소치였다.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안전기둥을 붙잡고 헉헉대던 그 초라한 순간에, 동시에 숨이 들어오던 그 순간. 그날부터 러닝은 운동이 아니라 ‘살아 있기 위한 방법’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