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고 나면 뚜렷하게 보이는 이유들
5주 간 아버지의 투병 기간 동안 한 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엄마는, 아버지가 숨을 거두자 비로소 코끝과 눈시울이 빨갛게 변하는 모습을 보였다. 모두가 우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엄마는 조금 조용했다. 소리 내어 울지는 않았고, 넋이 많이 나간 모습이었다. 그렇게 임종 후에도 우리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한참을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따뜻했던 손이 조금씩 식어갔다. 그리고 뻣뻣하게 굳어갔다.
맑고 청명했던 겨울날, 햇살이 눈부시게 아름다워서, 아버지가 정말 좋은 날 좋은 곳으로 가셨구나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는 듯했다. 천둥번개가 치고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이 아니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예상된 죽음인지라, 임종 후에는 받아들임이 크게 힘들지 않았다.
Closure가 잘 이뤄졌다. 문장 끝에 마침표를 찍듯 끝맺음이 확실해졌다.
다음 챕터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할 일이 많아졌다.
호스피스에 전화를 하여 소식을 전했고,
등록 가정의 병원에 전화를 하여 소식을 전했고,
상조회사에 전화를 걸어 장례지도사와 상담 후 일정을 조율했다.
주말에 집에서 상을 당하면 의사가 집에 방문해 사망진단서가 나오기 전까지는 상조회사에서 시신을 옮길 수도 없고 이래저래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의사가 심장 페이스메이커 여부를 꼭 확인해야 하는데, 있는 채로 화장을 하면 폭발력이 크기 때문에 중요한 절차라고 한다. 시신이 오래되면 부패가 시작되어 살이 물러지고 액체가 흐르기도 한단다. 그래서 일요일 오전에 돌아가신 분의 경우 월요일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시신을 운구해 나갔는데, 위 문제로 인해 붕대를 감아서 가져가더란다. 나도 직접 본 것은 아니고 전해 들은 이야기였다. 따라서 집에 시신을 부득이하게 둘 때에는 집이 덥지 않고 서늘하게 해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런데 아버지는 토요일 오전 일찍 돌아가셔서, 내가 일찍 병원에 연락할 수 있었고, 토요일 당직이었던 아버지를 진료한 적이 있는 친절한 가정의 선생님은 바쁜 오전 근무를 끝내고 아버지의 사망진단서를 작성해 주고 집까지 들러주어, 상조회사에서도 시신을 당일 가져갈 수 있었다. 토요일이어서 교회 식구들도 오후에 많이 와주실 수 있었다. 황망한 가운데 손님용 다과를 준비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와주시는 한 분 한 분이 너무나 고마웠다. 아버지의 장례 과정은 막힘이 없이 순조로웠다.
내가 가본 장례식장(funeral house)은 오직 한 곳뿐이었고, 아버지의 병세가 워낙 급격히 악화되었다 보니 여유를 갖고 장례식장을 이곳저곳 투어를 해두지 못했다. 그래서 집 근처 장례식장들을 온라인으로 검색했을 때, 사진 상 가장 괜찮아 보이는 곳을 기억해 두었다가 전화를 했다. 당일에 아빠를 보내드리고, 다음날인 일요일에 장례식장에 방문하여 여러 옵션과 절차 비용 등을 상담하고 결정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버지의 장례식은 월요일과 금요일 두 번을 치르게 되었다.
화장과 장례예배를 타우랑가에서 잘 드리고, 아버지 뜻대로 오클랜드 메모리얼파크에서 수목장으로 유골을 묻어드렸다. 우리 가족 입장에서는 장례식을 타우랑가에서 한 것이어서, 또 다른 비슷한 류의 행사를 원하지는 않았고 단지 아버지가 다니시던 교회의 목사님이 타우랑가로 장례예배를 보러 오셨길래, 장지에서 하관을 할 때 오셔서 함께 기도해 주세요 부탁했던 것이, 결국 오클랜드 메모리얼파크 내 코티지를 빌려 다시 한번 예배 형식의 장례식을 치르게 되었다. 아버지가 다니시던 교회였으니, 그렇게 한 것이 잘 한 일 같다. 여성 중창단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합창해 주셨고, 목사님은 믿음이 어리거나 없는 일부 유가족을 위해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이란 어떤 의미인지 쉽게 말씀해 주시며 영생 소망을 갖게 하셨다. 그리고 대망의 하이라이트는, 작년에 아버지가 '믿음과 구원의 확신'이라는 주제로 간증한 것의 녹화 동영상을 우리 모두가 그 자리에서 보았던 것이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전도하는 자리였구나, 그래서 이렇게 장례식을 두 번이나 해야 했구나 납득이 갔다. 감사했다.
사실 행사를 두 번이나 치르는 것뿐 아니라, 오클랜드 교회에 주일예배에 참석하여, 아버지가 교회에 헌금한 애찬금으로 정성껏 차려주신 점심까지 먹었다. 그렇게 아버지 가시는 길은 참 뻑쩍지근했다.
아쉬움도 남았다. 장지도 타우랑가에서 했더라면 내가 가끔 들르기 좋았을 텐데 (물론 나 위주의 생각이다), 더 양지바른 곳에 더 저렴하게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그런 아쉬움들. 왜 꼭 수목장을 고집해야 했는가.
그런데 막상 아버지의 간증 동영상을 보는 순간, 아, 이건 하나님이 기획하신 아버지가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구나! 하고 감격했다.
죽을 때는 학벌도, 재산도, 인맥도, 명예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다 쓸데없는 것이 되고 만다.
죽을 때는 오직 단 하나, 하나님을 잘 믿었는가, 진짜로 믿었는가, 얼마나 온 마음을 다해 믿었는가 그것뿐이다. 진짜로 믿었다면 백배든, 육십 배든, 삼십 배든 열매를 맺었을 것이다. 열매를 맺은 자는 이 땅에 온 목적, 그 소임을 잘 달성한 자이니 성공한 자다. 우리를 만드신 이가 보는 것은 우리의 심중이다. 외모도, 돈도, 인기도 아니다. 그러니 사는 동안에도 세상에 속아 헛된 것을 쫓느라 허송세월하지 말자. 죽을 때 아무 소용이 없다.
나는 죽을 때 기쁠 것 같다.
드디어 이 몸도 벗고 지긋지긋한 세상도 떠나는구나. 에헤라디야~! 아니, 할렐루야~!
주님께로 갑니다. 그런 상태로 죽음을 맞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기쁨으로만 있는 그 상태, 이 세상에서는 맛본 적 없는 그런 기쁨 매 순간 가득한, 그리스도인의 죽음 너머의 세상.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