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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 속 심리, 그리고 사회 속 불평등

공정하지 못한 세상이 어떻게 무력감을 조장하는가

by cogito


영화 기생충에서 인상 깊었던 대사가 있다.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 뭔 줄 아니? 무계획이야, 무계획.
노 플랜(No Plan)."


이 말은 주인공인 김기택(송강호)이 폭우로 집이 물에 잠긴 후에 내뱉은 대사로,

겉으로 보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인생에 대한 씁쓸한 푸념처럼 들린다.


그러나 여기에 영화의 흐름과 사회적 맥락을 곁들이는 순간, 그 메시지는 달라진다;

이 말은 단순한 체념을 넘어서, '빈곤'과 '계급'이 개인을 무력감 속에 가두는 잔혹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으니 말이다.


자본주의는 다음과 같은 전제 위에서 작동한다;

노력하면 소득을 얻을 수 있으며,

누구에게나 ‘평등한’ 기회가 주어진다는 믿음.

- 그 속에서 도태된 이들은 실패의 책임을 오롯이 스스로 져야 한다. 그리고 사회는 이미 공정한 룰을 제공했으니, 가난은 개인의 무능 탓이라는 논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영화 기생충은 이 전제가 얼마나 허구에 가까운지를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애초에 출발선이 다른 사회에서, 노력만으로 계층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믿음은 환상에 불과하니까.


이번 글에서는 영화 속 소재와 대사들을 통해

사회 속 불평등에 대해 다뤄보려 한다.

(스포가 많으니....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영화 기생충의 줄거리


영화에서는 극명히 대비되는 두 가족, 김기택의 가족박 사장 네 가족이 등장한다 -


김기택(송강호 분)은 실직 상태에 처해있는 가장이다; 그는 아내 충숙(장혜진 분), 아들 기우(최우식)와 딸 기정(박소담)과 함께 반지하에서 힘겹게 살아간다.


반면, 박사장 가족은 으리으리한 고급 저택에서 풍족한 삶을 누린다.


반지하에서 살아가는 기우 (최우식)와 기정 (박소담) 의 모습. 와이파이가 잘 터지지 않아 쩔쩔매는 장면이다.


이야기는 김기택의 아들 기우가, 학력을 위조해 박사장네 가정교사로 취업하면서 시작된다;

속임수에 능한 기우는 이를 기회삼아 나머지 가족들을 하나씩 박 사장네에 취직시키고, 이들은 신분을 철저히 숨긴 채 박씨네 집에 깊숙히 파고든다.


그런데, 영화의 중반에서 예상치 못한 반전이 발생한다;

바로 박사장의 전 가사 도우미 문광(이정은 분)이 등장하고, 김기택 가족의 거짓을 알게 된 것이다. 그녀는 그들의 정체를 폭로하려 하고, 이들이 대립하면서 영화는 점점 폭력적이고 긴박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결국 비극적인 결말로 이어지는 스토리를 통해, 영화 '기생충'은 계층 간의 좁힐 수 없는 격차과 사회의 위선을 그려내고 있다.



돈이 곧 인격이 되는 세상

극 중 충숙(김여사)의 대사가 있다;

김기택이 박사장의 아내, 연교가 부자임에도 순진하고 착하다고 칭찬하자, 김여사는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부자인데 착한 게 아니라, 부자니까 착한거지. 그 돈이 다 나한테 있었어봐. 나는 (박사장네 가족보다) 더 착하지."


돈이 곧 인격이 되고, 사람의 가치와 성품을 정하는 사회.

김여사는 이어서 말한다;


'다리미야, 다리미. 돈이 다리미라고. (사람의) 구김살을 쫙 펴줘.'


돈이 꼬인 성격도 풀어주고, 구김살도 없애준다는 김여사의 말은,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의 단면을 보여준다.

돈이 구김살을 펴준다는 충숙의 대사....인상 찌푸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영화 기생충은 인물들의 말과 행동, 장면 하나하나를 통해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날카롭게 포착하고, 이로써 만들어지는 부조리한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돈과 지위로 인해 형성된 '경계선'


영화 '기생충'의 박사장. 선을 넘는 인간들을 싫어한다는 그의 한 마디에 소름이 돋았다...


부유층과 빈곤층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선’이 존재한다;

겉으로는 평등과 평화를 가장하지만, 그 선을 넘는 순간 그 사람, 그리고 사회의 본성이 드러난다.


영화 속 박 사장(이선균)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는 모두에게 친절한 듯 행동하지만, 아랫사람이 보이지 않는 경계를 넘으면 싸늘하고 멸시 가득한 표정으로 태도를 바꾼다. 그의 배려는 ‘선을 지키는 자’에게만 유효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김씨네 가족은 박 사장을 향한 반감을 품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을 우러러본다. 박씨 가족이 자신들의 거짓말에 쉽게 속아넘어간다는 사실조차, ‘그들이 순진하고 선량하기 때문’이라며 미화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김씨네 가족이 영화속에서 경쟁하는 대상은, 같은 하층민인 가정부 문광네 가족이다. 그들과 생존을 두고 치열하게 다투던 문광은 결국 그들의 손에 죽음으로 내몰린다.


부유층은 감히 건드리지 못하지만, 같은 처지의 사람들끼리는 끝없이 다투고 서로를 끌어내리는 모습.
이는 영화가 그려내는 가장 처절한 현실의 단면이 아닐까.




계급이 인간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


계급과 불평등이 인간의 심리와 인격에 미치는 영향은 과학적으로도 입증된 사실이다.


한 예로, 유인원의 한 종류인 보노보(Bonobo) 를 대상으로 한 실험이 있다.
보노보 수컷들은 철저한 위계 구조 속에서 살아간다.
만약 20마리의 수컷이 한 무리를 이루고 있다면, 개체마다 1등부터 20등까지 명확한 서열이 정해진다.

