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단어 - 두 가지의 뜻
일주일에 걸친 아버지의 임종과 두 도시에서의 장례식 후 정리할 것들이 여러 가지 생겼다.
유산과 상속의 문제라는 허들이 우리 유가족 앞에 놓이게 되었다. 암으로 아프실 때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가 없었고, 또 당장 눈앞에 '병'과 '통증'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환경 때문에 상속문제는 그저, 나중에 하면 되는 일쯤으로 넘기게 되어버렸다. 사실 아버지는 이 부분을 자신이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어 하셨고, 우리가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름 정리를 하시려고 최선은 다하셨지만, 기대했던 만큼의 시간보다 훨씬 더 빠르게 죽음이 다가왔기 때문에 아무런 정리가 되지 않은 채 떠나시고 말았다.
아버지는 두뇌가 명석하고 숫자를 잘 다루는 분이셨다.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늘 장학금을 놓치지 않으셨고, 상경대를 졸업한 후 유공과 에쓰오일에서 평생 회계 및 재무일을 하셨다. 임원도 하셨고, 퇴직 후에는 에쓰오일 직영 주유소도 오래 하셨으니까, 부모님처럼 아껴 쓴 분이라면 재산도 상당했어야 했다. 그런데, 공부를 잘하는 것과 현실세계에서 재물을 불리는 재주는 별개의 문제인 듯하다. 하긴, 재물 '운'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 '운'은 크게 없으셨다고 본다. 우리가 뉴질랜드에서 한국으로 돌아간 후 강남에 아파트를 살 능력이 있었지만 재개발이 요원한 곳에 빌라를 산다던가, 동향인지 동문인지 후배들이 찾아오면 술까지 사주고 좋은 기분에 수 천만 원을 빌려준다거나 투자한다는 명목으로 떼인다던가 (여러 번), 수익률 좋은 공장을 인수하는데 알고 보니 주인이 여러 명에게 동시에 팔아먹는 사기꾼이어서 은퇴자금을 상당 부분 날린다던가, 비상장 주식을 대량 매수한다던가 하는... 현실에서는 부동산도, 주식투자도, 사업매매도, 어느 하나 잘 된 게 없어 보인다. (가끔 주식으로 쏠쏠한 재미를 보신 적도 있기는 하셨지만.) 정말이지 너무 안타깝다. 세상적으로는 그렇다.
어쨌든 팔십 노인이 되어서도 매일같이 증권사에 전화해 오더를 넣고 하곤 하셨는데, 이건 아버지의 건전한 취미생활 정도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인생 마지막 소중한 시간들을 주식 차트가 오르고 내리는 걸 매일 묵상하는 것은 얼마나 시간낭비인가. 안타까웠다.
아버지를 보면서 나름 다짐하게 된 것이 있는데, 나는 언제 죽어도 심플하게 정리된 상태로 죽자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얼른 유언장 작성해야지. 이번 10월 방학이 끝나면 꼭 해내리라.
나는 한국에서도 뉴질랜드에서도 은행은 한 곳만 사용했다. 카드도 늘 한 장.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편하고 심플하기 때문이다. 이 카드 저 카드 쓰며 여러 포인트 혜택 보는 그런 것을 챙길 정신머리가 내게는 없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아뿔싸... 왜 이렇게 복잡하게 하셨을까. 한국에서의 케이스는 매우 복잡하다.
우선 뉴질랜드에서는 은행 한 곳을 사용하셨다. 4년 전 엄마와 공동계좌를 여셨는데, 아버지 돌아가신 후 아버지에게 단독 명의의 계좌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왜 따로 여셨는지 이유는 알 수 없다. 공동계좌 안에서도 얼마든지 다수의 예금도 들고 계좌를 열 수 있기 때문에, 그럴 이유가 도대체 뭘까.
어쨌든, 공동계좌를 쓰다가 한 명이 죽으면, 나머지가 그 계좌를 계속해서 쓰고 고인의 명의는 지워진다. 그러니 엄마와 아빠의 경우, 죽는 시점에 모든 현금은 공동계좌에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죽는 시점부터 (사실은 사망신고가 은행에 된 후) 고인의 단독 계좌는 동결되고 사망 후 계좌를 건드리는 것은 범죄행위가 된다. 그리고 뉴질랜드의 경우 법원에 등록된 유언장(will)을, 그것을 집행하도록 지정된 자(executor)가, 고인의 재산을 유언대로 집행하도록 되어있다. 고인이 유언장을 친필로 썼다고 하더라도, 유언장에 필요한 요건을 못 갖추면 그것은 종이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뉴질랜드나 서구권에서는 꼭 유언장을 등록해야 한다는 점을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내 것이나 남편 것조차도 차일피일 미루다 아직 못했고, 아버지의 경우에는 뉴질랜드에서의 재산이 심플하게 공동계좌에만 있다고 생각해서 유언장을 말씀드리지 않았다.
