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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순 Sep 24. 2024

DCEU의 소녀가장(이었던)

원더우먼 리뷰

이번에 리뷰할 작품은 한 때 DCEU에게 힘을 실어주던 소녀가장인 '원더우먼(2017)'이다. 원더우먼은 직전 작품인 '배트맨 v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거기다 굉장히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런데 언급을 하지 않은 이유는 배트맨과 슈퍼맨에게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원더우먼은 배대슈에서 굉장한 뽕(?)을 선사해준 캐릭터이지만 오히려 마지막 전투에 합류할 수 없는 배트맨의 비중을 빈약하게 만든 한 편의 작품에서는 좋지 않은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배트맨과 슈퍼맨의 서사에 집중하기도 바쁜데 너무 큰 그림을 본 나머지 나이트메어 장면과 원더우먼 + 둠스데이를 추가하여 선택과 집중에 실패한 너무 아쉬운 작품으로 남아버렸다. 또한 이 작품은 당시 배급사인 워너 브라더스가 중요시 생각해야만 하는 작품이었다. 

우리가 어떤 작품이든 그 작품 자체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서사에 감상하고 있는 사람들이 온전히 녹아들어야한다. 특히나 캐릭터의 매력으로 먹고 살고 있는 슈퍼 히어로 장르에서는 특히나 중요하다. 그리고 캐릭터에게 애정을 느끼게 하고 관객들이 온전히 작품에 스며들게 하는 방법은 그 캐릭터가 어떤 방식으로 탄생하였는지에 대해 자세하게 다루는 것이다. 영웅이라는 존재는 보통의 사람들보다 뛰어나고, 강한 의지와 힘을 가지고 빛이 나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그렇게 영웅이라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고통을 이겨내야만, 그리고 그것을 관객이 직접 눈으로 보아야만 대상이 가지고 있는 서사를 받아들이며 함께 할 수 있다.


바로 직전에 포스트했던 배대슈의 장면을 한 번 보도록 하자

배대슈를 접했을 때 가장 의아하게 생각했던 부분이다. DC코믹스를 사랑하는 관객이 최근에 접한 배트맨은 크리스토퍼 놀란이 만들어놓은 'Rise'하는 크리스찬 베일의 배트맨이다. 하지만 워너 브라더스는 범죄 스릴러 느낌의 놀란 감독의 배트맨보다 조금 더 코믹스스러운 배트맨이 필요했던 것인지 상대적으로 다크한 '맨 오브 스틸'을 통해서 DCEU의 작업에 들어가고 벤 에플렉의 좀 더 다크하고 중후한 느낌의 배트맨을 기용하게 된다. 벤 에플렉의 배트맨은 훌륭했다. 잭 스나이더의 특유의 코믹스적인 연출을 통해 엄청난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서사적으로 기초 지식이 없이 알프레드와 나누는 대화 몇 마디와 피에 젖은 로빈의 슈트를 보고 다크한 배트맨이 되어버린 이유를 유추해내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배트맨의 단독 작품을 통해서 저러한 배트맨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 상태로 배트맨이 슈퍼맨을 증오하고, 그와 싸우는 걸 보며 이해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 작품은 온전히 원더우먼, 다이애나라는 존재 하나에 집중한다.

다이애나가 어디서 어떻게 탄생했고, 어떤 유년시절을 통해 성장했으며, 자라나면서 남들과 다른 자신에 대해서 발견하고, 그것에 대해 남들과 다른 자신에 대해 고민을 하였으며, 처음 온실에서 나와 상처를 겪었을 때 어떻게 극복하였는지 그리고 그것을 통해 어떻게 영웅이라는 존재로 부상하게 되었는지 우리는 알게 되었다. 이는 줄줄이 세워 놓으면 많아 보이지만 단 한 명이 가지고 있는 서사이다. 그리고 이러한 직관적인 서사는 2시간 이내로 충분히 담아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원더우먼, 데미스키라의 다이애나라는 존재의 서사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입체감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작품 초반의 지역인 데미스키라는 매우 활기가 넘치는 아름다운 세계이자 매우 평화로운 공간이다. 하지만 그녀가 있는 배경은 바깥 세상에서 온 스티브 트레버 대위를 만나게 되면서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한다.

활기와 생명력으로 가득찼던 데미스키라를 떠나며 처음 런던이라는 도시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매우 칙칙한 회색빛을 띄게 된다. 다이애나는 자신이 지금까지 꿈꿔왔던 밖의 세상이 이렇게 어둡다는 것을 알고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그렇게 그녀는 아픔과 함께 칙칙함을 보여주던 화면은 그녀가 공주에서 전사로 한 발자국 내딛는 순간 급변하게 된다.

