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을 시작한 이유(2)
중학교 때부터 가르치던 학생이 있다. 어느덧 고2. 시간이 그만큼 쌓이면 관계는 단순한 “선생님-학생”을 넘어선다. 나도 모르게 딸처럼 느꼈고, 그래서 더 챙겼다. 힘들다고 하면 마음이 먼저 움직였다.
처음엔 부탁이 소소했다. “선생님, 이것만 봐주세요.” “시간이 없어서요.” 그러다 어느 순간 경계가 흐려졌다. 수행평가, 포트폴리오, 내신 관리… ‘도와주는’ 선을 지나서 ‘대신해 주는’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이상한 건, 내가 그 변화를 눈치채는 데 시간이 걸렸다는 점이다. 정이 들어버리면 경계는 늦게 온다. 어느 날 문득 정신이 들었을 때, 나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결과물을 생산하는 사람에 가까워져 있었다. 성적을 유지해 주는 장치, 보여주기 위한 증거를 만들어주는 손. 그렇게 굳어가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마음이 꺾였던 건, 그 학생이 자기 부모를 속이는 과정에 나를 끌어들였다는 걸 알게 됐을 때였다. 자세한 장면은 여기서 길게 쓰지 않겠다. 다만 그 순간 머릿속에 딱 한 문장이 남았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분노보다 더 무서운 감정이 올라왔다. 더러운 피로감, 뒤늦게 찾아오는 자책, 그리고 묘한 허탈함. “내가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지?”라는 질문이 목에 걸린 채 밤으로 넘어갔다. 잠은 또 끊겼고, 가슴은 또 답답했다.
결국 나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집 앞 둘레길은 짧아서 좋았다. 생각이 멀리 달아나지 못하고, 같은 자리에서 빙빙 돌 수 있으니까. 달리다 멈추다를 반복하는 사이, 머릿속도 조금씩 정리됐다.
신호등 앞 안전기둥에서 숨을 고르며 생각했다. 딸처럼 생각한 마음이 달랐다는 게 아니다. 다만 마음이 커질수록 선이 사라진다. 선이 사라지면 결국 둘 다 망가진다. 학생도, 나도.
그날 이후로 나에게 규칙이 하나 생겼다.
가르치는 일은 가르치는 일로 남겨두자. 대신해주는 순간부터 관계는 무너진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대신 뛰어주는 것”이 아니라 “같이 준비해 주는 것”이다.
러닝은 그 규칙을 지키게 해 줬다. 달리고 나면 마음이 덜 흐려졌고, 선이 보였다. 나는 그 학생을 미워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다시는 누군가의 ‘편리한 손’으로 굳어지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