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분명히 내게 말했다.
-엄마 지금은 이빨 빠진 호랑이야. 예전 같지 않으셔.
예전에는 다들 꼼짝도 못 했지. 그땐 내가 어려서 잘 몰랐어. 엄마가 다 맞는 줄 알았지. 그런데 지나고 보니 우리 엄마가 심한 거였더라고. 우리 누나도 엄마 싫어하잖아. 엄마 딸인데 싫어하는 게 말이 돼? 오죽하면 그러겠어. 지금은 진짜 힘 다 빠지신 거야.
-그래? 아니 어머니가 도대체 얼마나 무서우셨길래 그렇게 말해? 당신 친구들도 그렇고!! 지난번 친구들 모임에서도 친구들이 하나같이 당신 엄마 대단하셨다고 그랬잖아. 나는 잘 모르겠던데. 인상이 엄청 고우시던데.
-인상은 좋지. 엄마가 말씀을 필터 없이 하시는 게 심해서 그렇지 악의가 있는 건 아니야. 그러곤 금방 잊으셔.
근데 그게 문제야 본인은 필터 없이 던진 말에 상대는 상처를 입는데 본인은 몰라.
-그렇구나. 에이 뭐 그러실 수도 있지.
그런 사람 많잖아 뒤끝 없고 좋지 뭐! 나는 괜찮아. 나도 단순해서 한 귀로 듣고 그냥 흘리면 돼. 그리고 당신도 다 알아서 하는 말이지만 뭐 내가 보통 인생살이는 아니었잖아? 잘할 수 있어. 해볼게!!
-고마워. 내가 잘할게. 그때는 멋몰라서 엄마편만 들었다가 이혼했는데 이제는 중간에서 잘할게.
-응 그래. 특히 내 말 잘 들으면 돼! 알았지?
-하하하하하
우리 둘은 그렇게 시어머니 이야기를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행복한 미래를 꿈꿨다.
‘이빨 빠졌다며… 에이 나도 뭐 쉽게 살아온 거 아닌데 괜찮을 거야. 설마 “사랑과 전쟁”같겠어?’
라고 생각하며 상상을 초월한 이빨 빠진 호랑이 시어머니를 만나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왜 그리도 남편의 친구들이 하나같이 첫 인사하는 내게 “찬호네 엄마 대단하셨지 “라고 했었는지 남편은 결혼직전 수시로 엄마 이야기를 했는지 그때 눈치를 챘어야 했다.
시어머니의 활약상은 몇 가지 예로 보면 이렇다.
첫째, 큰아들의 이혼사유
어머니는 남아 선호 사상이 강하신 분이었다.
그래서 장남이 어머니에게 제일 귀했다.
남편의 기억을 빌려 써보면 이때 시아버지는 거의 무능한 가장이었다고 한다. 술과 노름을 좋아하셨고 딱히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런 살림을 도맡아 악착같이 살아내시면서 자녀 셋을 키우셨는데 그런 시어머님께 장남은 남편이자 아들이자 시어머니의 고단한 삶을 기댈 수 있는 귀한 존재였을 것이다.
그래서 유독 장남에게 마음이 여리셨다.
자녀 양육에 대해서는 엄마 각자의 철학이 있기에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감히 말해보자면 시어머니는 그런 큰아들을 개떡 같이 키우신건 틀림없다.
세 남매 중 성품은 착한 듯하나 우유부단하고 시아버지피를 닮아 책임감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결혼 후 재정 적으로 여러 번 큰 사고를 쳤고 그때마다 시어머니가 다 해결해 주셨다고 한다. 경제능력 없으신 시아버지를 대신해 일찍이 여러 사업을 하신 어머니의 수완덕에 남편은 유복하게 자랐다고 한다.
철없는 큰아들이 경제적 사고를 칠 때마다 시어머니는 당신의 아들을 혼내는 게 아니라 당시 큰며느리에게
-네가 남편 간수를 제대로 못하니까 저러는 거 아니냐!
집에서 여자가 뭐 하는 게냐! 바깥일 하는 남편 내조도 제대로 못해서 번번이 이런 일을 만들어?! “
라고 늘 호통을 치셨다고 한다. 그리고 모든 일을 어머니께서 해결해 주셨다고 한다. 한두 번이 아니라 가정 경제가 무너질 만큼이나 그런 일이 잦았고, 지금도 여전히 시어머니 속을 썩이는 정말 철딱서니 없이 사는 대책 없는 큰아들이다.
시어머니의 그런 말과 행동에 당시 쌓일 대로 쌓인 상처 입은 큰 며느리는 결국 이혼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 친하게 지내던 둘째 누나에게 “어머니 때문에 더는 못살겠어.”라고 말하는 올케를 시누이 언니는 붙잡을 수 없었다고 내게 말했다.
-은정아 내가 오죽했으면 내 엄마고 친오빤데 올케 언니한테 그냥 이혼하라고 그랬겠니. 나도 여잔데… 이해하지 … 그런 남편이랑 시어머니랑 어떻게 사니….
우리 엄마가 심한 거 나도 잘 알아. 그러니 너도 힘든 거 내가 다 이해해. 나는 네가 엄마한테 뭐라 해도 너한텐 할 말이 없어.
그랬다. 그땐 젊고 돈도 명예도 있으신 시어머니는
남편역할 대신 아들들에게 특히 장남에게 모든 걸 쏟고 계셨고 그 외에 다른 건 보이지 않으셨던 거 같다.
그 후 계속해서 장남은 이혼 후에도 재정적인 사고를 일으켰고 어머니는 몸도 마음도 점점 연세를 드시면서
재정적인 면에서도 힘이 빠지시게 되신 거다.
그래서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라고 했던 건데…..
내가 만난 호랑이는 변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