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복학과 졸업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진로

by 역마자

1994년 여름, 나는 27개월의 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했다. 당시 북한 김일성 사망으로 인한 비상사태 때문에 제대가 미뤄질 뻔했지만, 다행히 예정대로 제대를 할 수 있었다. 군 생활을 마치고 복학을 준비하면서도, 머릿속에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와 하고 싶은 일들로 가득했다. 군대에서 초소 근무를 하면서 적어두었던 '해보고 싶은 것들' 목록을 자주 떠올리곤 했는데, 수첩에 적어 놓은 것들은 수영, 테니스, 스키 같은 운동부터 다양한 취미 활동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버킷리스트'와도 비슷한 것들이었다.


몇 년이 지나 우연히 그 수첩을 다시 열어보았을 때, 나는 적어놓은 일들의 80% 이상을 이미 이뤘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기도 했다. 그런 경험을 돌아보며, 내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다양한 것들을 시도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대학에 복학한 후, 그동안 억눌려 있던 열정이 폭발하듯 나는 정말 많은 일들에 도전했다.


1990년대 중반은 인터넷이 아직 보급되지 않은 시절이었다. 대신 모뎀을 통해 전화선을 연결하여 '천리안', '하이텔', '유니텔'과 같은 PC통신 서비스를 사용했다. 모뎀을 연결할 때 들리던 특유의 '삐~' 소리는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난다. 낮에는 부모님이 전화를 쓰시기 때문에 통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었다. 우리는 삼형제가 하나의 '하이텔' ID를 공유하면서 사용 시간을 분배하느라 차례를 기다리곤 했다. 그 시절 PC통신을 소재로 한 영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바로 '접속'이었다. 두 남녀가 PC통신 채팅을 통해 사랑을 키워가는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는, 당시 많은 사람들이 PC통신 채팅이 얼마나 유행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접속.jpg 영화 '접속' 포스터

나 또한 PC통신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 소통했었다. 특히 채팅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직업, 성격,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인간관계의 다양성과 복잡함을 배웠고, 소통의 스킬도 향상할 수 있었다. 영화 '접속'에서 본 것처럼 채팅을 통해 이성들을 만나 보았지만, 영화와 현실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특히, 채팅방에서 흔히 볼 수 있던 ‘xx공주’, ‘xx여왕’, ‘xx퀸’ 같은 아이디를 가진 사람들을 실제로 만났을 때, 대부분 크게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통신 동호회 활동도 열심히 참석했었다. 원래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수영, 테니스, 스쿼시, 스키 등 여러 운동 동호회에 가입했고, 영화, 재즈, 살사, 힙합과 같은 문화 동호회 활동에도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살사와 힙합은 당시 한국에서 막 인기를 끌기 시작했으며, 홍대와 압구정에는 라틴바가 새롭게 생겼다. 나도 그 열기에 동참해 몇 달간 살사와 힙합을 배웠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내 한계를 확인하는 소중한 경험을 쌓았다. 이러한 인간관계는 항상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금전적 이해관계가 엮이면서 갈등과 오해가 생기는 것을 보았고, 이로 인해 동호회가 순식간에 와해되는 것도 몇 번이나 목격했다.


대학에 복학한 후, 나는 학업에 집중하며 전념했다. 그 결과 1년 동안 전액 장학금을 받을 만큼 뛰어난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대학원 진학을 진지하게 고려할 정도로 학문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학업 성취는 내게 큰 만족감을 주었고, 더 높은 학문적 목표를 꿈꾸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학과 내 활동보다는 학교 밖의 다양한 경험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았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사회로 나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그 결과, 학과 활동에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고, 학과 내부 네트워크가 좋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시험 기간에 결정적인 문제를 일으켰다. 필요한 족보나 자료를 구하는 일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선배들에게 자료 요청을 하였지만, 대부분 이미 다른 후배에게 넘겼다고 했고, 당사자들은 자료가 없다고 하였다. 이런 상황은 내게 분노와 좌절을 느끼게 했다. 그동안 학교 바깥에서 얻은 다양한 경험들은 나를 더 넓은 세상으로 인도했지만, 정작 학과 내부의 현실은 내게 무겁게 다가왔다. 결국 이런 일들을 계기로 전공에 대한 흥미가 크게 식었고, 학문적 길을 포기하게 되었다.


취업 준비를 하면서 나는 다양한 학원에 다니며 자신을 개발하려고 노력했다. 스피치 학원에 다니면서 내 소심한 성격을 극복하려 했고, 당시 김우중 회장의 '세계화' 열풍에 발맞춰 어학 공부도 시작했다. 영어 학원에 다니며 TOEIC 점수를 취득한 후, 일본어 학원까지 수강하며 언어 실력을 키워갔다. 이러한 노력들은 나를 더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 시기에 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졌고,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인간관계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것과 잃을 수 있는 것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게 되었다. 동호회, 학원, 채팅 등에서의 경험들은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고, 앞으로도 나에게 소중한 자산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다만, 인간관계로 인해 발생한 리스크는 현실의 냉혹함을 깨닫게 해 주었다.


keyword
이전 04화군 복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