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돈, 육아… 한꺼번에 올 때

러닝을 시작한 이유(3)

by 박희진

사람이 무너질 때는 보통 한 가지 때문이 아니다. 문제는 겹치고, 일정은 끼어들고, 책임은 늘어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컵이 넘치듯이,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낸다.


아버지가 암 수술을 받았다. 병원은 시간을 잡아먹는 게 아니라 마음을 갉아먹는 곳이었다. 기다림, 연락, 결정, 서류, 보호자라는 이름. 누가 크게 “수고한다”라고 말해주지 않아도 해야 할 일은 계속 생겼다. 챙기지 않으면 죄책감이 먼저 나를 쫓아올 것 같아서 더 놓을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집에서도 일이 쌓였다. 와이프는 학원을 개원한다. 준비해야 한다. 돈이 필요하다. 육아도 같이 돌아가야 한다. 틀린 말이 없으니 더 힘들었다. 틀린 상대를 미워할 수 없을 때, 사람은 결국 자기 쪽으로만 더 쥐어짜게 된다.


그때부터 나는 하루를 사는 사람이 아니라 미납을 처리하는 사람이 됐다. 답장을 안 하면 불안하고, 처리하지 않으면 죄책감이 오고, 늦으면 내가 무능한 사람이 되는 기분. 밤이 되면 몸이 먼저 반항했다. 숨이 얕아지고 가슴이 답답해지고 잠이 끊겼다. 마음을 달래 보려 해도, 마음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서 또 나갔다. 똥신을 신고.


집 앞 둘레길은 변함없이 200~300미터. 나는 늘 같은 지점에서 숨을 골랐다. 신호등 앞 안전기둥. 그 기둥은 “오늘도 여기까지 왔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단단해서 기대기 쉬웠고, 내 흔들림을 잠깐 받쳐줬다.

둘레길 300미터


숨을 몰아쉬며 생각했다. 병원을 없앨 수는 없다. 돈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도 없다. 육아는 멈추지 않는다. 그런데 나 하나가 무너지면, 다 같이 무너진다. 멋있는 결론이 아니라 그냥 현실이다.


그날 내 목표는 거창하지 않았다. “성장하자”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만 지나가자.” 한 바퀴 걷고 반 바퀴 뛰고, 다시 걷고. 그렇게 반복하니 신기하게도 가슴이 조금 풀렸다. 문제는 그대로인데, 내가 문제에 눌려 죽는 느낌이 줄어든다.


그때부터 나는 러닝을 “해결책”이라 부르지 않는다. 대신 “관리”라고 부른다. 인생의 많은 문제는 풀리는 게 아니라 관리되는 쪽이 더 많고, 관리를 시작하려면 먼저 숨이 들어와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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