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착수

by 와타사와

격렬했던 UN 회의가 끝난 지 이제 몇 주가 지났지만, 그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목소리가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각국의 대표들은 자기 나라로 돌아가 곧바로 자국의 정책 방향을 조정하고, 앞으로의 대응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이 거대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데 따르는 정치적 무게는 그야말로 엄청났다.


존 맥케이브 대통령은 대선 토론회를 위해 방문한 뉴욕의 회색빛 하늘 아래 서서 멀리 보이는 허드슨강을 바라보았다. 흐린 구름이 영원히 지구를 감싸고 있는 듯했다. ‘우리는 정말 이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그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존은 재선 캠페인에서 슈퍼노바 프로젝트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것은 단순한 정책이 아닙니다. 인류의 미래를 위한 가장 과감한 결단입니다." 그는 각국의 정상들과의 회담, 기후 위기 현장을 방문한 영상들을 선거 홍보에 적극 활용했다. 뉴욕 토론회에서는 기후 변화로 고통받는 저소득 이민자들의 사례를 들어 슈퍼노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우리에게 선택권은 없습니다. 슈퍼노바는 우리의 마지막 희망입니다.” 존은 그렇게 말하며 청중을 둘러보았다. 그들의 눈빛에서 간절한 기대가 비쳤다. 그러나 그의 목구멍 한쪽에 무거운 불안이 걸려 있었다. '지금 나는 세상을 구하려는 영웅인가, 아니면 희망이라는 미명 아래 거짓을 팔고 있는 선동가인가?' 질문이 끊임없이 그의 마음을 찔렀다. 그렇지만 그 질문을 밖으로 꺼낼 순 없었다. 이제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그의 호소력 있는 연설은 젊은 층의 마음을 움직였다.


백악관으로 돌아온 존은 참모진과 주요 인사들을 다시 소집했다. 그들의 표정에는 여전히 긴장감이 역력했다. “모두 아시다시피, 우리는 이제 세계를 구하기 위한 마지막 카드를 쥐고 있습니다.” 존은 모두를 바라보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슈퍼노바는 더 이상 미국만의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이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해 모든 국가의 지속적인 협조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제 겨우 첫걸음을 뗀 상태입니다. 다른 국가들이 변함없이 지지할 수 있도록 동력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슈퍼노바 프로젝트는 두 개의 큰 기둥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인류가 현재 보유한 최고의 기술적 역량을 결집해 노바를 슈퍼노바로 업그레이드해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의 정치력을 극대화하여 슈퍼노바를 선하게 관리하고 운영할 국제기구를 설립해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며칠 후, 베를린에 각국의 대표들이 모였다. 화합과 통일의 상징인 베를린이다. 전 세계의 이목이 이 회담에 집중되었다. 슈퍼노바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운영할 새로운 국제기구를 설립하는 과정은 여러 나라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현장이었다. 호텔 컨퍼런스룸에 모인 각국의 대표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신중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들의 대화는 마치 실낱같은 선을 팽팽히 잡고 있는 듯한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중국 대표가 또다시 먼저 입을 열었다. “슈퍼노바의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권 침해를 방지하는 것입니다. 슈퍼노바의 결정이 각국의 주권을 무시해선 안 됩니다.” 베를린 회의에 참여하기 며칠 전, 중국 정부는 고위급 회의를 비밀리에 소집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프로젝트에 쉽게 동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위기를 해결할 방안이 슈퍼노바 외에 없는 것도 분명한 현실입니다." 대표는 팔짱을 끼고 앉아있던 다른 각료들에게 말했다. 그들의 눈에는 깊은 고민이 서려 있었다. 러시아에서도 비슷한 사전 회의가 진행되었다. 대통령은 책상 위에 놓인 자료를 가볍게 쳐다보았다. "우리가 슈퍼노바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체첸 관련 미국과의 협상이 더욱 불리해질 수 있다." 그 말에 참석자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듯 각국의 대표들이 베를린 회담에 참여하기 전부터 이미 국내에서 치열한 논의와 압박이 오고 갔던 것이다.


러시아 대표가 발언을 이어갔다. 의미 없는 수사로 가득한 외교적 문장들을 나열한 후 그는 “러시아는 언제나처럼 인류 공동의 이익을 가장 중요시하고, 이를 위해 앞장설 준비가 되었습니다. 다만 과거 노바 프로젝트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주도로 진행된 점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시선이 미국 대표에게 쏠렸다. 그는 미간에 잔주름을 깊게 지우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들이, 모두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또박또박 전해주면 되는 일이다.