그래도 파워 J 계획형 인간이신 아버지는 내가 치과 치료 때문에 한국에 가 있는 7월 방학 2 주 동안, 큰언니에게 일을 시켜 자신만의 계획서를 작성하셨다. 누구와 어느 단체에 얼마를 어떤 명목으로 기부하고, 손자 손녀들 대학 입학 시 축하금은 얼마, 심지어는 딸들이 엄마에게 얼마의 용돈을 드릴지 까지 자신의 의지(will)를 세세히 적으셨다. 물론 아버지의 뜻은 얼마든지 적으실 수 있다. 그러나 그 계획서는 어디까지나 남는 자들의 집행에 달려있다. 집행하는 것은 응당 어머니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사실 이곳저곳에 주라고 적은 지출 계획은 엄마가 남은 생을 살 동안 필요한 돈을 희생하게 하는 것이었다. 세상을 두고 떠나면서 세워야 할 면이 있는가. 예를 들어, 아버지 직장 동료 모임에 500만 원이 적혀있다면, 고인의 유지를 떠받드는 게 중요하겠는가 아니면, 혼자 남은 어머니를 더 생각해서 그 비용을 지출하지 마시라고 하는 게 맞겠는가. 나는 후자를 택했다.
"엄마, 나중에 한국에 방문하시거든, 아버지가 친했던 동료분들하고 식사나 같이 하시고, 한 30에서 50만 원 정도만 쓰셔도 되지 않겠어요? 500만 원은 너무 많지. 그리고 생각해 봐. 죽은 친구가 주랬다면서 500만 원을 건네주면 받는 사람이 편하게 받을 수나 있겠어? 오히려 동료분들이 엄마에게 위로금을 주시려고 하겠지."
이미 화장비, 장례식장 두 곳의 대여, 케이터링, 손님 대접, 묘지 비용으로 이만 불이 넘게 엄마에게 남겨진 공동계좌에서 지출되었다. 또 호스피스에 감사한 마음으로 X천불 기증했고, 오클랜드와 타우랑가 교회 양측에도 적잖게 감사헌금을 드렸다. 그리고 앞으로 동결된 아버지의 계좌를 풀기 위해 선임한 변호사 비용도 5천 불 이상 나갈 것으로 예측한다. 그러니 엄마 몫이 적어지지 않도록 더 신경을 써드려야 한다.
엄마는 이제 아빠 없이 혼자 남겨졌다. 엄마에게 남겨진 돈은 엄마가 들고 있어야 한다. 어쩌면 다행이다. 아빠가 원했던 지출 의지(will)를 법원에 등록된 유언(will)으로 남기지 않으신 것은.
이곳에 자세한 내용은 적지 못하지만, 떠나는 자는 남는 자를 위해 모든 것을 간단하게 정리해두어야 하겠고, 자식 간에 분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모든 것을 공평하게 남겨주어야 하겠다. 또 상속 배분이 불공평하다 하더라도 형제간에 서로를 위하며 공평하게 만들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위에서 적었듯 아빠는 뉴질랜드 법원에 유언장을 등록한 적이 없고 (보통은 변호사를 끼고 처리함), 따라서 아버지의 단독 계좌를 풀기 위한 절차에 돌입해야 했다.
우선 아버지 사후에 은행에 방문하여 사망증명서를 제출하였다. 은행 본사의 deceased estate management (유산관리) 부서에서 전화가 왔고 내용을 확인해 주었다. 몇 주 후에 편지가 도착했다.
내용인즉슨, 공동계좌는 어머니의 단독 계좌가 되었고, 동결된 아버지 단독계좌에 뉴질랜드달러로 15000달러가 넘으니 법적인 절차를 통해 계좌를 닫고 잔액을 받아가라는 것이다. 모든 것이 다 처음 겪는 일이다 보니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변호사 비용도 5000불은 든다는 얘기를 들어서 내가 직접 해볼까도 생각해 봤지만, 너무 어려운 탓에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현재 변호사를 선임하여 절차를 진행 중이다. 우선 상속자가 더 있는지 광고를 해야 한다고 했고, 광고를 한 것으로 안다. 이때 숨겨둔 자식이 나타나, 나도 상속자요~ 외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제 제1 상속인인 어머니를 유산 집행자로 올리는 절차를 진행하겠지.
여기에 자세한 내용은 적지 못하겠지만, 앞으로 한국에서 정리해야 할 것들은 매우 복잡하다.
상속자 중에 국적상실하여 외국인이 있는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고 한다.
1월 한국에 방문할 때쯤이면, 뉴질랜드 계좌도 다 정리되길 바라고, 한국에서의 정리도 순조롭게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혹시 궁금해하실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자면, 아쉽게도 나는 이미 받아서 더 받을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