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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짤릴까 20년간 병가 한번 못내는 불쌍한 사람

집에서먼저존중받느냐 회사에서먼저존중받느냐 vs 닭이먼저냐 달걀이먼저냐..

by 파리외곽 한국여자

드디어 내일이다.

저 생명체가 꿈쩍꿈쩍대며 일하러 가는 날.


극난이도의 ‘너와 24시간 곱하기 한달살이’가 오늘로 끝이 난다.


코로나, 벌써 5년도 지난 일이 되어버렸지만 전지구적으로 파라노이아 상태 혹은 아노미 현상이 난무하게 했던 그 비현실적인 기간, 그 이후로 화목 이틀은 재택근무 중이라 실질적으로 주 3일만 집 밖으로 저 몸체를 옮긴다. 퇴근 후 망가진 정신상태를 술로 겨우 지탱하고 집에 도착하면 그야말로 제대로 고삐가 풀리는 경우가 다반사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24시간 30일 이상을 함께 한다는 것은 아이에게 지극히 위험하다. '교육적으로 나쁘다'의 차원을 넘어서서 소위 '어른' '부모'의 ‘미성숙한 / 의사소통을 거부하는 / 자학적인’ 삶이 끊어질듯 삐걱대며 이어지는 불안한 지탱 방식을 지켜봐야했던 아이다. 하나의 인격이 완성되는 데 악영향이 예상된다는 것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이제 아이의 남은 바캉스 두 달 중 일주일은 둘이서 사부작사부작 보내는 날이 조금 생겼다.

월, 수, 금. 8월 25일 27일 29일.. 새로 시작하는, 바캉스의 마지막 이 한주는 오후 스포츠 일정을 잡아두었다. 전일 일정으로 파리를 데리고 가서 놀지는 못해도, ‘고장난명, 맞서야 하는 이가 곁에 없으니 얼굴 붉히는’ 엄마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을 터이니 가뭄에 단비처럼, 편한 날 예약이다.

물론 18시까지 한정이다.



아들과 엄마, 홀어미와 외동아들.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이 관계를 이제 십 년 이상 아니 첫 만남으로부터 십오 년이 더 지나고 나서야, '내가 끼어들 수 없는' 부분을 인정하게 되었고 '도무지 이해불가한'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 둘은 서로가 너무나 닮았고 하나가 또 다른 하나에게서 멀어지려 하면 할수록 더 필요하고 간절해지는 그런 모양새다. 내가 뭐라고 한마디라도 한 적도 없는데, 그에게 그녀는 내가 그녀를 질투한다는 식의 뉘앙스를 보이는 듯하다. 그의 입에서 내가 뭐라도 한마디 하면 '질투'라는 그 단어가 나온다. 그의 파괴된 뇌에서 자동생성될 수 없는 영역의 단어이다. 어이없다.


'나는 그를 사랑하는가 사랑하지 않는가'.

'아직도' 혹은 '한 번이라도'


저 질문에서는 잠시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질투하는가'를 생각해 보면.. '그를 차지하고자..?'


어이없다.


그래. 나는 그와 그녀 혹은 그와 그 누구의 관계에서 질투의 감정을 느끼지 않다.

이로써 나는 그를 그렇게 사랑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객관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어찌 보면, 점점 동물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는 그는 동물적인 감각이 발달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직관적으로 '내 여자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알고 더욱더 날뛰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뭐 어찌 되었든, 오늘 그녀는 그녀의 '베베'(아기)를 보러 왔다. 그녀의 눈에 순간순간 하나뿐인 아들이 외국인 며느리와 손녀를 얼마나 힘들게 할까 가 보여도 흐린 눈을 했다. 지난번에 그녀가 그를 요양원으로 보내려고 한 시도가 무산되었던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그 프로젝트는 완전히 포기한 듯하다. 그냥 나에게 그녀의 병든 아기를 맡겨둔 셈이다. 뭔가 내가 미친개를 무료 봉사로 돌보는 느낌에 혼돈스러웠던 지금과 이 가정이 사뭇 맞물려있었던 것 같기도하다.


