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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 Dec 19. 2024

이베리아 탐방기(09)

세비야(Sevilla)


대항해시대를 주도한 세비야


이베리아 탐방 닷샛날, 스페인의 첫 출발지인 세비야(Sevilla)는 이베리아반도 남쪽에 위치한 스페인의 황금시대(Siglo de Oro)를 열었던 도시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탐험한 후 에스파냐는 1503년 신대륙과의 무역을 담당하는 국가기관인 콘트라타시온(Casa de Contratación) 본부를 [세비야]에 두었다.



이를 통해 세비야는 에스파냐가 신대륙과의 무역에 대한 왕실 독점권을 부여받은 유일한 항구가 되었다. 식민지에서 가지고 온 금은보화 덕분에 스페인 전성기인 황금시대가 열리게 되었고, 오직 [세비야] 내륙 항에서 출발하고 돌아오는 범선(帆船)만이 신대륙과의 무역에 참여할 수 있었다.


세비야 범선

때문에 모든 유럽의 상인들은 신세계로부터 오는 상품을 얻기 위해 [세비야]에 머무르게 됐다. 이때 도시의 인구는 유럽대륙에서 전례를 찾을 수 없었을 정도인 10만 명을 넘어설 정도로 번성하였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한때 찬란했던 세비야는 이 도시에 웅장한 흔적을 많이 남겼다.



스페인 광장(Plaza de Espana)

 

세비야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 중 하나는 스페인 광장이다. 아치형 기둥과 높은 탑이 양쪽에 있는 [반원형 건물]과 큰 [분수대]가 중앙에 위치해 있다. 광장 쪽 건물 벽면에는 스페인각지의 역사적 사건들이 모자이크 타일로 묘사돼있다. 광장에는 마차가 있어 말을 타고 세비야 중심지를 돌아볼 수 있다.


Plaza de Espana, Sevilla

스페인 광장은 1928년에 열린 에스파냐-아메라카 엑스포(Exposition)를 위해 건축한 곳이다. [스페인 광장]은 이탈리아 로마에도 같은 명칭의 광장(Piazza di Spagna)이 있고,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도 동명의 광장(Plaza de Espana, Madrid)이 있다.



2024년 CNN에 따르면 세비야 [스페인 광장]은 유료관광지가 될 전망이다. 또한 바르셀로나도 단체관광객 수를 제한하고 있고, 이탈리아 베네치아도 금년 4월부터 주말과 공휴일 관광객에게 입장료 5€를 부과하고 있다.



세비야 마차투어


[스페인 광장]을 둘러본 뒤 광장 앞에서 마차를 탈수 있다. 가격은 인원수가 아닌 한 대당 45€인데 성수기에는 55€~ 120€까지 받는다고 한다. 투어를 하는 동안 마차기사가 관광지 안내를 해준다고 하는데, 마부에게 쉽고 간단한 영어안내를 기대했던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꼴이었다.  


스페인 광장

낭만적인 마차에 올라 광장을 출발하는 마차투어는 세비야 산책명소인 드넓은 마리아 루이사(Maria Luisa; 스페인왕비) 공원을 돌아보고 아메리카 광장에서 잠시 내려 포토타임을 갖는다. [아메리카 광장] 역시 라틴-아메리카 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한다. 


마리아 루이사 공원
아메리카 광장

다시 마차에 올라 시가지를 거쳐 로터리를 지나면서 과달키비르강을 감상하기도 하고 저 멀리 황금의 탑도 함께 조망(眺望)한다. 40분정도 세비야 주요명소를 돌아본 뒤 마차투어의 마지막 하차장은 [세비야 대성당]앞 트리운포(Triunfo; 승리) 광장이다.


세비야 대성당


황금의 탑(Torre del Oro)


황금의 탑세비야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탑으로, [세비야 항] 선착장에 있는 동쪽강변 산책로에 12각형 모양의 탑이다. 1220년 무어인들이 세비야 과달키비르강을 통과하는 배를 검문하기 위해 세웠다. 강 건너편에는 [은 탑]이 있었는데, 두 탑을 쇠사슬로 연결해 가톨릭 함대가 세비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이 탑은 군사 망루 역할을 했으며 중세에는 한때 감옥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황금의 탑]은 15세기에 세비야 항구를 통해 라틴아메리카 전역의 황금을 실어왔기에 붙여진 이름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 탑은 실제 하얀 외벽으로 밝은 태양 강변에 세워져있어 황금처럼 빛났다하여 황금의 탑이라 불렸다 한다.


Golden Tower


황금의 탑 서편 [세비야 항]은 과달키비르 강을 통해 항해할 수 있는 중요한 항구였다. 15세기 콜럼버스 첫 출항지는 팔로스(Palos) 항구였고 2, 3차는 세비야(Sevilla)을 출발해 산루카르(Sanlúcar) 항구에서 돛을 올렸다. 그리고 이후 4차 항해는 세비야항을 빠져나와 카티즈(Cádiz) 항구에서 출항하였다.



마지막 4차 항해를 떠났던 콜럼버스는 신대륙에서 금광이나 향신료를 발견하지 못했고 특별한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따라서 지위는 점차 하락했고 말년에는 찌든 가난 속에 궁핍하게 지내다 사망했다. 이후 이어진 후속 탐험대가 멕시코페루를 통해 엄청난 금괴를 약탈하면서 큰 부(富)를 축척할 수 있었다.



당시 항해기술로 볼 때 미개척지에 대한 원양(遠洋)항해가 극히 위험했던 것을 감안하면 콜럼버스의 항해는 서구의 역사무대를 전 세계로 확장한 계기가 된 중요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인류역사상 대학살을 촉발한 침략행위이기도 했다. [황금의 탑] 앞에서 잠시나마 대항해시대 역사의 쓸쓸한 뒤안길을 바라본다.  