“슈퍼노바는 특정 국가의 소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슈퍼노바는 인류 전체의 이익을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새로운 기구는 이를 보장할 것입니다. 지난 UN 회의에서 존 맥케이브 대통령이 여러 차례 강조한 것과 같이 모든 의사 결정은 투명하게 진행될 것이며, 독립적인 감독위원회가 슈퍼노바와 그것을 둘러싼 거버넌스를 늘 살펴볼 것입니다.” 그러나 대표들의 표정은 여전히 무거웠다. 그들 각자의 머릿속에는 자국의 이익, 주권과 세계 최강대국 미국과의 관계가 걸린 문제가 얽혀 있었다. 그들의 고민은 보다 현실적이었다. 슈퍼노바의 결정에 따라 자신들의 나라가 어떤 희생을 치러야 할지 아직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슈퍼노바의 운영을 통제하기 위한 국제기구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모든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미국 대표는 말을 이었다. “우리의 목표는 그저 기후 위기를 극복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공정하고 투명한 시스템을 구축하여 인류 전체를 구해야 합니다.” 이 말에 각국 대표들은 다시금 신중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이 프로젝트가 얼마나 큰 규모이며, 또 얼마나 막대한 영향을 미칠지 알고 있었다. 이렇게 대대적인 국제협력은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었으나, 그만큼 위험부담도 크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회의는 며칠간 이어졌다. 이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남았다. ‘슈퍼노바 운영 규정’을 수립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국제기구의 권한을 어디까지 둘 것인지, 그리고 슈퍼노바가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핵심이었다.

페루 대표가 가장 먼저 의문을 제기했다. “만약 슈퍼노바가 부적절한 결정을 내린다면, 아니 부적절한 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판단될 경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AI가 제시하는 방안에 늘 맹목적으로 따를 수는 없습니다.” 이집트 대표가 고개를 끄덕이며 가세했다. “동의합니다. 인간이 최종적으로 결정권을 가져야 합니다. 슈퍼노바가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미국 대표는 그들의 우려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슈퍼노바를 아무런 제한 없이 운영하게 한다는 것은 분명 위험했다. 그 점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노바의 운영 사례를 통해 AI가 인간이 초기에 부여한 목적, 즉 ‘지구 환경의 회복’과 ‘인류의 지속가능한 생존’을 위해 가치중립적이고 일관된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여러 국가의 우려를 충분히 이해하며, 그러기에 저희는 중재안으로 ‘가중된 다수결 원칙’을 제안합니다.”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슈퍼노바의 결정에 이의가 있는 경우, UN 가입국 4분의 3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합니다. 만약 이의가 제기되어 받아들여진다면, 슈퍼노바는 기존의 결정을 폐기하고 차선의 대안을 제시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대안에 대해 다시 이의를 제기하려면 5분의 4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합니다. 이는 슈퍼노바의 운영 효율성을 유지하면서, 최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함입니다.”


회의장이 조용해졌다. 각국의 대표들은 이 제안의 의미를 곱씹고 있었다. 이 원칙이 완벽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국가가 공평하게 참여하고, 동시에 프로젝트를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최선의 방안으로 보였다. 프랑스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이 원칙에 동의합니다. 슈퍼노바는 전 세계를 구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른 대표들도 순차적으로 동의 의사를 밝혔다. 이렇게 슈퍼노바 운영을 위한 원칙이 차례차례 수립되고 규정이 만들어졌다. 이제 슈퍼노바 프로젝트는 전 세계의 지지를 얻어 본격적으로 추진될 것이었다. 또한 슈퍼노바의 의사 결정 과정을 감독하기 위해 국제기구 산하에 독립적인 감독위원회도 설립된다. 이 위원회는 각 대륙을 대표하는 전문가와 민간단체, 언론인으로 구성된다. 감독위원회는 슈퍼노바의 의사 결정과 실행 과정을 감시하고 이에 대한 분석과 평가를 주기적으로 실행하며, 국제기구의 운영도 견제하게 될 것이다.


슈퍼노바 프로젝트의 원칙이 확정된 이후, 몇 가지 주요 예외 사항과 세부 내용들이 순차적으로 조율되고 확정되었다. 어려운 문제였으나, 동시에 인류는 무수히 많은 타협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 실천이 문제였을 뿐... 국제기구는 이제 그 외양과 구색을 갖추게 되었다.


존은, 인류는 또 다른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바로 기술적 향상이다. 슈퍼노바는 노바와 비교할 수 없는 많은 데이터를, 지구상의 거의 모든 데이터를, 동시에 확인하고 처리하고 빠르게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 의사 결정은 합목적성과 객관성을 갖추어야 하고 동시에 이행 가능성에 대한 고려도 필요할 것이다. 노바를 슈퍼노바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 존은 현재까지 가장 완벽한 AI 시스템으로 평가받는 노바의 '아버지'였던 에탄 벤야민의 참여가 필수적이라 생각했다. 에탄은 노바 프로젝트가 성과를 거둔 직후 돌연 자취를 감췄다. 누구도 그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지 못했다.


