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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 Dec 24. 2024

이베리아 탐방기(12)

몬세라트


여행 이렛날, 카탈루냐 지방 바르셀로나 근교에 있는 몬세라트(Montserrat)로 4시간 반을 달려간다. 스페인은 국토면적이 약 5,000만ha로 한국(1,000만ha)의 5배이기에 지역 간 이동시 하루 5~6시간을 달려야하는 힘든 점이 있다. 몬세라트로 향하는 동안 하와이 무궁화  꽃망울무지개가 여행의 피로를 덜어준다.



점심때를 맞추기 위해 휴게소에 들러 쉬면서 휴게소 식당에서 노란 찐밥에 홍합과 새우가 들어간 파에야(paella)로 식사를 해결한 뒤 14시 몬세라트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아서(Arthur) 왕의 성배전설에 등장하는 산타마리아 몬세라트 수도원이 있다. 이곳은 가톨릭 성지이자, 세계 4대 성지로도 손꼽히는 곳이다.



카랄루냐 사람들의 영혼의 고향 몬트라트


[산티아고 순례길]은 스페인 북서부의 산티아고(Santiago de Compostela)를 목표로 중세시대부터 시작된 순례길이다. 이곳에는 예수님의 대표적 세제자 중 한명이자 에스파냐의 수호성인 “야고보”의 유해가 안치된 성당이 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중세 유럽사를 살펴보면 스페인은 유독 가톨릭에 광신적이었다.


산티아고 가톨릭교 기사단(騎士團)들은 이슬람교도와 성전(聖戰)을 벌이거나, 가톨릭으로 개종한 무슬림들과 유대인들을 이교도라고 추방하였다. 에스파냐가  유독 가톨릭에 심화된 데는 2가지 이유가 있다. 그 첫 번째는 711년부터 1492년까지 이어진 레콩키스타(Reconquista)였다.


가톨릭교 기사단

무어인들의 침략으로 이베리아반도는 북부의 아스투리아스 지역만 남고 모두 정복당했다. 이후 가톨릭교도들은 아스투리아스 산맥 전투에서의 승리를 기점으로 780년 넘게 투쟁이 이어지면서 가톨릭은 [레콩키스타]의 중심이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무어족의 침략

두 번째는 바로 민족적인 치욕이다. 이슬람 세력에 781년간 정복당한 대부분의 지역사람들은 이슬람교의 포교와 협박 등으로 개종해 버렸다. [레콩키스타]로 영토가 점차 회복되면서 많은 스페인인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이슬람교도라는 사실을 숨기고 싶어 했기에 더욱더 가톨릭교에 빠져들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중세 에스파냐는 가톨릭을 광적으로 숭배하였고, 15세기 스페인의 정복지에서 [레콩키스타]에서 자생(自生)된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라틴아메리카 원주민의 신전(神殿)을 철저히 파괴하며 그 자리에 에스파냐 식 광장을 만들고 거대한 성당을 세운 것이다.



에스파냐 정복자들은 멕시코시티를 함락한 뒤 아스텍이 세운 치첸이트사의 [태양의 신전]을 무너뜨린 뒤 맨 먼저 성당을 세웠다. [페루] 쿠스코아르마스(Armas)는 정복자의 광장이란 이름으로 “무기”를 뜻한다. 그래서 남미의 다른 나라들도 가보면 도시의 중심에는 항상 [아르마스 광장]과 [대성당]이 있다.



스페인 전역 하늘높이 솟았던 중세기 대성당들과 울퉁불퉁 돌산 위에 세워진 11세기 몬트라트 수도원 성당은 에스파냐의 [레콩키스타]가 시작되면서 이교도들이 스페인에 아예 발도 못 붙이게 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는 듯 보인다.


독특하고 기괴한 바위산에 둘러싸인 몬세라트 수도원


발렌시아를 떠나 약 4시간을 이동해 찾아본 몬세라트(Montserrat)는 카탈루냐 지방 바르셀로나에서 50여km에 있는 산이다. 몬세라트 수도원 해저융기로 이루어진 바위산 중턱에 자리한 수도원이다. “톱니모양 산”이란 의미의 몬세라트는 해발 1,200m에 위지해 있는 산이 톱니처럼 6km에 걸쳐 펼쳐있다.


Montserrat  Mountain Guide

분홍색 역암으로 이뤄진 바위산은 멀리서도 독특한 경관이 예사롭지 않다. 1,000여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는 마치 둥글게 마모된 치아 같은 바위와 빛바랜 옥양목(玉洋木) 버선발 같은 기암괴석 만물상을 이루고 있다. 저 높은 산위에 있었으니 이슬람 정복시기에도 버틸 수 있었으리라.



