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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빛나 Nov 01. 2024

40대에 찾은 나의 취미

일상을 그리다: 어반스케치

시작은 그림이다. 미술 전공자이긴 하지만 졸업 후 20년 이상 제대로 그림을 그려 본 기억이 없다. 직장인의 삶이란 다 그런 거 아닌가. 전공자이건 아니건, 관련된 몇 가지의 프로그램만 능숙하게 다룬다면 손으로 하나하나 그려내는 것보다 훨씬 빠른 시간 안에 그럴싸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직장생활 덕분에 그림과는 가까워질 기회가 없었다. 시간과 정성이 드는 그림은 직장인 에겐 사치였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켠을 차지했던 것이 있었고, 그것은 언젠가는 꼭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그 언제가 지금이 될 줄 몰랐던 것뿐. 




누구나 어릴 적엔 그림 그리는 것을 즐긴다. 벽에, 냉장고에, 새로 산 가구에도, 닥치는 대로 그림을 그렸다. 그 그림이 볼품없는 낙서일지라도 참 열심히도 그렸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가면서 많은 이들은 그림 그리기 본능을 애써 억누르고 살아간다. 자기가 그린 그림이 어딘가 못나 보이는 게 싫고, 주변의 시선이 신경 쓰여서, 시도조차 하려고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나도 막상 그림을 다시 시작해 보려고 하니, 하나 둘 걱정들이 밀려왔다. ‘전공자라면서 저 정도밖에 못해?’라는 말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했다. 두려웠다.


하지만 겁먹지 말자! 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잘 그리고 싶다’는 욕심이, ‘작은 실수는 용납하지 못한다’는 강박이 그림 그리는 걸 어렵게 만들었을 뿐. 일단 시작해 보자!

여러 종류의 그림이 있지만, 어반스케치를 그림 그리기의 처음으로 선택한 이유는 준비물이 아주 간소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는 똑같이 그리지 않아도, 삐뚤빼뚤 선을 못 그려도 그 선 자체가 멋진 그림으로 완성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오랜만에 그리는 그림이라 시작을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가, 우선 관련 도서를 몇 권 빌려 보았다. 내가 찾아본 도서는 “어반 스케치 핸드북” 시리즈와  “하루 한 장 어반 스케치” 였는데 책에 빠져들수록 참 매력적이고, 누구나 한 번쯤은 도전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다 보니, 빨리 스케치가 하고 싶어 져서 얼른 스케치북을 꺼냈던 기억이 난다. 책은 참고만 할 뿐 직접 직접 그려 봐야 내가 어떤 방향, 어떤 스타일로 나갈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에는 아무 펜으로도 가능은 하지만, 물에 번지지 않고 부드럽게 잘 그려지는 피그먼트 펜을 추천한다. 스케치북도 처음부터 큰 사이즈는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 작은 사이즈부터 시작해 보면 좋다.  A4의 딱 절반 사이즈인 A5사이즈(9X12인치)가 적당해 보인다.


선연습부터 풍경드로잉까지... 내가 경험한 순서는 아래와 같다.

1. 손 풀기 (선/해칭 연습)

2. 입체 도형을 통한 기초 소실점 이해

3. 자연 소재 드로잉 (나무, 꽃)

4. 일상 소재 드로잉 (커피, 디저트, 건물)

5. 여행하고 싶은 곳 사진 보고 그리기

6. 우리 동네 풍경 그려보기 


사실 그림의 순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지금 눈길을 끄는 물건, 사람, 풍경등 마음이 가는 무언가를 스케치북에 담는 것이 중요하다. 어떻게 보면 특정 순간을 담는다는 점에서 사진과도 비슷하지만, 그 순간을 나만의 느낌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차별화되면서도 매력적인 부분인 것 같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평소에 지나치던 것들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고, 평범했던 것들이 특별하게 보이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기도 한다.


스케치북에 그림으로 기록하기

종이와 펜이면 충분하다!
그림 그리기에 많은 도구는 필요하지 않다. 종이와 펜만 있으면, 친구를 기다리며 잠시 머문 카페에서도, 여유를 찾아 훌쩍 떠난 여행지에서도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식당의 냅킨과, 카페의 종이컵, 그리고 호텔의 메모지 모두 당신의 그림 도구가 되어줄 것이다. 언제 어디에서나 쉽게 그릴 수 있다. 그렇게 그린 그림은 당신의 일상을 추억으로 만들어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최근 들어, 어반 스케치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일상을 그려내는 어반 스케치는 요령만 알고 조금만 신경 써도 충분히 재미있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혼자 그림이 잘 안 그려질 때는 사람들과 모임을 만들어서 함께 하는 것도 좋다. 원데이클래스 수업을 들을 때는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점에서 좋았고, 카페나 야외에서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그림을 그릴 때는 같은 취미의 사람들과 함께해서 좋았다. 


요즘 나는 어디를 가든 항상 스케치북과 펜을 들고 다닌다. 언제 갑자기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장면이 나타날지 모르니까...
어반 스케치로 가득 채운 나의 스케치북에는 그날의 날씨와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간에 쫓겨 빠르게 스케치했던 날부터, 갑자기 비가 와서 잉크가 번진 흔적까지... 어반 스케치는 그림 이상의 추억을 전해준다.


그림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에, 단순하게 그려도 멋있고, 때로는 복잡한 선으로 표현되어도 그 자체로 멋이 있다. 같은 장면을 그려도 사람마다 다른 스타일의 결과물이 나온 다는 것도 참 흥미롭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선 긋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하게 그어 보는 것이다. 꾸준히 그림 그리기를 즐기다 보면 자신감 있게 멋진 선을 그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일상을 그림으로 기록하는 자신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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