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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세상

'주의력'이라는 틀에 갇힌, 나만의 협소한 세상

by cogito

우리의 세상은 협소하다;


아니, 우리가 사는 세상의 크기가 작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가 지각하고, 인지하고, 기억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적이기에,

각자의 시야에 담기는 세계는

실제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사방에서 쏟아지는 자극을 총체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주의력이 닿는 영역만을 선택적으로 수집한다.

그리고, 그것이 세상의 전부인양 착각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보는 세상의 범주를 넓히고,

이를 담아내는 자신의 '그릇'을 넓히기 위해서는

주의력을 기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내 그릇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출처: 광수생각)


주의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상향식 주의력 (자극-주도적 주의력, down-up attention)과

하향식 주의력 (목표 지향적 주의력, top-down attention)이다.


상향식 주의력은, 외부의 자극에 의해 자동으로 조절된다;

이를테면, 주변에서 큰 소리가 나거나,

눈앞에 갑작스러운 움직임이 나타나면,

반사적으로 그 대상에 주목하게 된다;

즉, 상향식 주의력은 감각과 반사 작용에 의존하여 지각을 조절하는 다소 수동적인 시스템으로, 일종의 본능적 반응이다.


반면, 하향식 주의력은 우리의 의지와 목적에 조절되는 '능동적'인 과정이다;

주변에서 대화 소리가 들려와도 독서에 집중하거나, 목표한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은, 다 '하향식 주의력' 덕분이다.


하향식 주의력은, 뇌의 '전두엽'이 주로 전담한다;


특히, 배외측 전-전두엽 (DLPFC: 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이라는 부위는 어느 자극에 주의를 기울일지 정하고, 지속적인 주의력을 유지해 주는 역할을 한다. - 조직으로 치면 CEO와 같은 존재다.


전두엽의 또 다른 주요 영역인 전대상회 피질 (ACC: Anterior Cingulate Cortex)

우리에게 쏟아지는 무수한 자극 중, 불필요한 것을 걸러내는 필터 역할을 한다;


그러나, 전두엽의 통제권은 사소한 자극에도 허무하게 무너진다.

주변의 소음, 빛, 냄새,

머릿속에서 불시에 떠오르는 잡생각 등....

이러한 잡음들은 우리의 선택적인 집중력을 교란시킨다 - 그리고 자극의 강도가 클수록, 주의력은 더욱 쉽게 흩어진다.


아무리 애써도, 주변에서 큰소리로 대화를 하거나

향기로운 음식 냄새가 나면 주의력이 흐려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의력은, 단순한 '의식'이나 '지각'과는 차원이 다르다;


주의력은 같은 자극도 더 선명하게 받아들이고 더 깊이 기억하게 하며,

주어진 시간을 밀도 높은 경험으로 채워주는 힘이다.


그러나 이 힘은 매우 한정적이다;

아무리 멀티태스킹에 능한 사람이라도,

한 번에 하나의 대상에만 온전히 주의를 기울일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만의 좁은 세계에 무엇을 담을지...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

이를 흩트려 놓는 불필요한 잡음을 차단하는 것 역시 우리의 몫이다.




우리는 유례없는 '풍요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이와 함께 우리의 몰입력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과거보다 훨씬 풍성한 자극과 정보를 접할 수 있지만,

그만큼 집중의 밀도는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성인 ADHD'로 진단받은 나는, 그 영향을 더욱 강렬하게 경험했다;


나는 원래부터 외부 자극에 취약했고,

한 가지에 몰입해 본 경험이 인생을 통틀어 손꼽을 만큼 적었다;


'내가 비정상적인 걸까...'라는 의구심에 주변을 면밀히 관찰해 본 결과,

다른 사람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집중'과 '휴식'이라는 양극단의 상태를 오가는 듯했다.

그에 비해, 나는 늘 그 중간 어딘가에서 표류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느 한 가지에 온전히 집중하지도 못하고, 온전히 쉬지도 못하는 어중간한 상태...

- 그것이 내 머릿속의 기본값이었다.


난 폭풍 속을 떠도는 배처럼,

한 곳에 정박하지 못하고 쉴 새 없이 흔들렸다.

이 상태에서 내 안에 있는 생각과 감정을 안정적으로 담아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던 내게 결정적인 변곡점이 찾아온 건 중학교 3학년...내 손에 '스마트폰'이 들어왔을 때였다;



처음에는 세상을 손에 넣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정보를 검색할 수 있고,

신문 기사, 노래, 사진, 영상 등... 모든 것이 내 손끝에 있었다.

그러나, 나의 기쁨은 곧 혼돈으로 바뀌었다;

공부하려 검색창을 열었다가 광고에 시선을 빼앗기고.

유튜브에서 강의를 찾다가 뮤직 비디오를 보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결국, 내 생활은 더욱 산만해졌고,

내가 보내는 시간의 질 또한 낮아졌다.


스마트폰이 나를 더 넓은 세상으로 이끌어줄 거라 믿었건만,

오히려 내 시야를 더 좁고 얕게 만들고 있었다.




이를 알면서도 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나에게

어느 날, 운명의 사고가 일어났다-


스마트폰을 바닥에 떨어뜨려, 액정이 깨진 것이다.

- 그냥 금이 간 정도가 아니라, 화면 속 글자가 하나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미줄 모양으로 산산조각 났다.


그 결과, 난 새로운 기계를 마련할 때까지, 강제적으로 '스마트폰 없는 삶'을 살아야 했다.


놀랍게도, 그 시간은 내게

폰을 잃은 상실감에 맞먹는 정도의 해방감을 안겨주었다;




스마트폰 없이 생활한 2주의 시간...

- 그 시간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풀어보겠다....^^



다음 글 링크: https://brunch.co.kr/@e46a33ad50df4bb/37



타이틀 사진 출처:

University of Idaho Women's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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