이곳을 오를 때는 산악열차인 트램(Tram)을 이용해 15분간 오르고 내려올 때는 케이블카를 이용해 700m를 5분 만에 내려온다. [트램]의 규모가 기차만큼이나 연결된 차량수가 많았는데 탑승객이 많지 않아 맨 뒤 칸에 자리를 잡고 아내와 둘이만 타고 올라갔다.



기암괴석에 올라 산 위 하늘과 아래 굽이치는 길과 강을 바라보며 가을풍광의 시원함을 느껴본다. 저 멀리 펼쳐진 풍경끝자락에 가물가물 가로지르는 피레네(Pirineus) 산맥이 보이는데 그 산 너머에 남프랑스가 있다. 산꼭대기 마을주민들은 가판대를 펼치고 기념품을 판매하기도 한다.



수도원을 오르는 길 담장에는 어느 쪽에서 봐도 눈을 맞추고 있다는 산 조르디(Sant Jordi) 조각물이 눈에 띈다. 전설에 따르면 [산 조르디]는 용과 싸워 공주를 구한 기사로, 카탈루냐 문화에서 중요한 상징이라 한다. 몬세라트는 2시간쯤이면 수도원 주변과 전망대를 둘러볼 수 있다.


산 조르디 조각물


14€ 입장료를 내고 검은 성모상이 있는 대성당으로 들어가면 50년경 만들었다는 스페인의 성물(聖物)이자 모레네타(La Monereta)라 불리는 검은 [성모 마리아상]이 보전돼 있다. 검은 피부색이 특징인 성모마리아 상은 [몬세라트 수도원]의 상징이자 카탈루냐의 수호성인이라 한다.



나무로 만든 검은 마리아상은 루카(누가)가 조각한 것을 베드로가 스페인으로 가져왔다고 전해진다. 오랜 세월 북아프리카 무어인의 박해를 피해 몬세라트 동굴 깊은 곳에 숨겨뒀는데 880년에 우연히 발견됐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어린 목동들이 몬세라트 산 하늘에서 빛이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빛과 함께 천사들의 노래가 한 달 간 울려 퍼지며 산속 동굴로 이어졌는데 마을 사제들은 이곳을 둘러보다가 동굴에서 동정녀 마리아상을 발견했다고 한다. 1025년 가톨릭 주교가 이곳을 방문해 나무 [마리아상]을 옮기려고 했으나 너무 무거워 이를 기이하게 여겨 이 자리에 산타 마리아 예배당을 세웠다 한다.



이는 훗날 [몬세라트 수도원]의 주춧돌이 되었고, 지금도 수도사들이 머물고 있다. 1811년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점령했을 때도 신자들이 목숨을 걸고 검은 성모 마리아상을 지켜냈다. 교황 레오13세는 성모상을 카탈루냐 수호성인으로 지정했다. 수도원광장 맞은편 산봉우리에는 산미구엘 십자가(Sant Miquel Cruz) 전망대가 보인다.



해발 1,190m에 놓인 십자가 전망대를 가기 위해서는 왕복 50분이 소요된다. 이곳은 일반 트래킹 코스로 평지와 약간의 경사진 길로 이어진다. 산 미구엘 십자가를 향해 걷다 보면 좌측 사이길 아래로 전망대가 나오고 어느새 출발지인 몬세라트 수도원이 한 눈에 들어온다.



많은 문헌에서 성 미카엘(Michael) 대천사는 3대 천사로 하느님의 어전에 임한 천사 중  하나로 꼽으며, 그중에서도 필두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이곳은 성지(聖地)가 아님에도 세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세계 4대 성지라는 몬세라트 수도원은 지금까지 수많은 순례자들의 발길이 연중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수도원에는 에스콜라니아(Escolania) 소년 성가대가 머물고 있으며, 평일 오후 1시에는 합창공연을 15분간 관람할 수 있다. 이곳에는 이미 14세기부터 음악학교가 있었다고 한다.  



몬세라트 산은 천재 건축가 가우디에게 큰 영감(靈感)을 준 곳이라 한다. 산의 단층지괴는 자연보호 구역으로 험준한 바위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산책로가 많이 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는데 산 아래 골짜기로 흘러가는 급류(Torrent de Santa Maria)가 대홍수로 인해 온통 진흙탕물로 넘쳐나고 있다.




1시간을 이동해 도착한 바르셀로나는 다른 지역보다 특히 물가가 높은 편이며 [워라벨 문화]가 짙어 도시혼잡과 물가상승의 주범인 여행객을 거부하는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 시위가 잦다고 한다. 랍스터 아로스 칼도소(Arroz caldoso)로 저녁을 마친 뒤 조금 이른 시각에 숙소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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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ra Shoo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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