 

중세 고딕양식 세비야 대성당(Catedral de Sevilla)


세비야 대성당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성당일 뿐 아니라 고딕양식 중 가장 큰 대성당이다. 현재 성당이 있는 자리는 원래 이슬람 모스크(聖院)가 있었으나 스페인은 Mosque를 허물고, 무역중심지였던 세비야의 엄청난 부를 만천하에 과시할 만큼 웅장하고 화려한 성당을 증축해 16세기에 완공하였다. 


트리운포 광장

1401년 공사가 시작돼 127년이 지난 1528년 완공된 이후로 세비야 대성당은 스페인에서 가장 큰 거대한 성당으로 떠올랐다. 세비야의 상징인 히랄다 탑은 12세기 말 이슬람 무어인들이 만든 첨탑이었으나, 성당이 지어지는 과정에서 헐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다가 1568년에 교회 종루로 증축했다.



[세비야 대성당]은 총 4개의 파사드(Facade; 정면)와 15개의 문이 있으며, 왕실 예배당을 포함 총 80개의 개인 예배당이 있다. 내부에는 그림, 조각 등 귀한 예술품들도 있고, 13세기 [카스티야] 군왕인 페르난도 3세의 유해가 안치돼 있으며 탐험가 콜럼버스의 유해가 안장된 관이 있다.



대성당 안으로 들어서니 예배당(Capila Mayor) 위로 둥근 금빛천장이 제일먼저 시선을 끈다. 대항해시대 축척된 황금으로 도배된 천장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그 웅장하고 화려한 위세(威勢)에 왠지 압도당하는 느낌이든다.


황금 천장

세비야 대성당 [중앙제단]에는 성서의 인물과 함께 예수의 탄생, 수난, 사망에 관한 45개의 성서내용을 나무조각품에 황금 1.5톤을 입혀 만든 황금 제단장식인 레타블로 마요르(Retablo Mayor)가 있다.


레타블로 마요르(Retablo Mayor)

[세비야 대성당]의 (Silver) 제단은 은으로 만든 제단 중 가장 정교하고 뛰어난 작품이라 한다. 제단아래쪽 좌우에는 세비야의 성인 조각상이 있고, 제단위에는 성모 마리아 승천을 묘사한 그림과 예수 승천을 묘사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다.


은 제단(Silver Altar)

콜럼버스 후원자였던 이사벨 여왕이 죽은 뒤 콜럼버스는 야박하게 버려지며 처우도 나빠졌다. 이에 큰 불만을 품었던 그는 죽으면서 “내 시신은 신대륙에 묻어라. 내가 다시는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게 하라“고 유언했다. 하지만 쿠바에 있던 그의 유해는 1898년 쿠바독립으로 [세비야 성당]으로 옮기게 되었다.



대성당 안에는 스페인의 옛 왕국인 [레온], [카스티야], [나바라], [아라곤]을 상징하는 네 사람이 상여를 메듯 콜럼버스의 관을 메고 있다. [콜럼부스]의 유언에 따라 상징적인 4명의 왕이 그의 관을 공중에 메고 있는 것이다.



관을 메고 있는 4명중 앞에 선 [레온]과 [카스티야] 왕은 콜럼버스 항해에 찬성해 당당한 표정으로 앞을 보고 있고, 뒤에 선 [나바라]와 [아라곤] 왕은 반대를 했기에 고개를 숙인 모습이라는 설(說)도 전해진다. 실제 콜럼버스의 유해는 이 관속에 없고 성당의 지하묘지에 있다고 한다.  



15세기 대항해시대를 열어간 콜럼버스 석관 앞에 서니, 이베리아 탐방의 종착점에 와있다는 생각에 감해가 새로웠다. 그는 한 세기 에스파냐 제국과 함께 찬란했던 영화(榮華)를 누렸던 인물이었지만, 21세기 들면서 라틴아메리카 원주민의 학살자로서 지난역사의 재평가를 받고 있다.  



히랄다 탑(La Giralda)  


이슬람의 모스크로 태어난 탑 히랄다(Giralda)는 풍향계를 뜻한다. 탑 꼭대기에 믿음을 상징하는 여성상을 세워 풍향계 역할을 하도록 하여 [히랄다]로 불리게 됐다. 105m 높이로 솟아있는 히랄다 탑세비야 어디에서나 잘 보이는 탑이다.



무어(Moor)식 구조로 건설된 외관은 벽돌을 격자무늬로 쌓아올려져 견고함이 느껴진다. 탑  꼭대기 층은 가톨릭교에 의해 은세공이 혼합된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졌다. 종루(鍾樓)에 설치된 르네상스 양식의 거대한 종 25개를 볼 수 있기에 세비야에서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 중 하나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대성당 남쪽 500여m에는 18세기 세운 왕립 담배공장이 있다. 지금은 [세비야 대학]이 들어서 있는데, 당시 쿠바에서 생산된 잎담배가 모두 이곳으로 운송돼 가공되면서 세계규모의 산업용 건물이었다 한다. 지난날 해양대국 에스파냐가 중남미대륙에서 얼마나 많은 착취를 했는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건물이다.


세비야 대학

16세기 해양제국으로 떠올랐던 스페인은 산업혁명 시기에 새로운 도전에 대한 왕궁의 무관심으로 강대국에서 점차 멀어지게 되었다. 오전 세비야를 둘러본 뒤 2시간을 달려 절벽위의 도시 론다에 이른다. 이곳은 여행길 중간에 쉬어가는 반나절 여행지이지만 진한여운이 남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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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ra Shoo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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