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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닻별 Nov 03. 2024

너의 색 감상기

분명함과 흐릿함(스포O)

 이번 영화를 보게 된 계기는 얼마 전에 올린 영화 감상기에 포함된 룩백이 나에게 준 인상이 상당히 좋아서 였다. 그 애니메이션 영화의 좋았던 기억이 나를 영화관으로 이끌었다.


 최근에 영화관을 가서 먹은 팝콘들이 상당히 별로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침 일찍가면 그래도 새로 튀긴 팝콘을 먹을수 있지 않을까 해서 조조 영화로 영화관을 찾았다. 영화관에 도착하니 연기를 내며 빈 공간을 채우고 있는 옥수수 알갱이들이 보여서 기분이 좋았다. 즐겁고 기대되는 마음으로 키오스크로 가서 반반팝콘 달콤맛과 치즈맛을 주문했고 내가 받아든 팝콘은 무려 따뜻했다. 눅눅하지 않고 바삭바삭한 팝콘은 내가 영화를 보는 동안 충분히 나를 즐겁게 했다. 어차피 손님도 적다면 아침에 조금 튀기고 오후 시간대에 조금 튀기는식으로 하면 어떨까 하는 모르는 소리도 해봤다.


 영화 중간에 나오는 평온을 비는 기도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내용이 '주여, 우리가 바꿀수없는 것은 받아들일수 있게, 바꿀수있는 것들을 바꿀 용기를 낼 수있게, 그리고 이 두가지를 분별할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라는 기도문이었는데, 기독교가 아니어서 처음들었지만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는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외에도 영화에서 나오는 노래들이 가지는 스토리가 좋았다. 물론 노래 자체로도 듣기 좋았다.

 영화 제목이 너의 색이었지만, 뉴스에서 본 설명으로는 각양각색의 특이한 학생들이 모여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봤던 기억이 있어서, 색감에 대한 내용 직접 설정에 이용될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아니었다. 주인공은 사람에게서 고유의 색이 보이는 남들과 다른 면모가 있는데 이 연출과정에서 주인공이 생각하는 세상과 세상이 선으로 구분되어있는게 인상적이었다.


 미국의 어떤 사람은 머리에 이상이 생긴 후로 세상이 숫자로 보이는 일도 있다고 했다. 우리가 보는 세상은 어떤가 내가 쓰는 글을 보여주는 모니터도 그 내용을 받아적는 키보드도 분명히 숫자를 포함하고 있지만, 적어도 내게는 숫자로 보이지 않는다.

 이런 편리한 세상을 살다보면 세상이 흐릿하게 보이는 순간이 온다. 그런 순간이오면 물에 푹 잠긴채 부유하는 것처럼 세상과 단절되기도 하고 갈피를 잃고 제자리를 맴돌거나 예상치 못한 길을 가기도한다. 흐릿한 세상이 존재한다면 분명 그 세상을 볼줄알아야 하지만 우리의 의지로 원하는 순간에 그 세상을 선택하는편이 좋다. 나는 원하지도 않는데 앞이 보이지 않는 세상에 갇힌채로 하루를 보내는건 슬픈일이다. 내가 지금 보고있는 세상은 흐릿한 세상일까. 아무런 소리도 어떤 색깔도 보이지 않는 무감각한 세상은 아닐까 그런 걱정이 드는 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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