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1. 알아두면 쓸모 있는 신비한 방송세계
“알아두면 쓸모 있는 신비한 방송세계”
경력 없이도 80대까지도 일을 시작할 수 있는 다양한 방송 관련 직종을 소개합니다.
라이브 커 모스 쇼호스트, 광고모델, 시니어 모델, 주부모델, TV영화 출연 등 방송 관련 분야를 소개하고 어떻게 시작할 수 있는지 알려드립니다.
서울시민대학 강의목록에서 이 공고가 눈에 띄었다.(서울시민대학스럽지 않은 강좌여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내 주변에 항상 있기는 하지만, 한 번도 직업으로 고려해보지 못했던 분야라 언제 또 해보겠냐 싶어서 호기심으로 신청하게 되었다. 막상 신청한 후에도 하루에도 몇 번씩 취소할까 그냥 할까 얼마나 고민했는지 모른다.
첫날. 내가 지금 TV 속에 있나 헷갈릴 정도로 연예인 같은 분이 눈앞에 서 있었다. 옷차림과, 머리부터 발끝까지 길거리에서 한 번쯤 다시 보고 싶어서 고개를 돌리게 만드는 차림새를 하고 앞에 서있는 강사님을 보는 순간, 내가 정말 그동안 못해보았던 경험을 할 수 있겠구나라는 기대감에 과감히 등록을 한 나 자신을 칭찬했다.
더 인상적이었던 건 강사님의 일에 대한 열정과 자신감이었다. 육아로 인해 단절된 경력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아나운서였던 본인의 이전 모습을 버리고 과감히 쇼호스트로 전향했다고 한다. 주부 모델, 쇼호스트, 유튜브 등 각종 나를 알리기 위해 바쁘게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지금도 이런 강의를 하는 것도 또 다른 직업의 확장을 시도하는 것이라며, 우리에게 이렇게 자신감을 북돋워 주었다.
여러분도 다 할 수 있어요!
이 강의는 수강생들도 시민대학의 다른 강의의 수강생들과 결을 달리했는데,
마케팅업무에 종사하면서, 다양한 채널을 알고 싶어 수강 신청한 30대 중반의 마케터,
방송직업이 진짜 궁금하고 도전하고 싶어서 등록한 20대 젊은이,
영어강사하면서 글을 쓰는데, 방송직업이 궁금해서 신청한 영어강사,
남들이 시니어 모델하라고 해서 어떤 직업인지 궁금해서 참석하신 예쁜 어르신,
시니어 모델을 시작했지만, 기회를 찾지 못해 방법을 알고 싶어 참석하신 전직 영양사출신 모델 어르신,
이미 몇몇 단편 영화에서 엑스트라로 출연하며 시니어 모델 시작하신 멋쟁이 전직 성악가
그냥 궁금해서 강의를 등록한 나에게는 강사부터 수강생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치 새로운 세상처럼 느껴졌다.
강의실 안에는 보이지 않는 열기가 있었다. 쉬는 시간조차 어디 공고가 곧 오픈을 한다 던가, 어떤 강의를 가면 더 잘 알려준다더라며 적극적으로 정보를 교환하며, 그들은 조금도 쉬지 않았다. 무관심한 척 그러나 귀는 크게 열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니, 이들은 이 일을 정말 미치도록 좋아하는 사람들이구나 하는 감동이 몰려왔다.
열기에 빨려 들어가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시키는 대로 거울 보며 표정과 발음연습을 나도 모르게 하고 있었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표정을 짓는 나를 보고 있자니 그냥 헛웃음이 나왔다.
나의 열정 없음이 이들에게 미안함으로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는 한심스러움으로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왼손은 가볍게 립밤의 한쪽 끝을 잡으시는데, 엄지와 셋째 넷째 손가락이 살포시 물건에 잡는 거예요. 그런 다음 왼손을 얼굴 아래턱 아래로 가슴 쪽으로 향하고, 아, 손바닥은 바깥쪽으로 보이지 않게 손목을 돌리면서 손날이 보이도록 하면 날씬해 보여요. 그리고 팔꿈치는 책상 위에 그런데 좀 더 몸 쪽으로요.. 예, 좋습니다. 오른손은 손가락을 살포시 구부려 둘째와 엄지로 가볍게 립밤의 다른 한쪽 끝을 잡으셔요. 새끼손가락도 신경 써서 구부려 주시고요. 자 찍어볼게요. 하나 둘 셋!”
