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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고링 Oct 05. 2024

새로운 미션의 시작

그렇게 이혼소장을 받고 돌아오는 길 식은땀이 나고 손발이 덜덜 떨렸다.

이렇게까지 잔인한 방법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믿고싶지 않았다. 평생을 약속했던 다정한 눈빛이 섬뜩하게 스쳐지나갔다. 하늘이 무너지는게 이런거구나, 세상에 혼자 떨어진 기분이었다. 

처음으로 혼자 차안에서 소리내서 펑펑 울었던걸로 기억한다. 

억울해서..실감이 안나서..죽도록 미워서, 그 감정을 토해내지 않으면 터져버릴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이제껏 느껴본적 없었던 감정을 느껴졌는데, 그건 바로 무력감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 나로서는 도저히 이 상황을 막을수도, 해결할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기분..그게 사람을 한없이 초라하고 분하게 만들었던거 같다. 그렇게 받아들일수 없는 시간이 또 흐르고 있었다. 


실감이 나지 않는 시간이 얼마간 지나간 후 다시 정신을 차리고 차마 뜯어볼수 없었던 소장을 세세하게 읽어나갔다. 연인이나 부부가 다투는 이유 중 가장 큰 하나는 아마 어떤 일에 대한 서로의 기억이 다를때가 아닐까 싶다. 이를 가장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법적인 다툼, 즉 이혼소장 이었다. 


서로의 기억이 이렇게 달라서 우리가 여기까지 왔구나 싶었고, 나의 분노를 한층 더 강화시킨 점은 싸우는 날이면 어머님집을 은신처로 삼고 가출을 일삼던 전형적인 회피형 인간이 이렇게나 문제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일수 있다는 점이었다. 얼마든지 할 수 있었지만 안하고 있었던 거였다. 


이혼소장을 받은 피고가 취할 수 있는 옵션은 두 가지이다. 

첫번째는 본 피고는 이혼을 원하지 않고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싶다는 의사표시를 하거나 반소를 통해 상대방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대게 법적으로 인정되는 이혼사유는 도박, 바람, 배우자 또는 배우자 직계가족으로부터의 심히 부당한 대우, 가출 등이 있는데 여기에 해당되지 않으면 법원에서는 쉽게 이혼명령을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서로간의 신뢰가 회복할없는 지경에 이르는 경우에는 이혼이 될수도 있다. 이미 별거기간이 꽤나 길었고 나 또한 이혼을 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반소를 하기로 했다. 


다만 이혼답변서를 제출해야하는 기간이 생각보다 짧다. 30일 안에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그 기간안에 이혼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여 아무런 의사표시도 하지 않으면 법원은 상대방 주장에 동의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상대방 의견대로 법적인 절차가 진행이 되게 된다. 


내가 할수 있는건 이혼 카페 가입해서 경험담을 얻는 것이 전부였는데 카페는 주로 중대한 이혼사유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양육권 싸움과 같은 내 상황과는 다른 경험담이 대부분이었다. 나처럼 혼인기간이 짧고 재산이 단기간에 불어난 케이스는 없어 조언을 구하는게 쉽지 않았고, 지방 특성상 전문 변호사가 많지 않고 또하나 힘든점은 직장인이라 시간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거였다. 직장인은 이혼하기도 힘들다. 여러 준비과정상에 시간적 제약이 많다.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 상담을 받는 것도 시간을 내야했고, 사무실 눈치 봐가며 어렵게 찾아간 변호사들 그들 역시 바쁜 시간 쪼개 찾아온 내 사정보다는 그들의 촘촘한 스케쥴에 기껏해봐야 10분, 길면 30분의 시간을 내줄 뿐, 내 상황을 내 처지를 구제해주기보다는 본인들의 수임료와 성공보수를 더 받아내기 위한 셈만 하는게 보였다. 지금은 그들도 나같은 직장인이니 회사 배부르게 해서 본인들 성과급 많이 받는게 어떻게 보면 당연하지만, 그때는 왜그리 매몰차고 차갑게만 느껴지던지, 주변 지인중에 변호사 1명 없는 내 처지까지 원망하는 시간들이었다. 


이제껏 살면서 내의지로 내뜻대로 완벽하게 100프로는 아니라도 어느정도는 만족하는 인생이었지만 이혼소장을 받아든 이후로는 무엇하나 내뜻대로인게 없는 시간들을 견뎌내고 있었다. 


그렇게 나의 법률 대리인 찾기 미션을 수행하며 하루하루 또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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