연구자들은 이들의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를 분석했고, 두 가지 상황에서 가장 높은 스트레스 반응이 나타났다.

자신의 지위가 불안정할 때 (insecure status)

자신이 낮은 서열에 있을 때 (low status)

특히, 서열 최하위에 속한 보노보는 다른 개체에게 저항하는 대신, 몸을 웅크리고 수동적인 태도를 보였다.
즉, 계급에 의한 불안과 열등감이 생물학적으로도 무력감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반면,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평등한 집단에 속한 보노보들은 스트레스 수치가 현저히 낮았으며,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보였다.


이 원리는 인간 사회에서도 유사하게 작동한다.
보노보 세계에서 서열을 결정짓는 기준이 ‘힘’과 ‘덩치’라면,

인간 사회에서는 ‘능력’, ‘지위’, 그리고 ‘재력’이 계급을 가른다.

그 결과, 하위 계층에 속한 사람들은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 무력감을 학습하게 되고,
결국 자신은 열등하다는 믿음을 내면화하며 자신의 지위를 수용하게 된다.

김씨네 가족이 자신들보다 '우월한' 박씨네 가족 앞에서 비굴한 존재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숨길 수 없는 계급의 간극 - '냄새'


영화의 결말에서 김기택 (송강호)은, 충동적으로 박 사장 (이선균)을 살해한다;

온화한 성품으로 알려진 김기사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폭발한 이유는... 바로 '냄새' 때문이었다.


- 박 사장은 김기택의 몸에서 풍기는 '반지하 냄새'에서 불쾌함을 느끼고, 그가 보는 앞에서 코를 막고 얼굴을 찌푸렸다 - 그의 반응은 김기택의 분노를 자극했고, 그 분노는 '살인'이라는 파국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영화를 보며, 문득 의문점이 생겼다 - 봉준호 감독이, '냄새'라는 소재를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내 나름대로 내려본 해석은 다음과 같다;


'후각'은 매우 원초적인 감각이며, 인간과 동물은 본능적으로 '악취'를 피한다.

시체, 상한 음식, 오물…. 우리는 이들이 풍기는 냄새만으로 강한 거부감을 느낀다.

김씨네 가족이 풍기는 '반지하 냄새' 또한, 혐오감을 유발하는 '악취'이다.

그러나 정작 반지하에 살고 있는 이들은 그 냄새를 인식하지 못한다

- 그들도 이 냄새에 물들어버렸기 때문이다.


김기택과 그의 가족에게, 이 반지하 냄새는 몸과 생활 곳곳에 베어있는 '일상의 일부'이다;

슬프게도, 김씨네 가족은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그 냄새를, 박 사장은 귀신같이 맡아내고 얼굴을 찌푸린다. 영화 속 김씨네 가족이 아무리 단정한 옷을 차려입고 세련된 말투로 치장해도, 이 '가난의 냄새'만큼은 지울 수 없었던 것이다.


- 영화 속의 ‘냄새’는 단순한 후각적 요소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계급을 드러내는 표식이자, 지울 수 없는 경계선이다.


봉준호 감독은 ‘악취’라는 장치와, 인상을 찌푸리는 박사장의 제스처를 통해

가난에 대한 경멸을 강력하게 형상화한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혐오의 대상이 되는 빈곤층의 현실,
그리고 끝내 그 경멸이 분노를 거쳐 살인으로 폭발하는 과정까지.

- 모든 것이 정교하게 짜인 상징으로 작용한다.


이를 떠올려낸 감독의 치밀함이 놀라울 따름이다.




잔인한 현실 속 어리석은 희망 (feat. 수석)


영화 초반, 아들(최우식) 은 선물받은 ‘수석’ 을 부적처럼 소중히 여긴다.


그에게 수석은 희망의 상징이다.


'언젠가 자신도 박 사장네처럼 부유해질 수 있다는 믿음'

'시궁창 같은 현실을 벗어나 더 나은 삶을 개척할 수 있다는 기대'


수석은 위와 같은 소망이 담긴 물건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결국 상대방이 내리친 수석에 머리를 맞고 쓰러진다.
자신을 구원해 줄 줄 알았던 물건이, 되레 그의 뒤통수를 쳐서 무너뜨린 것이다.
희망의 끝에서 마주한 것은 허무함과 차가운 현실뿐이었다.


- 영화 기생충은 이 장면을 통해, 꿈조차 잔인하게 짓밟히는 하층민의 운명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수석을 가방에 넣는 기우. 폭우에 집을 잃어 대피소에 온 상황에서도 수석은 끝까지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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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 김기택(송강호) 이 ‘노 플랜(No Plan)’을 외치며 삶의 의욕을 상실한 것과 달리,

아들 기우는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는다.

- 누구나 절망할 법한 일을 겪었음에도, 그는 박 사장에 버금가는 부자가 되어 아버지를 구해내는 미래를 꿈꾸니 말이다.


그러나 감독에 따르면, 이 계획을 실현하려면 100억 원이 넘는 재산이 필요하다.
하층민인 그가 이 돈을 모을 가능성은, 로또에 당첨될 확률보다도 낮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희망을 품는다.
이 희박한 가능성에 매달리는 그를 어리석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질 수 있는, '희망'조차 허락되지 않는 현실을 비난해야하지 않을까?


영화 '기생충'은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평등한지,

우리 무의식 속에 내제된 잣대들이 과연 정당한지,

나 자신, 그리고 세상에 질문을 던지게 한다.





참고 자료:

보노보 실험에 대해 설명된 영어 동영상 :

https://youtu.be/lRhEIz4GbK0?si=50VCpFFTPTm5Ol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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