존은 에탄을 찾기 위해 특별히 비밀 수사팀도 구성했다. 그들은 그의 과거 행적을 뒤쫓으며 그의 회사, 연구실, 동료들, 그리고 가족에게까지 연락을 취하고 조사했다. 수사팀이 에탄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을 때마다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에탄은 어디에 있는 거지?’ 그는 책상 위에 놓인 그의 사진을 응시했다. 에탄의 눈빛은 언제나 무언가를 내다보고 있는 듯했다. '혹시 에탄은 이미 이 상황을 예견하고 사라진 것일까?' 존은 초조해졌다. '만약 그가 없다면, 이 프로젝트는 출발부터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그 의심이 머릿속에 피어오를 때마다, 그의 마음은 마치 얕은 물결처럼 불안하게 흔들렸다. 존은 에탄과 함께했던 과거를 떠올렸다. 노바를 설계하던 때, 에탄은 언제나 논리적이고 냉철했다. 그는 인공지능의 가능성과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때 존은 에탄에게서 불길한 예감을 느꼈던 기억이 떠올랐다. 마치 에탄이 모든 것을 내다보고 있다는 듯한 눈빛을 본 적이 있었다.


수사팀은 결국 에탄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한편, 존이 에탄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슈퍼노바 프로젝트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전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과학자, 철학자, 환경 운동가, 심지어 노바 프로젝트에 한때 참여했던 일부 인물들이었다. 그 중심에는 독일의 유명한 물리학자 하인리히 볼드가 있었다. 그는 노바 프로젝트의 초기부터 관여해 온 과학자였다. 하인리히는 뛰어난 두뇌와 함께 강렬한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로, 과학계에서 존경받던 인물 중 하나였다. 그는 최근 각종 언론 인터뷰와 연설을 통해 슈퍼노바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의 목소리는 커졌고 나날이 힘을 얻어갔다. 그의 예전 인터뷰에서 보였던 환한 미소는 이제 찾을 수 없었다.


“노바가 세상에 등장했을 때, 난 우리가 신을 창조한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때 우리는 놓쳤지요. 우리의 창조물은 결코 우리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는다는 것을. 슈퍼노바는 결국 인간을 ‘지구에 해로운 존재’로 분류할 것입니다.” 그의 말은 날카롭고도 선명했다. “AI는 최적의 판단을 내리겠지만, 그 판단의 결과가 인류에게 어떤 파멸을 가져올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AI에게 우리의 미래를 이렇게 쉽게 맡길 수는 없습니다.” 그의 주장에 많은 이들이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특히 과학계 일각에서는 AI의 무분별한 활용이 가져올 잠재적 위험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일어났다. 이들은 슈퍼노바 프로젝트가 진행될수록 그들의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하인리히는 자신이 속한 연구소의 조용한 사무실에서 동료들에게 말을 이어갔다. "슈퍼노바는 결국 '지구 재건'이라는 이름 아래 인간을 배제하는 결정을 내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해로운 종으로 분류할 날이 곧 올 것이에요." 그렇게 그는 슈퍼노바를 반대하는 과학자들을 모으는 중심인물이 되었다. 그들은 특히 슈퍼노바의 의사결정 알고리즘, 그중 최우선에 있는 ‘환경 우선 원칙’이 가져올 영향에 우려를 표명했다.

환경 우선 원칙: 슈퍼노바의 의사 결정 알고리즘은 환경 복구 및 안정을 최우선으로 한다. 이를 위해 슈퍼노바는 전 세계의 기후 데이터, 생태계 데이터, 자원 분포 등을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분석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환경의 회복과 보전을 최우선 가치로 두며, 이에 따른 판단은 다른 이유로 변경되지 않는다.


인도주의적 고려: 슈퍼노바는 의사 결정 시, 인도주의적 원칙을 고려한다. 그러나 이 원칙은 환경 우선 원칙에 종속된다. 즉, 인류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 결정이라도 환경 복구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경우 배제될 수 있다.


가변적 기준: 슈퍼노바는 다양한 변수에 따라 의사 결정의 우선순위를 변경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생물 다양성 유지와 식량 생산이 충돌할 경우, 인구 밀집 지역과 희귀종 서식 지역의 상황을 분석하여 최적의 해법을 찾아낸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일부 국가나 지역은 불가피하게 피해를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퍼노바 프로젝트는 막을 수 없는 흐름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다른 대안이 없다는 사실만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 국제기구의 설립이 확정되고, 운영의 원칙이 수립되자 각국의 정치인과 과학자, 기술자들이 한데 모여 프로젝트의 세부 사항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슈퍼노바의 기술적 업그레이드부터 국제기구의 운영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획이 세밀하게 그려졌다.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과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슈퍼노바를 위한 기술 설계, 데이터 통합, 그리고 의사결정 알고리즘의 구축에 나섰다. 언론에서는 이 작업을 ‘제2의 맨해튼 프로젝트’라 칭하며 찬사를 보냈다. 인류의 공멸을 두려워하던 제2차 세계대전을 마무리한 맨해튼 프로젝트처럼 슈퍼노바 프로젝트는 기후 전쟁에서 인류에게 승기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사람들은 이 거대한 프로젝트가 인류를 구원해 줄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었다.


그리고 그즈음, 존은 재선에 성공했다. 그의 지도력은 미국과 전 세계에서 인정받았고, 이제 인류의 미래를 위해 그는 더 큰 책임을 짊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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