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골탈태
처음 군대 신체검사 통지서를 받았을 때, 나는 많은 고민에 빠졌다. 그 당시 내 키를 기준으로 45kg 이하라면 방위 판정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검을 일주일 앞두고 내 몸무게는 48kg였다. 3kg만 감량하면 방위 판정을 받을 수 있었기에 나는 1주일 동안 굶기로 결심했다. 너무 마른 몸이라 효과가 클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고, 예상대로 1주일이 지나도 몸무게는 크게 줄지 않았다. 신검 당일, 내 몸무게는 44.7kg에 불과했지만, 병무청에서 입은 옷이 무거웠는지 병무청 저울은 45.5kg을 찍었다. 당황스러워 군의관을 쳐다보자, 그는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했다. 그냥 현역으로 입대할지, 아니면 재검을 받을지 선택하라는 것이었다. 이미 굶어본 결과, 45kg 이하로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란 걸 깨달았기에 나는 “그냥 현역 입대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신검 후 몇 달이 흘렀다. 그 시기, 인생 첫 실연을 겪으며 깊은 슬픔에 빠져 있었고, 운명적으로 군대 입영 통지서가 집으로 배달되었다. 학생 신분이었기 때문에 입대일을 연기할 수도 있었지만, 실연의 아픔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에 군대를 가기로 마음먹었다. 입대 전날 친한 친구들 몇과 간단히 술자리를 가졌다.
입대 당일, 의정부에 있는 306 보충대로 향했다. 수많은 신병들이 나처럼 전철에서 내려 보충대로 향했고, 그곳에서 병력 배치가 결정되었다. 같이 있던 사람들은 8사단, 일명 ‘오뚜기 부대’만 아니면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의 불운은 계속되었고, 최종 오뚜기로 호명이 되자, 주변 사람들은 모두 안타까운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훈련소에 도착했을 때, 나보다 몇 주 먼저 도착한 기수들이 신병들을 보며 웃고 있었다. 교도소 신입 재소자를 맞이하는 재소자들의 분위기와 다를 바 없었다. 며칠간 정신없이 먹고, 구르고, 잠자기를 반복하던 중 세상 걱정은 점차 잊혀졌다. 하지만 체력이 약했던 나는 매번 선착순에서 늦어 남들보다 더 많이 뛰어야 했고, 몸이 고달팠다. 신병 훈련 기간이 끝나고 부모님과의 면회 시간이 주어졌을 때, 어머니는 살이 까맣게 타고 입술이 터서 피가 나는 나를 보고 눈물을 흘리셨다. 하지만 내가 준비해 온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을 보시고는 안심한 듯 웃으셨다. 입대 전에는 식사량이 적었던 내가 잘 먹는 모습을 보고 안도하셨던 것 같다.
훈련소를 떠나 철원의 포병 부대에 배치되었다. 부대는 산골에 위치해 있었고, 세면대조차 개울가 옆에 있었다. ‘나는 자연인이다’에서 보던 것처럼 겨울에도 개울에서 찬물로 세수하고 샤워를 했어야만 했다. 겨울에 슬리퍼를 신고 샤워장으로 가는 길이 너무 싫었다. 다행히도 흔히 말하는 짬밥이 차면 뜨거운 물을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 군대 시계가 빨리 가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주중에는 훈련과 작업으로 바쁜 시간을 보냈지만, 일요일에는 그나마 쉴 시간이 있었다. 일요일이면 부대가 위치한 산에서 더덕을 캐거나 황소개구리를 잡아 튀겨 먹었다. 배가 고팠던 나날이었다.
부대 생활에 익숙해진 지 6개월쯤 지나 부모님이 다시 면회를 오셨다. 내가 부대 앞에서 반갑게 손을 흔들며 다가갔지만, 부모님은 나를 지나쳐 다른 곳으로 가셨다. 입대 후 살이 많이 찐 탓에 나를 알아보지 못하신 것이었다. 부모님을 뒤에서 불렀고, 그제야 아들을 알아보셨다. 달라진 몸과 얼굴을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셨다. 외박을 나가 몸무게를 재보니 입대 전 50Kg 전후였던 내 몸무게가 65kg을 훌쩍 넘어 있었다. 아버지는 이제야 사람이 되었다며 만족스러워하셨다. 내가 군대 가기 전의 모습이 많이 못마땅하셨던 모양이다.
세월이 지나 지금은 편히 이야기할 수 있지만, 지옥과 같은 시간들도 많았다. 상급자들에게 구타를 당하기도 했고, 비가 오는 날이면 태권도 훈련이라는 이름으로 허벅지에 피멍이 들 정도로 다리 찢기는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훈련 중 비가 많이 오는 날 야영을 했을 때는, 다음날 몸이 물이 잠긴 채로 기상을 한 적도 있다. 아찔한 순간이었지만, 너무 피곤한 나머지 얼굴만 물 위에 내놓고 잠을 자고 있었던 것이었다.
제대가 가까워질 무렵이 되자, 부대에서 더 이상 나를 괴롭힐 상급자가 없었다. 매일 한자 공부와 독서를 하며 시간을 보냈고, 내 인생 중 가장 많은 책을 읽었던 시기로 기억에 남아 있다. 이 시간을 통해 제대 이후의 삶을 준비할 수 있었고, 사색에 잠길 수 있었다. 또한, 몸무게를 감량하며 부어 보이지 않게 몸을 만들었다.
군대 생활은 힘들었지만, 나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다. 체격과 체력은 물론, 정신적으로도 두려움을 극복하는 법을 배웠다. 또, 제대 전 몇 개월 동안 책을 읽으며 내면을 단단히 다질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내 군 생활을 되돌아보면 그야말로 ‘환골탈태’라는 말이 어울린다. 덕분에 나는 더 이상 아버지의 걱정거리였던 연약한 소년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한 사람의 성인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그 경험들은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중요한 밑바탕이 되었고, 내 인생에서 더없이 값진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또다시 경험하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