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담 소담 III
지하철 2호선에서 만난 사람들
중고등학교 시절 우리는 반공교육을 받았고,
제식훈련도 했다. 북한 때문인지 정치인들 때문인지는 몰라도 늘 전쟁을 대비하는 교육을 받았다. 일렬종대, 받들어 총, 좌향좌, 우향우 등을 연습했다. 교련시간에는 붕대감기, 삼각대 사용법, 지혈대 사용법등을 배우고 시험도 봤다.
남학생들이 전쟁에서 다치면 우리가 치료해야 한다고 했다. 무서웠다.
심지어 공 던지기 대신 수류탄 던지기를 했다.
어떤 친구가 던지면 "넌 아군 죽이겠다."라고 선생님이 소리쳤다. 다행히 난 잘 던져서 적군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라가 불쌍하니 우리도 불쌍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젊었고 그래서 꿈도 있고 희망도 있었다.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아름다운 추억도 있는 그리운 시절이다.
한창 일하던 시절 난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였다.
출근 때는 사람이 많아 다닥다닥 붙어 있어
겨우 내리는 사람만 피해줄 수 있는 형편이었다.
하루는 내 옆에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붙어 있었는데 갑자기 내쪽으로 고개를 획돌리며 "일"이라고 소리를 지르고 고개를 다시 원위치시켰다. 나는 깜짝 늘라 나도 모르게 " 이"라며 번호를 붙일 뻔하였지만 겨우 참았다. 예전의 훈련이 힘을 발하려 했던 것이다.
왜 이러는 거지,....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또 고개를 획돌리며 " 일"이라고 소리쳤다. 이번엔 정말 소리칠 뻔하여 얼른 사람사이를 비집고 다른 자리로 피했다. 내리기 전에 내가 " 이"를 외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일등만을 부모가 강요해 뇌가 이상해졌나 보다 생각했는데 지금은 알 것 같다.
틱 장애였던 것이다. 행동틱과 음성틱이 니타난 경우인 것이다, 치료는 받았는지.....
지금은 괜찮은지 , 궁금해진다.
어느 날 퇴근을 하느라 지하철을 탔는데 사람이 별로 없어 넓은 공간에 서서 앉아있는 사람들을 관찰하였다. 사람 구경은 의외로 재미있다.
어떤 아저씨 귀속에 털이 막 나와 있었다.
그것은 Y 염색체 상의 유전인 것이다.
Y 염색체는 작아서 유전자가 별로 없는데 귓속에 털이 나는 유전자는 Y염색체 상에 있다.
그 아저씨를 보며 Y는 아들에게만 가니 아들이 있으면 그 아들도 귀에 털이 나겠지라 생각하며 지하철에서 내렸다.
구경은 역시 재미있어!
어느 날 퇴근길이었다.
어떤 소녀가 보이는데 흰 얼굴과 머리카락이 엷은 노랑이었다. 심지어 속눈썹도 희게 보였다.
옆에 있는 엄마는 검은 머리에 검은 속눈썹을 가졌다. 사람들이 그 소녀를 힐끔힐끔 보았다.
자꾸 쳐다보지 말지 상처받을 텐데.,.. 속으로 생각했다.
유전질환인 것이다.
엄마의 X염색체상에 질환 유전자가 있는 것이다.
열성질환이라 엄마는 정상으로 나타난다.
아마 아빠도 X상에 질환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딸에게 나타난 것이다.
아마 아빠는 부분 부분 머리가 하얗거야라고 생각하며 못 본척하고 내렸다.
이런 때는 못 본척해주는 것이 큰 배려인 것이다.
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배려는 다르게 표현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