(오호아 통재로다. 글에 사람의 심리상태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을 감안해 보면 지금 내 혓바닥에 혓바늘이 수천개는 돋은 듯하다. 모가 나고 뾰족뾰족한 단어들이 만들어내는 문장들에 내 마음도 편하지가 않다.)


어쨌든 이 둘은 서로에게 집착하며 극적인 순간을 보내며 샴쌍둥이처럼 절대 끊어낼 수 없는 운명을 공유하는 그런 사이라는 것을 온전히 나는 받아들인다. 10년의 시간이 흘렀고 이제 나는 이 둘의 관계를 이해하게 되었고, 이 사이에서 나는 더 이상 무엇을 원하거나 기대하거나 하는 허튼짓을 하지 않고, 이에 나는 조금은 자유롭다.



그 사이 또 통역이 한 건 더 들어왔고, 비밀 유지 서약 포함 계약서까지 서명 완료한 상태다. 이 일은 아홉 시에서 다섯 시까지로 전일로 예정되어있다.

파리가 아니라서 적어도 하루는 일찍 도착해서 미리 그 장소에 가보는 등의 예행연습을 좀 할 예정이라 아이할머니 즉 제이엄마 혹은 시어머니에게 하루 부탁했다.


그녀는 저번에 저 인간 요양병원 건으로 '6개월 정도는 가능한 일' 내가 수개월을 애써서 모든 과정을 통과했던 그 소중한 건을 '말아먹은' 이력이 있기에, '이번에는 취소하시면 안 된다'라는 내 말에 '당연하다'했고, 나는 일단 오늘 방문한 그녀를 잘 모셨다. 과거에 그녀가 어쨌든 그 아들놈이 어떤 상태이건 잘 모셨다.


너무 천진난만한 만 68세의 나의 시어머니. 그냥 그녀를 그 상태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이제 다른 방법을 찾을 마음도 없다. 우리 집 프린세스 고양이 할머니 밥을 매일 챙기면서 많이 놓았다. 세상만사 뭐 그렇게 딴딴하게 이것저것 재고 말고 할 것이 뭐가 있겠나 싶다.. 그냥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일 뿐. 누가 누구를 바꿀 수 있다고. 자기 자신도 바꾸기 쉽지 않은데..


여하튼.. 이번 아이의 2개월 여름방학 중에 그에게 잊을 만하면 한번 고문당하듯이 들은 말이 '왜 일을 하지 않는가'류의 말이었다. 그녀도 그의 아들을 통해 '혼자서 일하려니 얼마나 힘드냐'에 뒷따른 수 있는 말을 들었다. 분명히 통역일을 한 번씩 한다고 했고, 번역도 본격적으로 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들은 실질적으로 매일 나가서 김밥이라도 싸고 뭔가 직관적이고 반복적인 일이 아니면 일 취급을 해 주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술을 그냥도 아니고 무슨 하얀 크리스탈 색깔의 무언가를 타서 마시고 나면 모든 것이 리셋되고 줄어든 뇌 속의 어느 부분에 고여서 고얀 냄새가 나는 생각들을 토해내 듯 뱉어내는 것일까. 나는 중2병 걸린 갱년기 대기자로서 그렇게 돈 벌러가는 것에 관심을 꺼버렸었나 보다



현재 시간 22시.

이제 두 시간 후면 2025년 8월 25일 월요일이 된다.


제이가 한 달 만에 회사로 꿈틀꿈틀 기어간다.

거의 모든 동료들이 긴 바캉스를 끝내고 돌아오거나 좀 더 높은 직책의 경우엔 조금 더 있다가 돌아올 테고. 물론 이메일로 지속적으로 체크업은 한다고 하니 저이가 혹 거기서 스트레스를 받아서 하루 종일 꽉꽉 눌렀다가 콩나물 시루 외곽전철에서 겨우겨우 정신줄을 부여잡고있다가 땀을 질질 흘리며 무거운 가방을 어깨에 짊어메고 오르막을 한참 올라와 집에 도착. 현관문을 열자마자 내게 토사물을 훅하고 쏟아낼지도..


제발 분위기 파악 좀 하고 그 입 좀 다물고 첫날 적응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건투를 빈다.



마약 복용과 습관성 알코올 섭취는 당신 자신 뿐만 아니라 당신 가족의 삶도 피폐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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