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나무
나는 오랜 시간 나를 설명하는 데 서툴렀다.
사람들이 바라보는 나와
내가 알고 있는 나 사이에는
언제나 작은 틈이 있었다.
사람들은 나를 밝고 따뜻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잘 웃고 잘 들어주고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 말들이 고마우면서도
내 안을 전부 비추지는 못한다는 걸
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나는 사실
자주 흔들리고 쉽게 아파하는 사람이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한참 동안 머물러 있는 날도 많다.
겉으로 보기엔 단단해 보여도
내 안에는 쉽게 흔들리는 결들이 있다.
어떤 날은 조용히 무너졌다가
또 어떤 날은 조용히 다시 일어선다.
그래도 나는
괜찮은 척 익숙한 척 살아왔다.
나를 드러내는 일은
여전히 어색하고 아직도 서툴다.
그러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 앞에서는 숨거나 꾸밀 이유가 없었다.
말로는 끝까지 가지 못하던 마음들이
문장에서는 끝까지 흘러갔다.
외면했던 감정들이
천천히 돌아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때 알았다.
글은 결국 나를 향해 걷는 일이라는 것을.
그래서 오늘
나는 다시 나를 쓴다.
남들이 이야기하는 ‘나’가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나만이 아는
어떤 날은 불편하고 어떤 날은 애틋한 그 ‘나’를.
나는 어떤 사람인가.
그 질문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그리고 천천히 이렇게 말하게 되었다.
나는
관계를 사랑하면서도 관계에 상처받는 사람이다.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사람 때문에 지치고
그래도 다시 마음을 건네는 사람이다.
스스로 단단해지고 싶어 하면서도
누군가의 다정한 한마디에 안도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필요로 하면서도
소중한 연결을 바라는 사람이다.
나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사람이다.
아직 배우는 중이고
아직 자라는 중이다.
그리고 그 미완의 나를
더 이상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지키고 싶은 마음들
천천히 알아가고 있는 나의 결
사라지지 않은 흔적과
그 위에 자라는 작은 가능성까지.
오늘 나는 그 모든 나를 데리고
이 글을 쓴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글이 아니라
나를 이해하기 위한 글을.
내가 나에게 조금 더 가까워지는 글을.
글숲의 첫 주제를 ‘나’로 정한 것도 그 이유다.
모든 이야기는 결국 자신에게서 시작된다.
나를 알아야 타인을 이해할 수 있고
내 마음을 바라봐야 관계도 비로소 보인다.
그래서 오늘 나는
은나무라는 이름으로
가장 단정한 마음으로 나를 쓴다.
오랫동안 뒤로 밀어두었던 나에게
조용히...
-은나무-
알랭 드 보통 (Alain de Botton)
“우리는 스스로를 이해하는 만큼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