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부도의 날

IMF로 인한 백수 생활

by 역마자

2018년에 개봉된 ‘국가 부도의 날’이라는 영화가 있다. 1997년 말에 발생한 IMF 상황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인데, 지인이 그 영화 제작자라 관심 있게 보게 된 것 같다. 영화는 정부의 발표로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경제 상황을 그려냈다. 나 역시 그 시기를 직접 경험했던 사람으로서 마음 한구석에서 묵혀두었던 감정들이 다시금 되살아났다.

1539128247_국가부도의_날_2.jpg 영화 '국가 부도의 날' 포스터


그 시절은 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가 경제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시기였고, 나의 개인적인 삶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나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여러 대기업에 합격했으며, 덕분에 취미 및 동호회 활동을 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사회 진출에 대한 기대감과 자신감이 넘쳤고, 여러 기업에서 제안받은 채용 소식에 만족하며 오만함마저 느끼고 있었다.


1997년 12월, 정부가 IMF 구제금융을 요청하며 발표한 '국가 부도의 날'은 내 삶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당시 대기업들이 신입사원 채용을 전면 취소하거나 연기할 가능성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고, 나 역시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결국, 12월 말에 회사로부터 신입사원 입사 일정이 잠정 연기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처음에는 이것이 큰 문제로 보이지 않았고, 부모님도 크게 걱정하지 않으셨다. 나는 겨울 동안 스키와 스노보드를 배우며 나름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은 점점 나빠졌고, 회사는 입사 예정 인원의 10%만 채용할 것이라는 황당한 통보를 해왔다. 그동안 내가 꿈꾸던 사회 진출의 기회가 멀어지자, 불안감이 몰려왔다.


이 소식을 부모님께 알려드리자, 그분들의 반응은 실망 그 자체였다. 몇 달 전만 해도 아들이 대기업에 입사했다고 자랑하고 다니셨던 어머니는 표정이 어두워졌고, 아버지는 아무 준비도 하지 않고 있던 나를 꾸짖으며 불안한 미래에 대한 걱정을 드러내셨다. 그렇게 나의 '백수' 생활이 시작되었고, 취미 활동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게 되었다. 또한 명절이 되면 나의 취업을 자세하게 묻는 친척들을 만나는 것조차 부담스러워졌다.


그 시기, 한국 정부는 전 세계적인 Y2K 문제를 대비하기 위해 대규모 IT 인력을 양성하기로 하였다. 삼성 SDS와 같은 회사들이 중심이 되어 IT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나도 어쩔 수 없이 참여하게 되었다. 대학 시절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던 프로그래밍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여전히 불안했다. 4개월간의 교육을 마치고 취업을 준비했지만, 사회는 생각만큼 만만하지 않았다. 거의 매주 이력서와 입사 지원서를 제출했지만, 연락이 오는 회사는 거의 없었다. 설령 면접까지 갔더라도 대부분 입사의 높은 문턱을 넘지 못했고, 결국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6개월 동안의 기다림 끝에, 어느 한 일본 회사의 한국 지사에서 일할 기회를 얻게 되었고, 1999년에 정식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첫 사회생활은 결코 쉽지 않았다. 회사는 전산 시스템 구축 업무로 인해 일감이 폭주했고, 나는 매주 여러 차례 새벽까지 야근해야만 했다. 회사에서 생활은 매우 고되고 힘들었으며, 학교 다닐 때조차 흘리지 않았던 코피를 자주 흘리게 되었다. 나의 몸과 마음은 지쳐갔고, 세상에서 살아남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결국 원래 입사 예정이었던 회사로부터 연락이 왔고, 나는 1999년 하반기에 엔지니어로 입사할 수 있었다.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IMF로 인한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은 길지 않지만 내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순간이었다. 나의 자만심을 깨뜨렸고, 자신을 성찰하는 기회를 주었으며, 사회에서의 생존과 성공이 절대 쉽지 않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었다. 비록 고통스러운 시기였지만, 그 경험이 없었다면 나는 오늘날의 나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힘든 시절을 겪으며 얻게 된 교훈은 내 인생에서 많은 이정표가 되었고, 지금까지도 어려운 상황에 부딪힐 때마다 그 시절을 떠올리곤 한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처럼, 그때의 고통과 좌절은 결국 나를 더 강하게 만들어 주었으며, 오늘날 내가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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