“어때요, 많이 다르게 느껴지죠? 이렇게 손가락 하나까지 연습하고 포즈를 만들어 가시는 거예요"
"자 또 다른 포즈를 해볼까요? 왼손은 엄지와 검지로 립밤을 길게 잡아보시고, 손등이 아닌 손가락이 앞으로 보이도록 해주세요. 얼굴은 너무 살짝 뒤로 젖히시고요. 오른손은 책상에 내려놓지만, 왼손의 팔꿈치 쪽으로 향해주시는데, 앗. 좀 어색해요. 자연스럽게 해 주세요.”
“ 가벼운 미소를 지어주시고, 이건 립밤이 앞으로 보여야 하고요, 물건이 먼저입니다. 자, 찍습니다 “
“아. 이렇게 작은 것 하나까지 신경 써야 하는군요. 정말 쉬운 게 없네요. 아무나 못하겠어요.”
“아니에요, 여러분도 다 하실 수 있어요.”
강사님은 수강생 한 명 한 명의 포즈를 세심하게 신경 써서 봐주셨다. 이렇게 공부하듯이 포즈를 연습하다 보면, 세심하게 연구해 포즈를 완성해 내는 나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뿌듯함이 생긴다.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열정으로 변해 강의실 모두를 전염시킨다.
나도 그들의 열정에 맞추어 같이 참여는 하면서도 이게 나인가 싶은 불편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남 앞에 서는 창피함과 자신감 부족 때문에 이런 직업을 못할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그런데, 정확히는 카메라 앞에서 이런 행동을 하는 나를 내가 볼 자신이 나에게는 없었다. 나는 그동안 나를 보는 연습을 잘하지 못했다 보다.
지난주 폭풍 같은 열정의 수업을 마치고 나오면서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첫 수업의 감동과 두 번째 수업의 열정으로도 이길 수 없는 정확하게 원인을 알 수 없는 불편함이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 이렇게 까지 불편함을 느끼면서 할 일인가? 안 되겠어. 중단하자.'
'아니, 아직 다음 수업까지 시간이 남았으니 더 생각해 보고 결정하자.'
이렇게 세 번을 더 고민하다 결국 중단하기로 했다.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 이렇게 고민했을까.
지금도 매우 아쉽고 그냥 끝까지 해볼걸 하는 후회가 많이 남는다. 그래도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가면, 결국 또 중단하지 않았을까.
이 불편함이 무엇 때문지 꽤 오랫동안 생각했었다.
처음에는 남 앞에서 뭔가를 표현해야 하는 행위가 나의 성격과 성향에 맞지 않아서 이런 불편함이 생긴다고 여겼다. 사실 내가 모르는 누군가로부터 어떤 시선을 받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불편하고 힘든 일이다. 누군가는 이런 불편함을 이겨낼 만큼의 적극성과 자신감을 엄청나게 많이 가지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나에게는 없으니 이런 직업은 적성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다시 이 경험을 정리하면서, 좀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여전히 익숙한 울타리 안에서 나를 보고 있는 건 아닐까. 마치 공기처럼, 이 울타리는 너무 편해서 내가 있다고 의식조차 못하는 건 아닐까 말이다. 오픈마인드를 갖자고 중얼거리며, 이것저것 다양한 것을 해보기는 하지만, 막상 이전의 잣대와 안일함으로 적합성을 평가하고 있지는 않은가 말이다.
어쩌면 내가 이 수업을 중단한 건 나를 보는 연습을 하지 못해서였을 것이다. 거울 속의 나를 보면서 느꼈던 불편함은 아마 새로운 세상에서의 나를 볼 수 있는 용기가 아직은 없어서였을 것이다.
용기가 부족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고 스스로 위로해 보지만, 아직도 멀었다.
주문이라도 스스로 걸어본다.
'불편함을 이길 수 있도록, 용기여 솟아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