그녀가 데미스키라에 나와 처음 본 세계의 칙칙함은 그녀가 고통받는 사람들을 무시하지 못하고 맞서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처음 전투에 뛰어들기 위해 망토를 벗는 순간 여명의 빛과 그 빛에 반응하는 그녀의 갑옷들의 색을 통해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절대 뚫어낼 수 없을 것 같던 적의 포화를 맨 몸으로 견뎌내며 전선을 뚫어내고 마침내 고립되어있던 마을을 빛을 찾게 된다. 또한 어릴 때 발현한, 다른 사람들과 다른 자신의 힘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던 다이애나는 자기 자신을 믿음과 동시에 영웅으로서 발돋움하게 된다.


남성이라는 존재

이 작품은 감독과 주연 배우가 모두 여성이다. 그리고 여성이 히어로로써 등장하는 다른 존재들보다 뛰어나다면, 주인공에 반대되는 성별인 남성은 동등한 힘을 가진 악당이나 상당 부분에서 매력을 발산하지 못하고 영화의 들러리로 전락하게 되는 존재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 작품의 남자 주인공인 크리스 파인이 연기한 스티브 트레버 대령은 굉장히 입체적이다. 그리고 이제 막 자신의 힘을 발현하기 시작하는 여성인 다이애나가 처음 만나는 남자이자, 전쟁 상황과 수 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녀의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는 입체감이 강한 존재로서 등장한다.

마지막에 다다를 때쯤 스티브는 폭발로 잠시 귀가 먹먹해진 다이애나에게 무언가 말을 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시계를 그녀에게 건낸다. 그리고 수 많은 폭탄이 실린 비행기로 뛰어가 비행기와 함께 산화하게 된다. 그리고 다이애나는 처음만난 남성이라는 존재에 대해 자신이 처음 느낀 감정과 그것이 눈 앞에서 갑자기 사라졌다는 분노가 뒤섞여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부수기 시작한다.

이 작품이 처음부터 색을 통해 보여준 것과 같이 엄청난 불꽃은 그녀의 폭발하는 분노를 표현하고 있는 것만 같다. 사람을 구하거나 지키기 위해서가 아닌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위한 쏟아냄으로써의 힘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처음부터 전쟁이 일어나게 된 원인은 인간들의 분노를 먹고 사는 전쟁의 신 아레스가 만든 것이기 때문에 그만 죽는다면 세계 대전이 끝나고 세상에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레스라고 생각되는 존재를 죽였지만 세계는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고, 인간은 여전히 탐욕스럽고 파괴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렇게 다이애나는 좌절하며 인간은 처음부터 가치가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진짜 아레스와 최종 결전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분노에 찬 다이애나는 작품 속 빌런 '닥터 포이즌'을 죽이려고 한다. 하지만 다이애나는 닥터 포이즌을 죽이기 직전에 스티브가 한 말을 떠올리게 된다.


"중요한 건 가치가 있냐 없냐가 아니라 선해질 수 있다는 믿음이에요!"

"나는 오늘을 구할테니, 당신은 세계를 구하도록 해요. 저희에게 더 많은 시간이 있으면 좋았을 텐데요...

사랑해요!"


이 말을 떠올린 다이애나는 인간은 보호받을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아레스에게 이 말을 돌려준다.

"이건 가치에 대한 문제가 아니야. 무엇을 믿느냐에 대한 문제지... 그리고 나는 사랑을 믿어"


스티브 트레버의 이러한 말과 함께 그가 한 행동은 처음 세계를 경험하고 흔들리고 있던 그녀를 붙잡아준 처음이였다. 그리고 원더우먼이 된 지금까지도 많은 세계와 사람들을 구할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은 스티브가 벌어준 그 순간의 몇 초인 것이다. 스티브가 벌어준 그 순간의 '오늘' 때문에 그녀는 지금까지도 세계에 남아 그의 의지를 기리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동화같은 세계 속에서 살다 많은 것이 뒤섞여 있는 인간 세계에 처음 발을 딛은 온실 속 화초 였던 공주님께서 세상을 여행하는 작품이다. 다이애나는 아직 어리숙한 상태로 등장하기 때문에 유치해보일 수도 있다. 그리고 첫 각성 장면까지 도달하기까지의 이야기를 쌓기 위해 초반 장면을 지루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과 같은 영웅의 서사를 쌓는 '처음'에 관한 작품은 꼭 등장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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