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역마자 Oct 11. 2024

서울에서의 대학 생활

낭만을 찾아서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나에게 대학은 마치 새로운 세계로 통하는 문처럼 보였다. 고등학교 내내 쌓였던 입시 스트레스, 부모님의 기대, 치열한 경쟁, 그리고 수면 부족은 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모두 사라질 것처럼 느껴졌다. 또한, 사춘기 시절 겪었던 지역감정으로 인해 하루빨리 그곳을 떠나고 싶었다.


그러나 서울의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 마주한 현실은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는 인문학이나 예술에 가까웠지만, 취업이 잘된다는 이유로 부모님의 권유에 따라 공대에 입학했다. 수학, 물리, 화학으로 이어지는 전공과목들은 여전히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낭만적일 줄 알았던 대학 생활도 술을 마실 수 있다는 것 외에는 고등학교 시절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 근처에 있는 친구의 자취방을 방문하게 되었다. 저녁을 함께 먹고, 간단히 술을 마시던 중 방구석에 놓인 클래식 기타를 발견했다. 나는 친구에게 기타를 연주해 보라고 부탁했고, 그는 ‘로망스’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의 연주는 꽤 서툴렀지만, 그 순간 나는 클래식 기타가 매우 매력적인 악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의 연주가 멋있어 보였고, 나도 기타를 연주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다음날 나는 학교에 있는 ‘클래식 기타 동아리’에 가입했다. 동아리에서 제대로 배우려면 연습용 기타가 필요했고, 나는 근처 악기점에서 저렴한 기타 하나를 구입했다. 그때부터 매일 기타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기타 덕분에 대학 생활은 완전히 달라졌다. 공대의 삭막한 분위기 대신 음악을 즐기며 낭만을 알게 되었고, 학교 동아리뿐만 아니라 다른 대학들과의 연합 활동에도 자주 참여했다. 기타를 통해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음악으로 나 자신을 표현하는 법을 배워 나갔다. 매일 꾸준히 연습한 덕분에 몇 개월 만에 동기들 중에서도 꽤 실력자가 되었다.


클래식 기타에 대한 애정이 깊어지면서, 나는 클래식 기타를 전공하는 선배를 통해 유명한 선생님을 소개받았다. 그분은 스페인 유학을 다녀오신 분으로, 논현동에 학원이 있었다. 꽤 비싼 개인 레슨까지 받으며 음악으로 전공을 바꾸는 것도 고려했지만, 내 음악적 역량이 그 정도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취미로 만족하기로 했다.


동아리에서는 매년 두 번 정기 연주회가 열렸고, 선배가 된 후에는 후배들과 함께 연주회 준비와 지휘도 맡았다. 음악을 표현하는 법과 지휘를 멋지게 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음대 선배를 쫓아다니며 배우기도 했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연주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남들과 함께하는 즐거움을 깨달았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지휘했던 순간의 설렘과 감동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런가 하면, 자신을 지키기 위해 ‘검도 동아리’ 활동도 병행했다. 검도를 선택한 이유는 나약한 자신을 강하게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른 무술은 체격이 중요했지만, 검도는 무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를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떤 영화에서 검도 고수가 젓가락 하나만으로 불량배들을 물리치는 장면을 보고 검도를 선택하게 된 것도 있었다. 아침에는 주로 ‘검도 동아리’에서 훈련하고, 저녁에는 ‘클래식 기타 동아리’에서 기타를 연습하는 날들이 많았다.


또한, 남자의 고독을 느껴보고 싶었다. 홀로 위스키를 마시는 남자의 모습이 왠지 멋있어 보였고, 그 모습에서 진정한 낭만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싸구려 위스키를 사서 학교 뒷산에서 혼자 술을 마시며 스스로 뿌듯해하기도 했다. 피우지도 못하는 담배를 물고서 말이다.


대학 신입생 시절, 나는 클래식 기타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고, 처음으로 목적 없이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는 자유를 만끽했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게 느껴지지만, 나만의 낭만을 찾는다고 칼을 휘두르고, 혼자 술을 마시며, 기타에 취해 기분을 즐기던 날들이었다. 지금도 혼자 집에서 포도주를 마실 때면 그때의 열정과 낭만이 떠오르곤 한다.

이전 01화 전라도와 경상도에서의 유년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